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현역에 있는 S 언니가 비행과 육아 중에 어떤 것이 더 힘드냐고물었다.나 역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생각에 빠졌다.
임신은 토를 동반한 입덧으로 그 웅대한 시작을 알렸다.
입덧이 끝나고는 조금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배가 불러올수록 임산부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증상은 다 나를 거쳐갔다.거기에 임신성 당뇨는 보너스로 얻었다. 한마디로 육아 시작 전부터 죽도록 고생했다.
임신기간 수많은 육아 선배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그래도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며 덕담(?)을 해주곤 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애를 도로 집어넣고 싶은 순간이 올 것이라는 오싹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으며 말이다.
그들의 예언처럼 다소 험난했던 임신기간은 육아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출산과동시에 요이땅하고시작된 육아는 매트릭스였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는 말이다.조리원 퇴소 후 집으로 데리고온 신생아는 조금씩 매우 자주 먹었고, 잠깐씩 자다 깼다를 반복했다.종종 기차 화통을 통째로삶아드신 목청으로 응애~ 하고 울기를 잊지 않았다. 아이의 옆에서 30초 대기조로 사는 삶이란, 승무원의 그것과는 어찌나 달랐던지. 승무원은 내 몸뚱이 하나만 건사하면 됐는데, 육아는 언제든 원 플러스 원이었다.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존재감이 확실했다. 너무 확실한 나머지 그 곁의 나는 쭈글미가 폭발하고, 수분과 유분이 날아가 바싹 말라버린 형태의 고목(?)이 되어 버렸다. 육아를 하다 보면 마스크 팩은커녕 세수라도 하고 자는 내가 기특한 지경에 이르렀다.
승무원의 노동강도는 분명 육아보다 세다. 앉아서티브이만 보고 가도 그 후유증이 며칠씩 가는 게 비행길이다. 하물며 수십 킬로짜리 컨테이너를 올렸다 놨다, 이리저리 경보를 하며 기내를 누비는승무원들은 어떻겠는가.다리도 비행 내내 퉁퉁 부어있고, 신체 부위들은 돌아가며 아프다고 난리 치기 일쑤이다.
승무원들의 수면 패턴은 완전히 엉망이다. 어떤 날은 밤에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지만, 어떤 날은 완전 반대이다. 열 시간 이상의 긴 비행에서는 기내 벙커에서 선잠을 자기도 한다.
그들은 시차도 계절도 넘나 든다. 내 몸은 지금 밤이라 하는데, 목적지의 나라는 아침이다. 분명 어제는 반팔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오늘은 패딩을 입고 있다.
이쯤 되면 승무원은 다른 의미의 '시간여행자'이다.
정신적으로는 어떤가. 감정 노동직 중 상위 티어에 위치하는 일이다. 불특정 다수의 요구와 불만에 응대하다 스트레스가 단시간에 폭발하기 일쑤다.가끔 비행기 문을 시원하게 열어젖히고 낙하산을 펼쳐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승무원은 비행이 끝난 순간부터는 다음 듀티까지 온전한 자유의 몸이다. 병맥주로 나팔을 불건, 24시간이 모자라게 잠만 자건 간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프(OFF : 승무원의 비번)가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 CEO도 오프는 함부로 못건들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프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가 있는 시간이다.
육아에는 진정한 오프라는 것이 없다. 가끔 신랑한테 아이들을 맡기고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지만,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밥은 잘 먹었는지, 잘 놀고 있는지, 낮잠은 잘 잤는지 이내 아이가 눈에 밟히고 만다. 몸은 쉬고 있는데 정신은 메어있게 된다는 말이다.
비행일도 힘들고 육아도 힘들다. 굳이 어떤 것이 더 힘드냐 선택을 내야 한다면 육아를 고르겠다. 비행은 신성불가침의 시간과도 같은 오프가 있지 않은가. 화끈하게 일하고, 나무늘보처럼 쉴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양육자는 그럴 수 없다. 승무원의 비행일은 익숙해지면서 조금 수월해지기도 한다. 육아는 시간이 갈수록 다른 형태의 난관이 찾아온다.
승무원은 본인 스스로가 주인공이다. 반면양육자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인공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옆에서 띄어주는 모든 일을 부모가 해줘야 한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는 자연스레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돼버린다. 이쯤 되니비행일도 멋지게 하면서, 육아도 하는 세상의 모든 그녀들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은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