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에어비앤비 디자인 디렉터 키난이 쿠팡을 선택한 이유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키난은 2009년 뉴욕의 디자인&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1년에는 공동 창업을 시작해 비주얼 다이어리 앱 ‘데이즈(Days)’를 만들었다. 데이즈는 런칭 2년 만에 높은 가치로 평가받으며 야후에 인수된다. 이후 에어비앤비의 프로덕트 디자인 디렉터로 합류해 6년간 주요 프로덕트를 선보였다. 현재는 쿠팡 UX팀의 디렉터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글은 Keenan의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한 글입니다.
이직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부분을 고민하는가? 회사의 기업 가치, 개인 성장 가능성, 기업 문화와 팀원들의 분위기, 처우, 이직 시기, 업계 평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것이다. 나는 회사를 선택할 때 반드시 아래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1. 회사가 지닌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갈 곳인가?
2. 그 성장하는 조직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여러 기업의 제안을 검토해보던 중 쿠팡 리크루터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가 소개한 쿠팡의 현재와 미래는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이에 앞서 밝힌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질문이 확신을 주는 답으로 바뀌기까지, 그 과정에서 느낀 쿠팡의 가치와 더불어 고민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처음 리크루터에게 쿠팡이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라 전해 들었을 땐, 사실 그 내용을 깊이 공감하기 어려웠다. 커머스 분야를 잘 알지 못했고, 한국 회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내가 수집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전자상거래에 이상적인 시장이다. 인구 밀도가 매우 높고, 인터넷 및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적인 수치에 달하며, 네트워크도 초고속이다. 이 특수한 환경은 전자상거래와 배송 등의 물류망이 더 원활히 움직이게 한다.
쿠팡이 판매하는 상품 중 상당수가 당일 또는 다음날 새벽에 배송된다. 특히 지금처럼 오프라인 쇼핑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빠른 배송은 고객의 일상에 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쿠팡이 이토록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수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자체 풀필먼트를 구축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바로 받아들이고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편이다. 15년 전 자원봉사 겸 한국에 2년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애플 페이'나 '구글 페이 센드'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한국인들은 플립폰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쿠팡은 신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풀필먼트 환경을 촘촘하게 구축해나갔다.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 환경과 쿠팡의 풀필먼트를 파악하고 나니 그곳에서 내가 어떻게 일할 수 있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이디어를 내면 곧바로 MVP(시장의 반응을 테스트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능으로 만든 프로덕트)로 테스트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어 반영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아닌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 큰 매력을 느꼈다.
실제로 여러 기사에서 접한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배송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진입장벽이 낮고 인프라가 풍부한 환경에서는 경쟁사가 좋은 모델을 기반으로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 이 시장을 선점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쿠팡은 이 혁신을 위해 풀필먼트 센터를 선택했다. 다른 이커머스는 기존 물류센터를 거치기 때문에, 가격이나 배송을 자유롭게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쿠팡은 자체 물류망으로 기존의 유통 프로세스를 줄여 배송 속도를 높였다. 자체 풀필먼트가 있다는 건 쿠팡이 판매자와 유통, 고객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얘기로 통한다. 수많은 리테일 상품을 자체 직매입 구조로 엮어 유통마진을 없애고, 여기에서 절감된 비용을 고객 서비스에 투자했다. 쉽게 말해 쿠팡은 직매입과 직배송으로 판매자와 고객의 중간 단계를 없애면서, 고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송 경험‘과 ‘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내가 바라본 쿠팡의 유니크한 가치는 유통과 가격, 서비스 등 최고의 고객 경험을 위해 모든 부분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지점이었다. 이런 환경이 내겐 더 큰 도전 기회처럼 다가왔다. 쿠팡의 풀필먼트는 단순히 비용 절감하는 것을 넘어 서비스의 품질, 경쟁 우위와도 직결되는 듯 보였다. 고객과 직접 맞닿아있는 실체화된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것들이 더 고도화된다면 쿠팡은 지금보다 더 깊게 고객의 일상에 침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는 것, 쿠팡의 궁극적인 목표다. 입사 날 받은 웰컴 카드에서, 고객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문구를 봤다. 도전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가슴 벅찬 한 줄이었다. 치열한 환경 속 한발 앞서 도전할 수 있는 담대함은 ‘고객 경험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쿠팡인들의 공동 의식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무한한 성장 가치가 있는 쿠팡의 여정에 함께하게 된 지금, 첫날 읽은 웰컴 문구의 의미를 더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선택에 앞서 회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동시에 내가 어떤 역량으로 이 회사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이로써 내게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에 대해 네 가지를 자문해봤다.
쿠팡과 같은 종합 이커머스 서비스는 취급하는 품목 수가 다양한 만큼 고객의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에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여행에 국한된 서비스는 연례행사처럼 사용 주기가 긴 편이지만, 생필품 쇼핑을 주로 하는 커머스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사용 주기가 짧다. 그래서 고객의 일상에 더 깊게 관여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내가 회사를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이다. 업무에 있어서는 늘 나를 자극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UX팀의 리더, PO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런칭 컬처(Launching Culture)와 랜딩 컬처(Landing Culture)에 대한 이야기였다. 프로덕트를 공들여 제작해 런칭한 후, 또 다른 런칭을 위해 새로운 팀을 구축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쿠팡은 일단 런칭한 뒤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가 고객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문제를 발견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프로세스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고객이 처한 상황에 따라 수백 가지 문제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테스트를 진행하는 식이다. 연 단위 대규모 프로젝트를 런칭하기 위해 개발, 마케팅, 홍보 팀과 전반에 걸쳐 공동으로 작업했던 내 지난 업무방식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전에는 무언가를 의사결정할 때 종종 직관을 따랐다. 하지만 쿠팡은 누군가의 직관이 아닌 철저한 가설과 검증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구성원 모두가 주도적인 자세와 논리적인 사고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나 역시 조직에 합류한 이후 가설을 검증하고 깊게 파고들면서, 문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새로운 관점을 열어가는 중이다.
쿠팡은 디자인만 잘하는 디자인 리드를 원하지 않았다. 디자인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면서, 디자인과 비즈니스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사고할 줄 아는 리드가 필요했다.
이전에 약 2년간 회사를 직접 운영하며 디자인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들을 처리한 경험이 있다. 사업 계획을 짜고, 앱도 만들고, 브랜딩과 디자인도 다 하고, 팀도 관리하고, 투자를 받기 위한 IR도 준비해야 했다. 이전 직장에서도 그로스 팀을 이끌 땐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깊게 이해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땐 PM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전체 팀을 관리하고, 비즈니스 계획을 짜고, UX리서처 및 데이터 전문가들과 수치를 분석하는 등 여러 책임이 주어졌다. 다양한 경험 덕분에 디자인을 할 때 비즈니스 지표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데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계별로 더 폭넓은 전략을 세우는 것부터 실제 운영을 통해 비즈니스 성과를 내기까지 소임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팀 성장에 기여하기 위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쿠팡에 입사하기 전, 리드들과의 대화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가 있었다. 쿠팡의 디자이너들은 늘 비즈니스 임팩트를 고려하고, 고객의 일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태도로 접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멋진 생각이 좀 더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지금껏 지켜온 철저한 프로세스와 전통성을 충분히 존중하고 전문성을 인정하되, 성장을 위해 조율이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시니어로서 다가가려 한다. 또한 팀원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수준이라 생각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독려하는 것도 내 임무일 것이다. 팀원들에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계속 도전하려는 태도를 심어주고 싶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끝내 좋은 결과를 이뤘을 때, 이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할 거라 믿는다.
나아가 선배 디자이너로서, 개개인의 감정적인 부분을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는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 팀원들과 상담할 때 언어나 문화적 장벽에 개의치 않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공통된 가치를 공유한다면 충분한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내부에 전문 통번역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덕분에 일할 땐 큰 문제가 없지만,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한국어 실력을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성장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정서적으로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었으면 한다.
로켓배송만큼 빠르게 바뀌는 환경 속에서 회사의 성장세를 깊이 체감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에너지가 넘친다. 내로라하는 실리콘밸리 기업과 충분히 어깨를 견줄 만한 스케일과 문화, 그리고 그보다 더 흥미로운 기회로 가득하다.
그간 팀원 개개인에게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쿠팡은 연차나 직급,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가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비즈니스 영향, 변수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논의하며 전략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멋진 동료들과 함께 쿠팡에서 성장해나갈 모습이 기대된다. 너무 먼 미래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되돌아보면 미래에 대한 예측은 항상 빗나갔다. 커리어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가능성을 무한하게 열어두고 싶다. 창업, 디자인 시스템, 그로스 해킹, 브랜딩, 그 외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배워온 것처럼, 쿠팡에서는 어떤 기회와 배움이 있을지 사뭇 설레기도 한다. 도중에 실패할 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Interviewee Keenan
Illustration by Erica
Edited by 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