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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더트 (American dirt)

by 제닌 커민스


만사가 귀찮을 때, 아무것도 집중할 여력이 없을 때 이 책을 들어야 한다. 몰입도가 최고이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수백 페이지가 내리 읽힌다.

잔혹한 멕시코의 카르텔, 지옥 같은 살육 현장, 가족을 잃은 슬픔을 여밀 시간도 없이 도망쳐야 했던 두 모자의 인생, 책방을 운영하며 여유 있던 지식인 중산층에서 한 순간에 난민으로 나락한 여인의 삶.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서술한 표지를 훑어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긴 소설이었다.




보기만 해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책을 골라 책방에 진열하던 한 여자가 있다. 감동적이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꿔주는 책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던 중산층 지식인이었다. 자신과 아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남편은 소신 있는 기자였다. 사랑하는 8살 외아들은 지리에 대해 공부하길 즐거워하고 나이에 비해 속이 깊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꿈꿔왔던 책방 주인의 삶을 병행하던 사람에게 한 순간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편안한 삶을 누리던 엘리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작은 여행 가방에 의지하여 어린 아들과 수천 로를 도망쳐야 한다면 어떤 결정과 행동이 기다리고 있을까. 보통 사람의 삶이 예고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면 어떻게 이겨낼까. 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서 도망칠 수 있을까.


호수 위 겨울 안개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 내러티브의 힘

작가가 밝히기를, 이 소설의 배경에 자신과 남편, 가족이 무관하지 않다 하였다. 2017년 언론인에게 가장 위험했던 나라인 멕시코, 어떤 처벌도 받지 않던 카르텔, 구제도 받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야 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지점을 더듬어본다.

장애물, 모호한 미래, 목숨을 건 투쟁의 여정이 결합된 숨 가쁜 스토리를 따라간다. 희미하지만 앞으로 난 길을 따라 기차를 타고 있으며, 코요테만 믿고 걸어간 사막의 저편에는 결국 길이 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읽는다. 앞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예초에 없었다면 시작할 수 없는 긴 여정을 함께 했다.


작가는 난민과 이민자들의 삶에 애정을 갖고 같은 인간으로서 봐주길 원했다. 동등한 시민 권리와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주창하는 미국 내 아시아인들의 움직임도 그렇다. 고향에서 임시로 떠나 있는 이방인이건, 장기간 떠나 있는 이민자들이건 소리 없는 불특정한 이미지로 묻히지 않았으면 한다. 각자의 소중한 삶과 직업, 가족이 있는 같은 인간을 개별화된 소중한 객체로 보여지길 원한다.


우리가 끝내 듣지 못하게 될 수천만의 사연을 기리는 방법으로 독특하고 개인적인 사연 하나를 픽션으로 선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가 난민들을 개별화된 존재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뉴스에 나오는 난민들을 볼 때 저들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랐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문제

작가가 설명한 도덕적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 책은 인기도와 비례하여 논란을 사고 있다. 우선 작가 본인의 인종 색을 두고 설전이 오갔다. 출판하는 책에 따라 본인이 편한 대로 인종 색을 택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저번엔 화이트라 그랬다가 이번엔 라틴계라고 에둘러 얘기하네' '타인의 고통을 흥미진진한 소재로 삼은 포르노와 진배없다'. 인종 색을 공감하기 어려운 우리조차도 비판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아메리칸드림'이란 은 더 이상 공감되지 않는데 미국이 이상적인 지향점으로 설정되다니, 출구 없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작가는 집필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로 평가받는 경우도 많다. 인류애를 나누고자 했던 제닌 커민스의 주 독자층은 결국, 도덕적 환기를 통해 정제 의식을 거치고자 하는, 자칭 결백하고 깨어있는 백인층이 되어 버렸다. 언어는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 결과 작가는 자기 책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휘둘리는 중이다. 삶의 한복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억압받는 이를 대변하고자 했던 선한 의도가 까발려지, 자극적인 소재에 기생하는 이로 비판받고 있다.


위험은 시시각각 커져가는데 같은 강에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으며, 광활한 종이 여백에 간담이 서늘해지는데 눈을 가린 채 미로 속에 발을 들여야 하니 말이다.
- 마거릿 애트우드, 글쓰기에 대하여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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