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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제이 Jan 10. 2020

나의 상처가 당신의 기쁨이 되길

기쁨은 나눌수록 시기를 받고, 슬픔은 나눌수록 약점이 된다.

2007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일이다. 당시 첫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위해 여기저기 면접을 보 다녔다. 당시 나의 꿈은 홍보인이었고, 운이 좋게 가장 가고 싶었던 A 홍보 대행사의 최종면접을 보게 되었다.



최종면접 5명의 지원자와 10명의 면접관이 가까운 거리에 마주 앉아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다. 한 면접관이 질문을 하면 맨 왼쪽의 지원자부터 대답하거나 랜덤으로 지목된 지원자가 답을 했다.



면접시간이 길어질수록 A사가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에 얽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 좋았고, 면접관들도 프로페셔널해 보였달까. 그때 한 면접관이 모두에게 질문을 했다.




최근 들어 울어본 적이 있나? 있다면 그 이유는?



지원자들이 순서대로 대답을 하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당시 이모들 중에 제일 친한 이모가 암 말기에 재발 선고를 받아 투병 중이셨다. 결혼도 안 하셨고 더욱이 자녀도 없어서  이모는 나를 딸처럼 생각하셨다. 그런 엄마 같은 이모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니 내 마음이 땠겠는가. 매일같이 병원에 출퇴근을 하면서 울고 웃다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픈  이모를 떠올리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꾹 참고 입을 떼었다.




저희 이모가 유방암에 걸리셨습니다.



그때였다. 하하하하하. 경박하고도 크나 웃음소리가 내 귀를 때린것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사태 파악을 느라 뇌가 가동 되었다. 대답을 멈추고 면접관들을 둘러보다 한 여자 면접관이 눈에 띄었다. 웃겨 죽겠다는 듯이 웃고 있는, 이브 파마가 정말 안 어울리던 그 여자가.




뭐가 그렇게 웃기는 걸까. 유방이라는 단어가 웃겼나. 아니면 암이 웃겼나. 아니면 유방암이라는 단어가? 면접 자리에서 들을 거라고 예상치 못한 단어여서 수로 웃은 것일까?




실수로 웃은 거라면 양해를 구하는 제스처나 코멘트가 뒤에 딸려 나와야 하는 이 매너가 아닐까. 그녀의 황당한 웃음 공격에 나는 할 말을 잃어 뒷말을 얼버무리고 서둘러 대답을 끝냈다.




며칠 뒤 메일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 통보를 받고 나는 화가 치밀었다. 어차피 떨어질 거였으면 그 자리에서 멋지게 몇 마디나 해주고 나올걸.



저기 면접관님. 방금 왜 웃으신 거예요?  우리 이모가 유방암 걸린 게 그렇게 재밌으세요?  직장암, 대장암도 웃겨요? 아니면 유방암만 웃겨요?  당신같이 웃어야 할 때 울어야 할 때도 분간 못하는 모질이가 있는 회사는 다니고 싶지 않네요. 이 회사 제가 거부합니다.







밀레니엄 시대로 도래하던 즈음의 일이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뭉개지고, 가족이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한 친구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진정한 위로를 바란 것도 아니었고, 공감을 얻고자 꺼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친한 친구 사이에서의 고해성사(?) 같은 대화였다고 하면 될까.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입에서 번지는 미소를 보았다. 리고 친구는 한마디 덧붙였다.




사업은 아무나 하면 안 돼! 얼마나 리스크가 큰데.



졸지에 '아무나'가 된 아빠가 불쌍해지기도 했지만,  그녀의  때아닌 충고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한 걸까.  무슨 대답을 바라고 남한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일까. 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옛말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어떤 사이에든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나의 기쁨이 누군가의 질투를 사게 될 수도 있고, 나의 슬픔은 누군가의 살아갈 힘이 되거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웬만해서 나의 사적이고도 깊은 마음의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않는다. 신변잡기식의 이야기는 종종 벌리지만, 그 외 속내는 어지간해서는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담백한 사이가 더 건강한 관계를 이어간다고 생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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