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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Dec 29. 2019

글쓰기에 대해서

결국엔 소설

    내가 자주 쓰는 글은 그런 글이다. 지금 이 글처럼, 내가 느낀 감정이나 어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둔 글. 그러니까 에세이 비스무리한 문장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소설식의 묘사, 그러니까 디테일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떨어지는 잎사귀를 보면서 ‘잎사귀 하나가 가지 끝에서 떨어진다.' 라고 서술하면 될 것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잎사귀 하나가 가지와 남은 마지막 접점을 잃고서는 결국엔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너무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글이지 않나(해석의 여지가 많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 며칠 생각이 바뀌었다.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사실이 아닌 가치에 대한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서는 결국엔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설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인과관계가 부실하다. 오히려 소설 속 이야기가 더 핍진성 있어서 어떤 의도나 감정을 전달하기 더 용이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순례길을 걷다가 맞은편에 빠르게 지나쳐가는 하얀색 차량을 봤는데, 그때 운전석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흔드는 손을 보고서

‘아, 이 세상 전부는 사랑이구나.’ 하고 뜬금없이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로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에밀리 디킨스가 쓴 시를 읽어보면 내가 느꼈던 감정이 허상은 아니었을 거란 확신이 생긴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에밀리 디킨슨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 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그러니까 내가 느꼈던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선 현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소설을 써서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요즘 소설에 관한 책(소설책 말고) 몇 권을 읽었는데,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디테일이라는 것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낯선 무언가를 느끼고 묘사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소설가가 하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그 내용을 읽고 나니 여행에 가서 일기를 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침노을을 보면서 그 찬란하고 환상적인 노을을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묘사하는 것이 좋을까, 한참 고민하면서 일기를 적었던 그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차라리 그런 것에 가깝지 않을까(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고쳐 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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