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철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한 가지 부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다른 부류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은 약간 특이한 사람이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이 남긴 기록을 줄이고 다듬어서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며 꾹꾹 눌러쓴 글이다.
어느 날, 게임을 좋아하는 어린 한 학생은 교실 뒤편에 앉아서 자신의 인생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인생 계획을 죽음에서부터 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많은 소설가들은 소설의 시작을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한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는데, 이와 비슷하게 이 학생은 여러 아이들로부터 둘러싸인 채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에서부터 인생을 계획한다.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많은 아이들에게 자기가 가진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 보육원에서 행복하게 자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축복 속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 그날부터 소년의 목표는 마음속 선명한 한 장면으로 자리매김했다. '보육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할 텐데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하지?' 소년은 생각했다. 이어서 '돈이 움직이는 월가에 가야겠다.' 하고 소년은 생각했다. 이렇게 어느 날 교실 뒤편에서 인생 계획을 짠 소년은 시간이 흘러, 일본을 거쳐 중국, 미국, 홍콩, 한국 그리고 다시 미국을 거쳐 18년 만에 계획의 중간 단계인 월가에 도착했다.
이 책은 그렇게 자란 소년이 자신이 겪었던 방황과 좌절, 그리고 그동안에 적어둔 일기를 토대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어린 동생들을 위해 적어낸 책이다.
옛말에 길할 때는 겸손하고 자중하며, 흉할 때는 한발 물러나 실력을 기르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길할 때 겸손하고 자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허세나 유난은 떨지 않더라도 자기가 이뤄낸 성취를 우쭐해 하는 정도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고 자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자기가 이뤄낸 성취에서 운이 차지하는 우연적 요소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흉할 때 한발 물러나 실력을 기르라는 것은,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무언가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지금껏 해온 일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곰곰이 복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긍정적이고 올바른 경험을 입력하고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경험을 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일상에서 긍정적이고 올바른 경험을 접하기 쉽지 않다. 온갖 매체는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 사람들은 일상에서 하루가 바쁘게 살아가느라 느긋하게 멍 때릴 시간 여유가 없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가고, 시간을 내서 멍을 때리고.
다시 말해서 20대에 겪는 어려움과 고생은 그 사건 자체로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일입니다. 그저 나의 어리석은 마음이 그 일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경험이 나쁜 경험으로 남을지 좋은 경험이 될지는 그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지금 시작되는 미래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기억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힘들고 억울했던 과거까지 시간이 지나서 좋은 기억이 될 수 있을까?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라는 말은 사실은 대체로 그렇다는 뜻이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동전을 수십 번 던져도 계속 같은 면만 나오는 사람이 있듯이, 이 세상 누군가는 불행에 불행에 불행이 겹쳐서 태어난 것을 후회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모든 일에는 사소하더라도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걸 알아채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누군가는 불행 속에서 다행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불행 속에서 불운을 발견하듯이.
이 책은 글쓴이가 지금껏 겪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만약 작가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여타 다른 에세이와 별반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가분이 종사하는 분야가 지금 내가 공부하는 분야와 같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천천히 나아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그리던 내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