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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16. 2019

피스테라

에필로그 - 순례길, 그 이후 이야기

36일차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 - 피스테라(Fisterra)



오늘은 산티아고 근처 해변도시인 묵시아와 피스테라에 가기로 했다. 어제 예약한 버스를 타러 아홉시에 숙소에서 나왔다.

인포메이션 바로 앞 바에서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먹고 시간 맞춰 버스 타는 장소로 갔다. 투어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적당히 많아서 옆자리를 비워둔 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출발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다리가 이쁜 폰테 마세이라,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가방을 버스에 두고 마을 구경을 하다 보니 새삼스레 순례자가 아닌 관광객이 된 것이 실감 났다.


다음으로는 묵시아로 갔다. 묵시아는 일몰이 정말 이쁘기로 유명한 마을이라 처음엔 여기서 머물 생각이었는데, 다른 사정들 때문에 피스테라에서 묵기로 했다. 근데 묵시아에 도착해서 바닷가와 지평선을 보니, 여기서 일몰을 보면 정말 이쁘고 한가하겠다,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바닷가 바위 근처에 돌탑을 쌓아놓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다음으로 피스테라 등대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곳도 일몰을 보기 좋은 장소라고 했다. 묵시아와 피스테라에는 0km 표지석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잠시 후 버스는 피스테라 마을 한복판에서 우리를 내려줬는데, 나랑 일행들은 여기서 버스랑 헤어지기로 했기 때문에 가방을 들고 내렸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있어서 곧바로 레스토랑으로 갔고, 그냥저냥 감자튀김이 많이 나오던 메뉴를 먹었다.


오랜만에 알베르게에 가서 짐을 두고, 잠깐 낮잠을 자고서는 밖으로 나왔다. 근처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주인 부부가 너무 친절하고 흥이 넘치셨다. 아이스크림은 카카오초코랑 바닐라 맛을 먹었는데 진짜진짜 맛있었다.


그리고 곧장 근처에 작은 해변가로 갔다. 아이들 몇 명이 놀고 있었고, 같이 갔던 일행은 여기까지 왔으니 발은 꼭 담그고 가야 된다면서 우리를 이끈 채 물 쪽으로 달려갔다. 바닷물은 차가웠고 너무 추웠다.

그런데 모래사장이 이쁜 돌들이 많이 있었다. 초록 빛깔을 내는 작은 돌, 투명하게 비치는 하얀 돌. 몇 개를 추려서 바닷물에 씻고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일몰을 보는 거였다. 그래서 일몰을 볼 때 마실 맥주를 사러 마트에 갔다. 가볍게 마실 생각으로 맥주 한 캔만 챙기고서는 숙소에 와서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었다.


열시가 넘어 해가 지기 때문에 아홉시쯤 서쪽 해변가로 출발했다. 금방 도착한 해변가에는 벌써 노을을 보러 온 사람들이 몇 있었고, 아직 지평선 꽤나 위에 떠있던 해는 저물 생각을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장면마저 너무 멋있었다. 태양 아래 바다에는 햇빛에 물든 금색 카펫이 길게 깔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태양은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바다에 빠지는 태양을 보면서, 사실은 태양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돌아가는 건데,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석양을 보면서 이런저런 감동을 느끼는구나.

그래 사람은 원래 그런 거였지,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와 영원을 약속하기도 하고, 아닌 줄 알면서도 마음 끝자락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 그렇게 바보 같은 마음에 의지해 한평생을 살아가기도 하는 게 사람이었지, 생각했다.


해는 금방 저물었고, 여느 때처럼 석양은 더욱 강렬하게 불타올랐고, 우리는 너무 추워져서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일층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아저씨가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이야기를 한다. 못 알아듣는 와중에 ‘루나’라는 단어만 알아듣고는 주인아저씨의 손가락 끝에 걸려있는 달을 보러 문 밖으로 나갔다.

와.

보름달이 떠있었다. 너무나 밝고, 왠지 모르게 더 커 보이는 정말 밝고 둥글고 큰 달.

주인아저씨는 못 알아듣는 스페인어로 자꾸 뭐라 이야기를 했다. 바닷가에 가서 보면 바다에 달빛이 비춰 이쁘다고, 아마도 그런 이야길 해주신 거 같다.


이걸 안 볼 수는 없다, 생각하고는 곧장 낮에 돌멩이를 주웠던 작은 해변가로 갔다.

정말 이뻤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장면만 지켜보려 했었는데 달이 이렇게 이쁘다니. 바다에 비친 달빛은 너무 은은하고 달콤하고 반짝거렸다.

마치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돋보이지만 눈에 튀지는 않는, 예쁜 드레스를 보는 느낌.

보름달을 보면서, 지난날 순례길 위에서 보았던 달을 떠올렸다. 보름달이 반달이 되고 손톱달이 되었던 모습을 본지가 불과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보름달을 두 번이나 볼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생각이 들었다.


찬 공기를 마시며 한참 동안 눈 속에 달빛을 담고서는 숙소로 돌아가 일기를 적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일기를 쓰고 싶었는데, 하필 그날 알베르게에 맥주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맨 정신으로 일기를 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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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gue de Sonia Buen Camino


시설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음. 주인아저씨랑 아주머니 같이 운영하시는데 아주머니 인상이 너무 차가워 보여서 조금 무서움.

맥주 한 캔에 1유로인데 가끔 없는 경우가 있음. 1층 쉬는 공간이 엄청 넓어서 주방 사용하거나 시간 보내기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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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jo 14 helados artesanos


피스테라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 오픈한지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음.

주인 부부 두 분이 운영하시는데 너무너무 친절하시고 흥도 넘치심.

메뉴판에는 스쿱만 적혀있는데 와플 아이스크림도 있음! 와플 아이스크림으로 두 스쿱에 토핑이랑 휘핑까지 선택해서 먹으면 너무너무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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