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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May 09. 2023

자신을 돌보면서 버티는 힘을 키우는 과정

- 누구에게나 상담 경험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Image by SimKlipp99 from Pixabay


  

길을 가다 민들레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하지만 민들레는 그리 좋지만은 않을 거예요. 사는 환경이 녹록지 않으니까요. 밟히기 쉽고, 자전거나 짐수레에 밀려 상처가 나기도 하겠죠. 하필 이렇게 척박하고 힘든 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야속하기도 할 겁니다.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냥, 그렇게 된 거죠. 그러다 싹이 트니,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썼을 겁니다. 살기 위해 버티고, 버티다 보면 살아지고, 그렇게.   

  



보건소에서 상담사로 근무하면서 참 힘들었습니다. 상담을 요청했지만, 당장 생계비가 없거나 구직이 시급한 경우도 많았거든요. 부모에게 버려지다시피 쫓겨난 고등학생, 자식이 셋이나 되지만 연락이 끊겨 홀로 남은 어르신, 주변에서 보호막이 되어 줄 지지체계가 취약한 경우도 자주 있었죠. 상담만으로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들을 접하면서 계속 고민했습니다. ‘상담이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어느 20대 청년은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져서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사람을 대면하지 않는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블로그에 홍보 글을 올리는 일을 했는데, 갑자기 업체가 사라져 버렸죠. 일은 했지만, 급여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공과금이 밀렸고, 독촉장이 쌓이면서 가스가 끊겼습니다. 영하에도 찬물로 씻어야 했죠. 우울과 대인기피, 무기력이 두드러졌으나, 그 청년에게 당면한 문제는 우선 생계였습니다. 


힘든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면, 기적처럼 힘을 내서 일자리도 찾고 가스비도 낼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는 현실에서 무너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습니다. 문제가 시급할수록 상담에서 넋두리나 늘어놓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이야기하려면, 실낱같은 단서라도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상담에서 뭘 했느냐면요, 구청 복지사업 중에서 ‘긴급생계지원금’ 신청 자격이 되는지 알아보고, 아토피 치료를 위해 무료 의료 지원사업이 있는지 찾았죠. 치료하면서 할 수 있는 비대면 아르바이트를 찾기 위해 구직사이트를 검색하고 이력서를 넣었고요,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중고 거래 사이트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회복지사는 그냥 자신에게 연계하라고 하더군요. 때로는 그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담하면서 찾아 헤맨 복지 지원은 ‘실낱같은 희망’을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실질적으로 뭐라도 있어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밀린 공과금을 낸다고 당장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암담한 상황에서 쏟아냈던 자기 비난을 멈추고, 어떤 환경에서도 버텨내는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게 필요한 거니까요.     


상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몰랐던 나’를 발견합니다. 정말 몰랐거나, 알지만 드러내지 않았거나, 혹은 모르고 싶었거나. 숨기고 싶었다면 그럴만한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 이유를 더듬어보면 그간의 삶과 고뇌들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퍼즐처럼 맞춰지죠. 그러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 통찰이 생기고,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왜 힘들었는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는지’를 이해하면, 그런 자신을 끌어안게 됩니다. 스스로 공감하는 거죠. 내가 그런 감정, 그런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었음을 받아들입니다. 한 어머니는 고3 자녀가 학원에 빠지자 화가 나서 모진 소리를 했죠. 그러고 바로 후회했습니다. 자신을 ‘나쁜 엄마’라고 하면서 자책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어머니는 경력이 단절된 자신을 ‘실패자’로 보고 있었고, 어떻게든 자녀를 통해 보상받고자 했던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자녀의 태만이 왜 그렇게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를 이해하니, 그런 자신이 애잔해졌다고 해요.


지금과 달라지고 싶다면, 자신을 깊이 공감해야 해요. 흔히, 상담자에게 공감받기를 기대하면서 상담을 신청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자기 공감’입니다. 타인 공감은 들었던 순간 느끼는 위로지만, 자기 공감은 깊은 울림으로 남거든요. 그 파장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상처가 심한 부분을 살려냅니다. 살아내려 몸부림쳐온 자신에게 ‘짠한 마음’이 들고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힘들고 지칠 때, 척박한 길가에서 살아남아야 할 때, 자신을 돌보면서 버티는 힘을 키워내는 과정, 그게 상담입니다. 누구나 심리상담을 했으면 한다는 말은 결국, 누구나 자기를 돌보면서 살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자식 돌보고 부모 모시느라 '나'를 잊고 살아온, 해야 하는 일에 치이다 하고 싶은 일을 잊고 살았던,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괜찮은지' 물을 여유조차 없었던, 누구에게나 상담 경험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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