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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뤼 Oct 04. 2022

결핍과 결핍이 마주할 때

나의 해방일지 part.1

미정이라는 캐릭터는 지나치게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경기도 산포라는 시골 마을에서 매일 왕복 4시간 출퇴근길에 쏟아야 하는게 뭐 대수라고. 사실 대수이긴 한데, 미정만큼이나 요즘 청춘은 묵묵히 그런 현실을 감내하고 있다. 염가네 삼 남매의 지난한 출퇴근길 장면은 거의 매 화 등장하는데, 마치 일상처럼 덤덤하게 그려진다.


대형전광판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상사에게 되돌려받는 보고서는 언제나 빨간 글씨로 가득하다. 그마저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동료들과 시원하게 뒷담 한번 까고 지나갈 일상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미정이의 낯에는 늘 그늘이 져 있다. 가장 생기발랄하고 화사한 청춘인데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다. “지칠 일 없이 지쳤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 세상. 

극적인 사건 따위 일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일상. 어딘가에 꽉 매여 숨이 갑갑한 상태로 살아가는 미정이의 모습이 꼭 나 같았다. 남들 보기엔 적당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조건인데도 늘 그늘져 있고 자신이 만든 감정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린다.


사회에서 맺은 인간관계는 대체로 피상적이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직장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사실 대부분의 말은 미정의 마음에서 튕겨져 나간다. 허물없는 사이여야 할 가족들 앞에서조차 늘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한다. 


하지만 사람에 관심이 없는 듯해보이는 미정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높은 나머지 사람에 대한 실망과 앙금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 단절을 택했을 뿐이다. 자기 마음을 꿰뚫어봐줄 ‘단 한 사람’을 목 빠져라 기다렸지만, 현실에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다는 좌절감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텨낸다.


그마저도 만나는 애인마다 개새끼.. 개새끼였다.


나는 미정이의 민낯이 좋다. 그리고 그 민낯을 가족들, 현아언니를 비롯한 동네친구들 말고도 직장동료들에게도 거리낌없이 내보였으면 좋겠다. 사회생활에 찌들어 영혼이 반 쯤 나가 있는 미정이가 더는 양아치 남친이나 직장 동료를 위해 위해 살지 않고, 오직 본인만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 일상을 옭아매는 수많은 삶의 조건들에 휘둘리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감정들을 마음껏 표출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해방일지>는 민낯을 드러낼 사람 단 한 명만 있어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정은 구씨에게 먼저 다가가 "사랑으론 부족하다"며 '추앙'해달라고 냅다 고백한다. 


“너는 누구 채워줘본 적 있어?”


추앙받고자 한다면 먼저 누군가를 채워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해볼 일이다. 미정도, 구씨도 누군가를 채워주기엔 각자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지만, 봄이 되면 다른 사람이 돼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서로를 추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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