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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가 이민을 떠났을 때

엄마는 여전히 쿠팡주문을 부탁한다

by 영오

내가 처음 이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부모님은 이미 70대 후반이셨다.

당연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것이고 설마 네가 정말로 떠날까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정말로 미련 없이 떠났고 부모님은 꽤 오래도록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땐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느라 이렇게 말했다.

"한 십 년 살다가 들어올 거야. 애 대학교만 입학하면 다시 돌아와야지."

"요즘은 카톡전화로 매일 영상통화할 수 있고 외국에서도 쿠팡으로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으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

그렇게 말하고 막상 떠나오니 이곳에서 나는 너무 바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했고, 살 집을 알아봐야 했고, 짧은 언어실력으로 소통을 하기 위해 매 순간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적응하느라 녹초가 되어있었지만 엄마는 그런 걸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다. 매번 나에게 "넌 오늘은 머 하냐?"내지는 "심심하지 않아?"라는 말로 속을 뒤집었다. 마치, 네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라는 뉘앙스였다.

엄마는 평소에도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자식 정성 들여 잘 키워. 나중에 키워놓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알아? 다 그게 니 보험인 거야."라고.

그 말인 즉, 내가 엄마의 보험이라는 말일터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를 키웠는데 그런 딸이, 그것도 큰딸이 홀라당 외국으로 떠나버리니 엄마는 그게 너무나 당황스럽고도 적응이 안 되는 일인 듯했다.



한국에서 장녀라 하면 이런저런 역할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한 집안에 기둥도 되어야 하고, 양쪽 집안 부모를 잘 모시는 건 기본이고, 각 집안의 형제자매들을 건사하고,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야 하는 뭐 그런 대단히 성인군자 같은 사람이길 강요받는 자리랄까. 오죽했으면 K장녀라는 말이 생겼을까.

요즘같이 집집마다 애들이 하나, 둘 정도밖에 안 되는 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엄마세대만 해도 큰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종교처럼 믿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들이 늙으면 당연히 딸이 자신들의 삶을 돌봐줄 거라 기대를 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좌절되자 엄마는 자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명목은 나를 걱정한다는 소리였지만 잘 들어보면 자식이 외국에 가버려서 불쌍해진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섞인 넋두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저 서운했다.

적어도 나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딸내미가 외국에서 얼마나 부대끼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늘 걱정을 빙자한 비난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앞으로 뭘로 먹고살 거냐, 애 공부는 시키는 거냐, 너도 직장이라도 잡아야 할거 아니냐. 잘해도 걱정, 못해도 걱정, 그저 너는 내 걱정거리라는 말로 내 존재와 노력을 부정하고 무시했다. 그래서 몇 번 영상통화를 하는 도중 나는 폭발을 했다.

"대체 엄마는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그랬더니만 참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 잘되라고 채찍질을 하는 거야."란다.

가족인데 왜 채찍질을 할까? 왜 매번 채찍질만 할까? 그런 건 남들이나 나 스스로가 더 하는데.

적어도 부모라면, 가족이라면 남들이 줄 수 없는 사랑과 위로를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엄마는 그 후로도 매번 그렇게 채찍질만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인정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저 잘못만을 후벼 팔 뿐이었다.



그런 상처의 시간들을 몇 번 겪고 나자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당연한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서 사랑을 못 받으면 사람은 그 관계를 그만두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엄마에 대한 기대와 사랑은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뭘 해도 성에는 차지 않을 테니, 이제 엄마의 의견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만다.

사실, 부모님이 너무 늙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전의 부모님이었으면 자식이 외국에 나간 서운함을 애써 감출 수 있는 여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을 테지만, 이제 곧 80대가 되는 부모님의 마음은 아이처럼 나약해져 버렸다. 그래서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것만 같은 큰딸이 그저 밉고 서운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또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인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자기가 제일 걱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게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야 내 마음도 좀 편하니까.

그러면서 엄마는 오늘도 나에게 수줍게 말한다.

"저번에 보내준 그 뉴케어 다 떨어졌는데 또 보내줄 수 있어?"

한국에 아들이 버젓이 있어도 굳이 외국에 사는 딸에게 부탁을 하는 엄마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렇게라도 큰딸의 의무를 다 해라 내지는 이런 게 딸 키운 보람이지. 이런 걸까. 엄마는 이런 데서 나를 키운 보람을 느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대단히 성공을 해서 유명하고 돈 잘 버는 딸도 바라지 않는 듯하다. 그저 옆에서 만만하게 부탁하고, 자기 신세한탄이라던지 남 험담도 좀 같이하고, 쇼핑도 같이 다니고, 병원도 같이 가줄 수 있는 그런 딸이 엄마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범적인 K장녀가 되는 것은 깨끗이 포기를 했다.

애당초 그런 모범을 보일만한 능력도 안되었지만.

오래도록 엄마한테 서운했지만 엄마도 이런 나에게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의 삶이 있고 결국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만이 최선이 아닐까.

그러니 이제 엄마가 쿠팡에서 뭘 사달라고 하면 그 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해드리자.

5분이면 로켓배송으로 내일 당장 받아볼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으니, 내가 할 수 없는 효도를 쿠팡이 대신해 준다 생각하면 그것 또한 감사할 일 아니겠는가. 또한,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연로하신 나이에도 부모님이 건강하게 그 자리를 지켜주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내가 이 먼 곳에서 맘 편히 살아갈 수 있으니 작은 일에 서운해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갖자. 그러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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