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말자, 초심!
익숙한 곳을 떠나서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느 지역이 아니라 나라를 바꾸는 일이 되는 것이 이민생활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이민을 결정하고 이제 그 생활에 적응하기 3년 차. 여전히 새로운 것들 투성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한 가지 명확하게 마음속에 남는 생각이 하나 생겼다. 이민생활에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민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잊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민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아이의 교육문제였다. 아이는 타이트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공교육은 그런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교육이 그러하지만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그런 여유를 바라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다른 삶의 공간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임에도 사람들은 은연중 우리를 비난했다. 한국이 싫어서 도망친다는 둥, 비겁하게 나라를 버리는 변절자 취급을 했다고 하면 내가 너무 큰 비약을 하는 것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남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이 익숙해질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라니, 자신들의 기준에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선택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고 불편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한국이 싫어서 떠난 것도 아니고, 포르투갈이 대단히 좋아서도 아니며, 그냥 조금 다른 선택을 했던 것뿐이다.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실험을 시도하는 마음으로.
그렇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라면 이곳에 정을 붙이고 좋은 점만 보면서 살자고 다짐을 했다. 밉게 보기 시작하면 애 먼 것이 다 미운게 사람 마음이니까 절대로 부정적인 마음은 갖지 않기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겨온 지 1년 정도가 지나자 이런저런 일들이 때로는 기가 막혔고, 화가 났다. 처음에는 여행온 기분으로 마냥 들떴던 마음은 낯선 풍경이 익숙해질 때쯤 서서히 권태로 바뀌고 설렘이 사라진 삶에는 또다시 불평불만이 하나둘 자라났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떠나온 것을 후회할 만큼 한국의 많은 것들이 아쉬웠던 적도 많았다. 그렇게 하나둘 불만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한국에서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주기적으로 울고 싶을 만큼 마음에 힘든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인내심의 바닥을 보게 할 만큼 극강의 고통을 동반하는 어려움이 찾아왔다가 거의 부서지기 일보직전에 해결이 되곤 하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어딜 가나, 무얼 하든지 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게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유체이탈의 경지? 까지 이르기도 한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럴 때는 어떻게 멘털을 잡아야 하는 걸까.
일이 힘들어질 때 사람들은 초심을 찾으라는 말을 한다. 이민생활도 비슷하다. 이런저런 어려움과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상황이 힘들어질 때는 내가 여길 오게 된 제일 큰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오직 그 한 가지만을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너무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모든 것에서 성공하려고 욕심을 내다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얻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릴 때 내가 익숙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곳에 와서 뿌리를 내리려고 했던 이유를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으면 삶은 서서히 다시 간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너무 많은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어 봤자 마음만 복잡해질 뿐이다.
나의 경우는 그 이유가 아이였으니까 아이가 지금 행복하다면 나의 이민생활은 꽤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생활이나, 이곳에서의 생활에 불만이 없다. 아니 꽤 자주 이곳이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 힘들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민의 주목적이었던 아이가 행복하다면 된 것 아니겠는가. 나머지들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런 문제들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자. 어딜 가나 맞닥뜨릴 삶의 문제들이라 여기고 다시금 긍정적인 마인드로 삶을 바라보는 것, 이민자가 매일 가슴에 새기고 연습해야 할 삶의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