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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도 무서워했다던 독일 숲

숲에서 걷는다는 것


여기가 맞나 반복해서 구글 맵을 확인 해보며 인기척을 찾아보지만, 사람이 없다. 새소리와 우리의 숨소리만이 청각을 자극하는, 고요한 정적이 압도적이다. 경고판을 놓친 것은 아닌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깊숙한 검은 공간에서 곰이 기어 오거나 멧돼지가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이 길이 아닐지도 몰라, 여유 있게 사진을 찍던 대범한 사람은 어디 가고 길을 헤매고 있다며 남편을 타박하고 있다. 마침 멀리서 모친의 카톡이 도착한다.

숲 속 다닐 때 곰이나 멧돼지 같은 거 조심해. 혹시 나타날지 모르잖아.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지, 걸음이 느리던 나는 뛰다시피 남편과 아이들에게 따라붙는다. 



침엽수가 울창한 전형적인 독일의 숲은 예초에 두려움이 아닌 경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익히 읽어왔던 그림 형제의 동화에 나오는 숲은 어둡고 으스스한 이미지이다. 거대한 토이토부르크 숲(Teutoburger Wald)은 초록이 매우 무성하게 우거져 있으니 검은빛을 띨 정도로 어둡고 무섭다. 독일 라인강이 로마제국의 국경선이 된 배경에 이 숲이 자리하고 있다. 광야에서 펼쳐지는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로마 군단 수 만이 학살당하고 로마의 전진이 멈춘 배경에는 독일 숲이 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자작나무와 침엽수가 날카롭고 도도하게 뻗은 자태를 보며, 그들이 겪어온 역사의 시간을 가늠해본다.  



독일 숲에는 균형, 단순성, 규칙성, 대칭성이라는 아름다운 원칙이 지배한다. 그리하여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대도시를 떠나 숲으로 향한다. 도시인들은 일 자체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걷기에 집착한다. 하루에 1만보를 걷겠다는 결심은 여기저기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운동에 대한 강박 때문일 수도 있겠고, 단순하고도 개인화된 이 반복 행위가 편안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걷는 행위에 몰입하다 보면, 도시 삶에 곧추서 있던 교감 신경이 꼬리를 내리고 긴장이 풀린다. 문명의 이기를 쫓지만 현대적인 삶에 맞추어져 있지 않은 우리의 몸은, 이 원시적인 숲을 좋아한다. 번잡한 도시에서 빈번한 사회적 접촉과 바쁨을 접어두고, 닌텐도 앞에 앉으려는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숲으로 향하는 이유다.



단순한 공간 안에서 단순한 걷기 행위를 하는 것일 뿐인데도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실외 활동을 갈망하는 우리의 몸이 곳에서 보상을 받고 위안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숲에서 걷기란 인간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조건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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