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나를 다정하게 부르는 연습

by 아름다운 나날들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속없이 맑고 따스한데, 문을 나서면 닿는 바람 끝이 제법 매섭습니다. 좋은 에너지를 주는 볕과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공기가 공존하는 계절. 바야흐로 연말입니다.

'다사다난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의례적인 말로 퉁치고 넘어가기엔, 저의 올해가 조금 아까웠습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이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거창한 이벤트 대신, 저는 책상 앞에 앉아 일기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돌고 돌아 결국, 종이와 펜


저는 무언가를 자꾸 적는 사람입니다. 짧은 메모든, 순간의 소감이든, 해야 할 일의 리스트든 끊임없이 기록합니다. 한때는 이 넘쳐나는 종이들을 보관하기 힘들어 태블릿 PC를 사보기도 했고, 깔끔하게 정리된다는 디지털 캘린더 앱으로 갈아타 보기도 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이라기에 귀여운 스티커를 마구 수집해 붙여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결국 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투박한 노트, 손에 잡히는 메모지, 그리고 책상 한구석에 굴러다니는 노란색 3M 포스트잇으로요.

화려한 장식도, 디지털의 편리함도 좋지만, 역시 사각거리는 마찰음을 내며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쓰는 그 맛이 저에게는 가장 맞나 봅니다. 혹시 여러분도 서랍 속에 쓰다 만 다이어리나 굴러다니는 메모지가 가득하지 않나요?


칭찬에 인색했던 나에게


여기저기 흩어진 메모들을 한데 모아 읽어 내려갑니다.

올해 내가 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반대로 올해 내가 잘해낸 것은 무엇인가. 그 순간순간 내 감정의 온도는 어떠했나.

기록들을 살피다 문득 새로운 습관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수해서 얼굴이 화끈거리던 날의 메모에도, 성취감에 들떴던 날의 일기 끝에도, 저는 제 이름을 속으로 다정하게 불러주기 시작했습니다. 타인의 인정보다 더 필요한 건, 내가 나를 믿어주는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된 걸까요.


“오늘도 고생했어. 이만하면 잘했어."

어색했던 그 시작을 이제는 무던하게 받아들입니다. 흩어진 메모들 사이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한 '할 일 목록'이 아니라, 나를 다독이며 걸어온 시간들이었습니다.


내년을 위한 '대강'의 약속


덕분에 이만큼 다 해내고 일 년을 보냅니다. 다가올 새해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숨 막히게 촘촘한 계획표 대신, 대강대강 큰 줄기만 세워둡니다. 너무 빡빡한 계획은 오히려 나를 옥죄일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내년의 제가 소용돌이치는 격정적인 삶을 살게 될지, 아니면 물 흐르듯 담담한 생활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날씨 속에서도 한 가지 약속은 지키려 합니다.

내년에도 내 이름을, 내가 가장 다정하게 불러주기로.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

그것이 모든 시작의 기본값이 되도록 하기로 말입니다.


올해, 참 잘 지냈습니다.

내년 이맘때의 연말에도, 부디 지금처럼 이렇게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께도 조심스레 권해봅니다.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한번 다정하게 불러주세요.

그리고 댓글로 짧게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거창한 말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올해 고생했어, ㅇㅇ아"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그 한 마디가, 다가올 새해를 살아낼 가장 단단한 힘이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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