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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pr 26. 2023

분기탱천 엄마들의 힘,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분노에는 산책이 최고의 명약이다. 생각과 대화에도 산책은 최고의 보배다. 자연과 호흡이 따르는 명상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꽃과 나무, 햇볕과 바람 사이로 스며드는 고요와 자신만의 시간. 그 시공 사이로 나 자신과 분노와 허튼 생각을 분리하고 떠나보내면 된다. 마음속의 분노를 자아와 헷갈리지 않고 분리 배출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오락가락 분노와 내 마음을 한 몸으로 생각하다 보니 분노가 자신을 삼키기도 한다. 특히나 공분(公憤)은 몸과 정신 건강 모두에 해롭다.


열대의 어떤 나라는 4월의 체감온도가 벌써 50도가 넘는다고 하지만, 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 마음속의 체온은 그보다 훨씬 더 높다. 물론 정치시국과 국가의 미래에 예민한 분들만 그렇다. 그냥 눈과 귀를 막고 일상 속에서 견디는 분들은 그저 그런 세상살이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 사적인 감정에 충실하고 공적인 분노에 눈을 감다 보면 그 일상이 한없이 가벼워질 수도 있겠다.


철쭉이 다투어 피는 하천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들과 서로 경쟁하지는 않지만, 빠른 걸음이라 많은 이들을 제치며 걷는다. 바람을 타고 꽃가루가 날린다. 봄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듯이 계절의 순환 또한 그렇게 피듯이 왔다 간다. 짧은 봄은 안타까움을 더하고 더 짧은 인간의 생은 서글픔을 더한다. 그런 까닭에 '봄날은 간다'의 가사는 비장한 조사(弔詞)와 같다.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럼에도 봄날의 햇볕은 찬란하다. 온유하게 빛나며 생의 찬미를 더한다. 걷기가 한 시간 정도 이어질 무렵 수줍게 노을이 고개를 들었다. 붉게 번져가는 서쪽 하늘은 옅은 황사를 뚫고 피어나는 꽃 같다. 앞에 5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서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걷고 있었다. 멀리서 들으면 마치 싸우는듯한 격한 대화였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지기 전에 우렁찬 목소리부터 들렸다.


"아니, 지금이 국난이지. 이게 뭐냐고! 어떤 영업사원이 멀쩡한 나라를 팔아먹게 생겼는데... 왜 사과도 하지 않은 일본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피해자 배상도 우리(기업)가 하겠다고 그러고... 이렇게까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무너진 적 있었나. 우리가 태어나기 100년 전이라면 몰라도 내가 기억하기에는 지금처럼 나라가 개판인 적은 없었어!!!"(그분 앞에 하찮은 영업사원이 있었다면 아마도 생존보장은 어려웠으리라!)


 분이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주먹을 들어 올리며 친구에게 말하는 상황이었다. 옆의 그 친구분은 한술 더 떠서 송곳 같은 몇 마디를 보탠다.


"그러니까 선거를 잘하고 정치하는 인간들을 잘 뽑아놔야 하는데... 내가 우리 남편이랑 얼마나 싸웠는데. 그렇게 사람 보는 눈썰미가 없으니까... 우리가 요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거 아니냐! 평소 말대꾸도 잘하던 남편이 요새는 꼴랑지 내리고 아무 말도 안 해. 지금 봐봐라. 국민들은 불안불안, 수출은 엉망진창, 국가안보는 불안하다 못해 전쟁 일보 직전이잖아. 이 상황이 정상적으로 보이면 그런 인간들이 이상한 거 아닌가! "


"그러니까. 우리처럼 가방끈 짧은 사람들도 외교는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친구도 적도 만들지 말고 하는 게 맞는데... 왜 동네 깡패 주제에 대도시 조폭들에게 싸움을 거냐고! 고작 5년짜리 지들이 뭔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불필요한 시비를 거냐고! 정작 큰일이 벌어지면 감당하거나 책임질 수는 있고~~ 욕도 아까운 인간들."


"우리 보통 사람들 관계도 다 그렇잖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사는 게 맞잖아. 가족이나 친한 친구덜 빼놓고는 영원한 아군이 어딨어! 다 거기서 거기지... 국가 간 관계는 더 그렇지. 영원한 우방이 어딨어. 다들 지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거지. 그런데 정치하는 인간들이 이걸 모르니. 바보들 아니냐고요! 참 내 복장 터지네!"(서로가 화나고 우스운지 쳐다보며 웃었다.)

산책로에 사람들이 노을에 물들고, 계절과 감성에 취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저녁으로 가고 있었다. 분기탱천한 엄마 두 분도.

보행자가 걷는 길 바로 옆은 자전거 도로다. 그 위를 달리던 한 자전거에서 크게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선글라스의 라이더는 나훈아의 트로트를 좋아하는가 보다. 느닷없는 '테스형'이 등장했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앞의 두 분 중 한 분이 쯧쯧거리며 비매너에 대한 눈총과 손가락 비난을 퍼부었다. 자전거를 탄 테스형은 민망한지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를 남기고 신속하게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테스형은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역시나 부끄러움은 한없이 예민한 우리들의 몫이었다.


"그니까 한 인간의 허접한 자존심이나 똘끼 세우려고 외국에 나가있는 우리 기업들 다 어떡하냐고! 중국이나 러시아에 오랫동안 투자해 온 기업들이 받을 그 막대한 손해는 누가 보상해 줄라나? 정치는 경제를 이길 수 없다는데... 한두 마디 생각 없는 무개념 막말 정치로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를 망치면 되냐고!"


"그리고 전쟁이 그리 쉬운 줄 알아. 딴 나라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이 좁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3차 대전 아니겠냐고. 아무리 군대를 안 갔다 왔기로서니 이런 상식도 몰라. 자기네 땅 아니라고 각종 무기 팔아 돈 벌고... 한국 사람들 얼마 죽던지 신경 안 쓰고... 폭싹 망한 다음에 재건한다고 또 돈 벌고... 그게 미국이나 일본이 노리는 거를 왜 모르냐고!!!"


두 분의 샤우팅 창법에 가까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찬찬히 쳐다보니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사방에 피어있었다. 혹여나 나태주 시인도 이런 풍경을 보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대화는 두 분이 이어갔지만 불청객 한 사람도 무언의 화자가 되어 끼어들었다. 이분들은 전생에 용맹 독립군이 아니었을까. 100년 전이었다면 틀림없이 독립군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매국노 친일파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 봄날 오후의 산책로에서 두 분의 분노에 기대어 내 자신의 분노까지 실어서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시청역 주변에서 토요일 오후의 리추얼이 되어버린 촛불집회 현장. 본행사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면 커다란 트럭 뒤에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뒤를 따른다. 이들은 각종 구호를 외치고 독립군가를 따라 부른다. 독도는 우리 땅에서는 함께 목청을 높이고, 시청 앞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분향소 앞에서는 함께 위로를 보낸다. 가만히 행렬을 둘러보면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 유모차와 휠체어도, 초등학생과 팔순의 노인들도 함께 한다. 삼삼오오 가족들과 친구들이 같이 걷는다. 그들의 눈빛 속에 비통함과 분노가 가득 차있다.


행사장의 각종 부스와 자원봉사자 분들을 보면 여성들의 비율이 상당하다. 행진하는 시민들 중 중장년층 여성의 참여도와 열정은 하늘을 찌른다. 이분들은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이들과의 기싸움에 있어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산책길의 두 분도 어느 행진 대열에 끼여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엄마들의 격정 대화에 가슴속까지 붉게 물든 산책이었다.


봄날은 사람의 낯빛을 닮는다. 우리의 봄날이 애처롭게 사그라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반도의 봄날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속 불편함 때문이지 않을까. 누군들 지금 상황이 국난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우리의 운명 속에서... 한가로이 봄날을 즐길 수 있는 그저 아름다운 봄날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분기탱천한 두 분을 조심스럽게 지나쳐 걸었다. 스쳐 지나가는 엄마들의 실루엣은 비장했고, 봄날 주말의 저녁은 노을 속으로 깊어져갔다. 그분들의 대화가 멀어질 무렵 사방이 차분한 고요 속에 잠겼다.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저녁. 우리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야 될 평온한 내일. 그 소망 속으로 걸어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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