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필연
2년 전에 읽었던 책 두 권이 있다. 한 권은 아들러가 쓴 ‘인간이해’라는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쿤데라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이다.
인간이해라는 책에서 아들러는 사람의 성격은 생후 2~3년 안에 완성되고, 성장하면서 어떤 사람의 성격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은, 사실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가 말했던 영원회귀를 언급하며 시작된다. 영원회귀란 인생은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그 반복되는 인생은 항상 똑같다는 개념이다. 이 전제에서 인생은 의미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데, 이때 이 비극을 극복하고 운명을 긍정하는 경지를 위버맨쉬Übermensch라고 한다.
이 책들을 읽던 시기에 가졌던 고민이 있었는데, 내 성격이 변할 수 없는 거라면,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인생이 사실 정해진 선로처럼 필연적 과정이었다면, 내 존재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이때 가장 많이 떠올렸던 개념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우연’이고 다른 하나는 ‘필연’이었다.
우연에 의해 필연적 상황이 발생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예를 들어, 내가 어쩌다 한국에 태어났고 이 가정에서 자라고, 키는 몇이고 생김새는 어떻다는 것은 우연적 요소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말을 쓰고, 어려서부터 지내온 주변 환경의 영향 때문에 내 성격이 이렇게 형성되었다는 것.
그 성격(상태)은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어쩔 수 없는 선택―선택의 순간에는 내가 여러 선택지들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을 한다고 착각하지만―을 하게끔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가정이 사실이라면 삶은 의미를 잃게 된다. 자유의지는 실종되고 우연히 주어진 상태로 인해 앞으로는 필연적 순간밖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최근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를 읽었는데, 에필로그 2부에서 이에 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인간은 이성으로 자기를 관찰하고, 의식으로 자기를 인지할 수 있다. 관찰을 하기 위해서는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때 의식은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인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경험칙에 의하면 인간은 분명히 어떤 법칙에 종속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동일한 조건에서 인간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항상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이다.
톨스토이는 자유와 필연을 반비례 관계로 상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흐를수록 필연성은 증가하고 자유는 줄어든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방금 선택한 행위에 대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행위는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행위가 이런 필연성에 속한다.
톨스토이는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필연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전자는 1) 완전한 자유는 공간과 시간에서조차 자유로워야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는 점. 내가 마음대로 손을 올렸다 내릴 수는 있지만 천장이 낮은 공간에서는 손을 올릴 수 있는 임계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2) 손을 올리던 순간에 손을 올리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더라도 이미 그 순간은 지나갔으므로 그다음 순간에 손을 올리지 않는 행위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이 행위가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시간에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가정해야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3)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무언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 원인이 없는 행위를 해야겠다 마음먹더라도 그 자체가 원인이 된다는 것. 이런 이유로 완전한 자유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1) 손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방향(공간)이 무한한 것처럼 조건의 수도 무한한데, 무한한 주변 요인을 완벽히 이해한 상태에서의 선택은 불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항상 최소한의 자유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2) 어떤 현상에 대해 고찰할 때, 시간은 무한하지만 그 현상에서부터 현재까지 흐른 시간은 유한하므로 완전한 필연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3) 어떤 행동의 원인이 되는 다양한 원인이 있더라도 수많은 원인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므로 완전한 필연은 불가능하다는 것.
자유는 검토되는 것이다. 필연은 검토하는 것이다. 자유는 내용이다. 필연은 형식이다.
형식과 내용으로서 서로 관계를 갖는 인식의 두 근원을 분리했을 때 비로소 서로 배타적이고 불가해한 자유와 필연이라는 개념들이 개별적으로 생겨난다.
이것들을 결합했을 때 인간 생활에 대한 명확한 표상이 생긴다.
평소 사람에게 자유가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원인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분명 존재는 할 테니까, 그 원인들이 내 선택에 영향을 주는 이상 자유는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글을 읽고 나니 이분법적인 생각이 문제였나 싶다.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필연도 없는데, 나는 완전한 자유가 아니니까 필연이다, 하는 식으로 생각을 했나 보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관련된 현상에 더 민감한 법인데, 그래서인지 여태 내 사고는 어쩔 수 없었던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은 의식이 반영하는 대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라는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모든 실패는 극복 가능했던 것으로 간주되고 모든 결과에는 이해 가능한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평화는 이런 문장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오늘날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도 않는 자유를 의식하는 것을 그만두고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는 의존성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완전한)자유를 의식하는 것은 그만두고, 곳곳에 존재하는 필연성을 인정할 때 삶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