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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2019

시녀 이야기 + 증언들 by 마거릿 애트우드 (2)


<증언들>이 34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녀 이야기>를 쓸 때는 <증언들>을 쓸 계획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리 한 치의 어색함도 없이 후속작을 내놓을 수 있을까. 마치 단숨에 2부작을 써낸 뒤 2권은 34년 뒤에 출간한 것처럼 말이다.

전편인 <시녀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래 브런치 글에 적었다.

 

https://brunch.co.kr/@gn20sep/72


<시녀 이야기>는 시녀 '오브프레드'의 단일한 시점에서 풀어낸 이야기다. 그녀의 독백을 통해서 길리어드 정권의 악랄한 시스템, 역시나 많은 허점을 보이며 어가고 있는 뒷모습, 정권의 붕괴를 한 '메이데이'의 움직임을 알았다. 에필로그를 통해 2195년 길리어드 연구학 총회의 강연도 들었다. 정권은 붕괴되었다. 마지막에 오브프레드는 사라져 간다. 걸어가는 방향인지 암흑인지 빛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사학자들이 알고 있듯이, 과거는 위대한 암흑이고, 메아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속에서 목소리들이 우리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들은 그들이 온 세상의 어둠에 흡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우리 시대의 선명한 빛 속에서는 그 목소리를 정확히 해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시녀 이야기>의 역사적 주해 중에서


독자들은 <시녀 이야기>를 덮으면서 여러 질문을 던졌다. 완벽한 통제를 지향했던 길리어드 정권은 어떻게 붕괴되었는가. 길리어드를 살아내던 다른 구성원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여느 다른 전체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는 모습을 기승전결 써머리로만 접했던 독자에게도 친절한 답을 줄까.


35년은 가능한 대답을 생각하기에 긴 세월이고, 사회 자체가 변하고 가능성이 현실로 바뀌면서 대답들도 변해 왔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시민들은 30년 전보다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출간될 당시엔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였다) (중략) 길리어드는 어떻게 붕괴했는가? <증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썼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맺음말


길리어드 정권은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길리어드의 내부자 세 명의 여성이 이를 증언한다. 아주머니 계층의 총책임자 '리디아 아주머니', 미래에 '아내' 계층이 될 예정이었던 사령관의 딸 '아그네스', 시녀에게 태어났지만 캐나다로 가까스로 넘겨진 소녀, 정권 붕괴를 촉진시킨 '메이데이'의 상징적인 인물 '니콜 = 제이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축은 '리디아 아주머니'의 증언이다. 길리어드 모든 여성들의 모범이 되고, 시녀 시스템을 만들어 관리하며, 사령관들(아내들은 물론)도 건드릴 수 없는, 아주머니 계층은 군부와 함께 길리어드를 떠받치는 양대 축이다. 길리어드 정권 하에서 어떻게 여성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초기 위정자들은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서 여성들을 더 잘 이해하는 여성들의 지성과 감성을 악용했다.


대학에서 얻은 번지르르한 겉치레는 여기서 내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 노새 같은 하층민 아이로, 결의에 찬 시궁창 쓰레기로, 분에 넘치는 출세를 노리는 꾀돌이로, 한 칸씩 사다리를 올라가는 전략가로 돌아가야만 했다. (리디아 아주머니의 증언)


정권은 대놓고 썩어 있었지만,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는 내부적 요인은 은밀하게 숨어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세 여성이 자리하는 사회적, 공간적 위치의 격차만큼 별개의 증언들이 병렬식으로 나열되다 점차 하나의 지점으로 모인다. 긴 소설을 읽을 때 극의 흐름을 좌우하는 개연성에 집착을 하게 되는데, 마거릿 애트우드 특유의 디테일이 걱정을 불식시킨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역사 어디선가 봤음직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주인공들의 심리적 트라우마, 배경이 된 가족사, 일상과 심리의 디테일이 어우러져 소설을 견고하게 이끌어 나간다.


당신의 소설을 드라마화한 넷플릭스 <그레이스>에 카메오로 출연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출처 : Huffpost)


증언을 하는 세 명의 여성 외에 주목해서 봐야 할 캐릭터는 '베카'이다. 그녀는 직접 증언하지 않았지만 아그네스에게 진정성 있는 조언을 하며 그녀를 이끈다. 말없이 성의를 다하여 친구를 보살피고, 경거망동하며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으며, 본인이 가진 지혜를 상대방을 위해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그네스가 살얼음을 걷는 동안 곁을 지킨 동료애, 동료들을 위한 자기희생, 베카 임모르텔 아주머니를 추모하는 동상에 대한 묘사로 소설을 맺음 한다.


이 두 권을 모두 읽어야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며, <증언들>을 읽기 전에 <시녀 이야기>를 통해 길리어드 시대를 미리 학습하길 권한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스스로 소설가로서의 이야기 재능을 자랑스러워했을 만하다. 인간의 서사 능력이 진화의 주요 동인이라며, 인간의 이야기 재주를 통해 가치관을 논의할 수 있어 이 덕택에 인류가 발전했다고 응수하는 그녀다. 두 권 도합 1200쪽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흡입력 있는 대단한 필력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디스토피아 소설을 줄기차게 발표하면서, 인류가 잡을 수 있는 희망의 동아줄은 문화적 상상력임을 강조하고 있다. 상상력의 바탕은 역사에 둘 것,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을 것.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역사를 이야기를 통해 살아 숨 쉬게 만들었고, 독자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거와 현재의 나를 생생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종말적 상황에서도(시녀 이야기, 증언들), 30년의 감옥 생활에서도(그레이스) 필사적으로 살 길을 모색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겠다는 에너지를 얻는다.


인간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사건은 소설에 쓰지 않는다.
-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은 이야기꾼에 의해 각색된 역사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보여준다. 사소한 이야기건 그녀들에게 행해진 폭력의 이야기건, 쓰이고 읽어가며 역사는 견고해지고 후세에 기억이 전달된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다른 소설 <그레이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하층민 여성들의 고통은  미래의 길리어드 정권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자기 복제를 거치는 역사, 역사에 숨을 불어넣는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는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작가적 재능이 필요하고, 작가는 역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함을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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