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와 살아도 향수병은 잘 걸리지 않는 편이다.
익숙했던 곳보다는 새로운 곳에 잘 설레고 적응을 하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어 했고 낯선 곳이 오히려 편안하다고 느끼는 조금은 이상한 축에 속하는 성격을 지닌 탓이기도 하다.
20여 년 전에도 외국에서 혼자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한 10개월 동안 한 번도 한국과 떠나온 사람들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매 순간 재밌게 지냈고, 너무너무 행복했었다.
그런데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가슴 한편이 메어졌다.
내가 지금 당장 엄마 아빠를 보려면 저 태평양 바다를 건너서 가야 하는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과 캐나다 사이에 놓인 태평양이라는 바다의 넓이가 가슴 한구석을 미어지게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의 향수병은 주로 그런 식이다.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쌓여있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것.
그때 나의 향수병을 더욱 건드린 것은 길거리 어묵과 떡볶이였다.
추운 겨울이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던 어묵꼬치와 뜨끈한 국물 한 컵, 그리고 영혼의 떡볶이.
그걸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미치게 했다. 평소에는 그리 자주 찾던 것도 아닌데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 더 가지고 싶은 인간의 심리가 극명하게 반영된 결과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10개월 내내 잘 지내던 나는 향수병에 걸리고 나자 한시도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 졌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어학연수였기 때문에 다행히 귀국일정과 맞물려 향수병은 그렇게 치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5년 이민을 온 이곳에서 향수병이 발동을 할 때는 정말로 손쓸 방법이 없다.
오늘 나의 향수병은 붕어빵 때문에 터졌다.
겨울의 대표간식, 떡볶이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나의 소울푸드.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맛.
이제야 전 세계사람들이 알아보는 그 영혼의 간식이 오늘 내 마음을 때린 이유는
겨울만 되면 그걸 사다주시던 아빠가 생각나서였다.
말수가 없는 우리 아빠, 표현도 잘 안 하는 우리 아빠, 그저 막걸리 한두 잔에 세상 제일 행복한 우리 아빠. 그런 아빠는 내가 친정집에 가면 늘 붕어빵 한 봉지씩을 사다 주셨다. 딸내미가 좋아한다고 매번 나가서 그걸 사다가 먹으라고 조용히 건네셨다. 비싼 선물도 아니고, 알아달라고 요란하게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자식이 좋아하는 거 사다 주는 게 내 기쁨이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던 그 붕어빵 봉지가 오늘 나를 미치게 한다.
이제 나는 보고 싶어도 당장 돌아갈 수가 없는데, 여전히 우리 사이에는 대륙과 바다가 있고 비행기를 타고 가도 열몇 시간은 가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한다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아빠 팔순생일도 못 챙기고, 명절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얼굴을 못 보고 살아야 하나. 그런 건 매주 영상통화하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움은 그렇게 또 내 가슴 한편에 소복소복 쌓여있었던 모양이다.
아빠 생각에, 또 아빠가 건네준 붕어빵 생각에 좀 울었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여 년 전에는 아이가 없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내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이곳에 있으니 아이를 보면서 나의 향수병을 달래 보려고 한다.
아빠도 붕어빵 맛있게 먹는 내 모습에 행복했듯이, 나 역시 밝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는 아이의 행복이 내 행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