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방식에 관해서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나는 이성과 감성 ― 혹은 현실과 이상 ―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이 결과의 중요성을 말할 때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남들이 돈이 최고라고 말할 때 어쩌면 내가 읽은 책 한 권이 더 값질지도 몰라, 하고 말하는 이상한 마음가짐 ―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정신상태(?)인가 하는 고민.
하지만 이런 고민까지도, 실은 내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요즘 새삼스레 깨닫는다. 사람이 갖게 되는 고민은 사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주변 환경, 특히 시대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고민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고민이 사람을 갖는 것이다. 요즘처럼 소비가 미덕인 사회,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생각을 할 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고, 그저 다르다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거 아니면 저거, 하는 식으로 생각해버리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 주제넘게 옳다 그르다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냐 존재냐 ― To Have or To Be ―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해준다.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그 구성원에 대해서 그들이 해야만 하는(have to, sollen) 일을 하고 싶어하도록(wish, wollen) 사회적 성격을 형성한다.” (소유냐 존재냐, p191)
“자신의 삶과 행복보다는 자신의 상품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소유냐 존재냐, p211)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 중에 하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런 인간 고유의 기능 덕분에, 수없이 많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멸종의 위기에서 아직까지 인류가 살아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많은 고민들은 이러한 ‘인간 본연의 성질’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사회적 성격’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에서 발생한다.
요즘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사회가 부여해 준 기능적 측면에서의 ‘사회적 인간’으로만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 사람이 사회에서 얼마나 생산을 잘할 수 있는지, 이 사람이 사회에 가져다줄 수 있는 이익은 얼마큼인지, 하는 수치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결정해준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시장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 지식이나 체력, 자격증처럼 생산 능력과 관련된 모든 것들 ―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삶에 대한 태도는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사회는 20세기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인류가 처음 마주한 사회적 현상이다. 이제 깨어있는 모든 시간은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될 때만 비로소 가치 있는 시간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인류가 이런 사회적 이상 현상에 대한 명확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점 ― 심지어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문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소유 지향적 사회로, 어쩌면 인류 역사상 인간 본연의 성질에서 가장 동떨어져 있는 사회 구조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개인은 정신적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의미한 행위 ―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 ― 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시작으로 일상에서 생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들, 또는 뉴스에서 접하는 사회적 문제를 소유냐 존재냐 하는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끄적여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