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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1985

시녀 이야기 + 증언들 by 마거릿 애트우드 (1)


인류란 참 잘도 적응하고 살지. 정말 대단해.
소소한 보상이 조금만 있어도 어떤 상황에든 적응하고 사는 걸 보면.
<시녀 이야기> 중에서


여성주의 작가로 유명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1985년작 소설로, 2019년에 후속작 <증언들>이 출간과 동시에 맨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 그래픽 노블이 같이 출간되었는데, 시각화된 소설 속 이미지들은 소설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줄 만큼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다.  


무대인 길리어드 정권(Republic of Gilead)구약 성경을 법으로 삼아 시민들을 통제하는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라더를 연상케 한다. 개인의 욕망, 특히 여성의 욕망을 거세하였고 여성을 '아주머니', '아내', '시녀', '하녀' 이렇게 네 개의 계층으로 나눴다. 아내, 시녀, 하녀 계층은 '사령관'(남성 = 지배자 = 감시자)의 가정과 번성을 지탱하기 위해 존재하는 그룹이고, 아주머니 계층은 나머지 세 계층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출산을 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고 버려지고, 정권의 기치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성벽에 매달거나 구제 의식을 통해서 벌한다. 길리어드 정권은 시작과 동시에 모든 여성에게서 직업을 빼앗고 통장, 카드, 통신 수단을 모두 막아버린다. 임신이 가능한 여성은 '시녀'가 되어 '아내' 대신 출산을 위한 씨받이로 사령관 집으로 차출되고,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은 '콜로니'로 분류되어 방사선 노출이 심한 위험한 노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시녀 이야기>는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착취를 가장 많이 당하는 '시녀' 계층의 자기 고백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주인공 시녀 '오브프레드'(of Fred, 프레드라는 사령관에게 소속되었다는 의미이다. 향후 작가의 기고글을 보니 'offered'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제공되었다 혹은 희생되었다는 의미. 주인 사령관이 바뀌면 시녀 이름도 바뀐다)는 길리어드 정권이 장악할 무렵 국경을 넘다가 잡혀 남편과 헤어졌고, 억압된 다수의 평범한 여성들을 대변한다.

프레드 사령관 집에 보내진 이후 살아남기 위해 본인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살아간다. 상류층 계급인 '아내'는 시녀와 함께 남편(사령관)과 동침을 해야 한다. 이 일을 굴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비치지 않게 가식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시녀와 주인의 성관계나 시녀의 출산 과정을 일종의 의식처럼 성스러운 의례 인양 묘사하는 부분은 매우 그로테스크하고 충격적이다. 오브프레드는 정신을 온전히 붙들어 매기 위해 발버둥 친다. 아내-시녀-사령관 관계는 누구에게 더 끔찍할까. 아내일까, 시녀일까. 길리어드 정권은 계급과 무관하게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최악의 고통을 주었다.  


여성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가학적인 그룹은 '아주머니' 계층이다. 길리어드 정권의 여성들을 교육하고 정권의 폭력적인 기치를 실천하기 위해 이용된다. 아버지들, 남성들이 하는 일은 중요하고 고귀하며,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사사로운 일은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라 여성들 아주머니 계층에게 일임한다는 논리다. 악을 행하는 도구로 출발했던 아주머니 그룹은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주체로서 거듭나고 그로써 지위를 공고히 한다.  


군대에 왔다고 생각해라. 우리 목적으로 보면 너희들의 손발은 필수적인 부위가 아니야.
그 여자들은 출산이 무의미하다고 말했지.(중략) 그 여자들은 게을렀어. 게을러터진 화냥년들이었어.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 리디아 아주머니


시녀 이야기의 커버 이미지 (출처 : 2017, 뉴욕타임스)


오브프레드의 독백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 편집된다. 시녀로서의 독백, 과거의 연애 지사, 어머니나 절친 모이라와 주고받았던 과거의 대화들. 어머니와 모이라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대변한다. 오브프레드는 길리어드 정권 이전엔 젠더 이슈에 대해 무심했고, 어머니와 의견 충돌이 잦아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모이라나 어머니의 가시 돋치고 직설적인 말들을 해석 없이 인용하여 그들이 추구하고 쟁취했던 페미니즘의 가치를 되새긴다. 여자들의 우정과 연대 의식은 끈끈해진다.


너희에게 이런 세상을 만들어 주려고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저 친구(애인 루크) 좀 봐. 당근을 썰고 있잖아. 바로 저걸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몸을 탱크가 밀고 지나갔는지 모르는 거냐?
- 어머니의 독설


나는 어떤 면에서 우리 엄마를 존경했지만, 우리 관계는 한 번도 쉽지 않았다. 내게 거는 엄마의 기대가 너무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내가 당신의 생을 옹호하고, 당신의 선택을 편들어 주길 바랐다. 나는 내 인생을 엄마가 내건 조건에 맞춰 살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사상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자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중략)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 오브프레드의 독백


굴욕을 참고 견디며 인내하던 시간의 막바지에 접어들며, 오브프레드는 상반된 감정으로 갈등한다. 체제전복을 위한 정치적 신념은 옅어지고, 사령관의 하인인 닉과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탐닉한다. 전체주의 정권이 인간의 정신을 모두 장악하고 통제하려는 상황에서, 개인의 욕망은 체제 전복을 위한 불쏘시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이 체제에 희생당하거나, 그에 반하여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올바름을 추구하거나 투쟁하는 여성 캐릭터는 페미니즘 소설의 단편일 뿐이다. <시녀 이야기>의 여성들은 인간 군상을 대변하며, 어떤 행위와 의사 결정도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


<시녀 이야기>는 '듣는 소설'이다. 오브프레드는 불특정한 후세를 위하여 자신을 둘러싼 '역사 현장'을 30개의 카세트테이프에 저장해 놓았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이 비밀스러운 기록을 전한다. 우리의 시대는 이러하였고, 앞으로 너희 세대는 어떻게 할 것이냐. 충만한 미래를 약속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평범한 일상과 자유는 당연히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오브프레드의 독백 내레이션은 지난 일을 담담히 회상하는 어조로 줄곧 이어지는데, 500쪽이 넘는 풍부한 디테일과 함께 진정성을 더하는 요소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전례가 없는 사건은 소설에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한 시대의 역사가 후대에 교훈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체제가 들어설 때 이전의 요소들을 상당히 답습하며 만들어진다. 미워하면서 배워가는 어리석음의 순환, 부정하며 자기 합리화를 시켜가는 위선적인 역사의식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길리어드 정권은 무에서 만들어진 독창적인 절대 악이 아니라 이전의 악이 재조합된 산물이다. 




다른 여자들? 글쎄, 우리의 수집품들은 상당히 수준이 높지. 저기 있는 저 여자, 녹색 옷 입은 여자 말이오. 저 여자는 사회학자 라오. 아니 전직 사회학자라고 해야 옳겠군. 저기 있는 여자는 변호사였고, 저 여자는 사업을 했지. 관리직이었다고 하더군. 패스트푸드 체인이었다나, 아니 호텔이던가? 저녁 내내 대화만 나누고 싶을 때는 아주 훌륭한 상대가 되어 준다고 들었소.
- 프레드 사령관


지배계급인 사령관들의 수집품으로 전락한 여성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겪어낼 것인가. 이야기의 결말은 여전히 암울하다. 오브프레드에게 탈출의 희망을 제시하던 '닉'도 혁명 그룹의 일원 일지 또 다른 늪 일지 예상할 수 없다. 길리어드 정권이 막을 내리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34년간 이어져온 질문과 답이 후속작 <증언들>에 모아졌다.

 

이것이 내 끝이 될지 새로운 시작이 될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른 도리가 없었기에 이방인들의 손에 내 몸을 맡겼을 뿐. 그래서 나는 차에 오른다.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암흑으로 아니 어쩌면 빛으로.
- 오브프레드의 독백


에필로그에 2195년 6월 25일 주최된 길리어드 연구학 심포지엄의 전문가 강연을 통해 '시녀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주해를 달았다. 가상을 어떤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꼭 읽어봐야 할 정수다. 그다음에 후속작 <증언들>을 펼치면 된다. 34년이란 시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빈틈없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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