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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내향적이시네요

수줍음 많은 포르투갈사람들

by 영오

포르투갈에 처음 도착해서는 관광지 근처 에어비앤비에서 지냈다.

포르투갈에서 오래 살려고 들어온 것이지만 멋진 관광지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사실 어디서 지내야 할지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도 포르투, 코임브라, 리스본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지냈다.

관광지를 둘러볼 때는 우버를 많이 이용했다. 세 사람 택시비가 버스비보다 쌀 때가 많았고 여러모로 우버가 편리하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광지 근처에서 택시를 탔기 때문인지 영어가 가능한 우버드라이버들은 어디서 왔느냐, 뭐 구경했느냐, 어디를 가보면 좋다 등등 관광지에서 의례 들을 수 있는 대화들을 종종 시도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의외로 과묵한 드라이버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현지인이나 이민자들이었다.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운전자들은 정말로 조용히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수줍게 땡큐를 외치며 떠나곤 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흥겹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우버를 이용할 때면 최대한 말을 아끼게 되었다. 왜 우리도 영어가 짧은데 이것저것 물어보면 매우 당황스럽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저 여기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구나 이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막상 필요해서 무얼 물어보면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말을 안 해서 몰랐는데 일단 대화를 해보면 의외로 다들 유창하다. 스페인과는 차원이 다른 영어 수준이라고나 할까. 놀라운 것은 그 정도의 유창함이면 당당히 대화를 시도해 볼만도 한데 여기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가 영어가 서툴러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Do you speak English?"라고 묻지 말고 그냥 바로 영어로 물어보라고 지인이 알려주었다. 그냥 모른 척 영어로 말하면 상대도 그냥저냥 대답을 하는데, 너 영어 하냐고 작정하고 물어보면 오히려 못한다고 거절을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들인가? 이걸 겸손의 미덕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서양사람들은 못하는 것도 잘하는 것처럼 뽐내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던 것이다.


여기 있으면서 나는 거의 남자처럼 반삭 비슷한 쇼트커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내 머리를 보고도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매일 보는 마트직원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어서 참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사실 여기 사람들은 누가 뭘 입거나, 치장을 하거나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외모라든지,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물어보기를 금기시한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건 일종의 지켜야 할 선이었고 절대로 그 선을 넘어오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길에서 누가 넘어져도 절대로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여러 번 길에서 넘어졌는데 그때마다 누구 하나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캐나다나 미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지나가는 누구든지 와서 괜찮냐, 도움이 필요하냐, 빈말이라도 살갑게 아는 체를 해주는데 여기선 그런 게 없다. 처음에는 대단히 정이 없다고 느꼈는데, 사실 그건 아니고 그냥 내가 불편해할까 봐 모른 척해주는 쪽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님 여기서도 영어울렁증이 있는 건지, 외국인이다 싶으면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내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이고 대단히 의외였던 점이기도 하다. 나는 그저 외국사람들은 모두들 친절하고 적극적일 거라 막연히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왜 여기 사람들이 외국인에게도 쉽게 말을 걸고 아는 체를 하고 흥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여기가 남부 유럽이고 좋은 날씨 속에서 사는 여유로운 사람들이라서?

그것이 무슨 법칙인 것 마냥 단정지은 것 또한 나의 편견 아니었을까?

사실 세상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르고, 케바케다. 그저 내가 포르투갈사람들이 좀 내향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쾌활할 것 같지만 아니더라. 뭐 그 정도의 의미이다. 내가 그런 사람들만 본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바는 이렇다. 생각보다 포르투갈 사람들 중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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