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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제이 May 08. 2020

승무원이 조종사의 이름을 부를때

그는 내게 다가와 꽃이 된다

승무원을 시작하고 두 번째 비행 레이오버에서 일어난 일이다. 펍에서 간단히 맥주를 하면서 사무장과 비행 두 달 차 승무원이 맞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며 1차 충격을 받았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거친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2차 충격을 받았었다. 저 녀석 좀 보소? 신입사원 주제에 사무장님의 이름을 막 부르면서 맞담배를 피네? 그것도 처음 만남에서? 나는 그들의 볍고 벽 없는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의 항공사라니! 내가 좋은 곳에 입사했구나!'




승무원들끼리는 보통 이름으로 호칭했는데, 기장님들에게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들을 '캡틴'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가끔 성을 붙여서 '캡틴 앤더슨'이런 식으로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김 부장님, 박 사장님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줄기차게 캡틴이라 부르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한 외국인 기장님이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기를 왜 캡틴이라고 부르냐고. 의아한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캡틴을 캡틴이라 부르지 뭐라고 부르냐고. 그가 이어 말했다. 네가 나를 캡틴이라 부르면 나는 너를 캐빈 크루라고 불러야 하냐고 물었다. 그의 주장은 이랬다. 캡틴이라는 것은 사람을 호칭할 때 적절하지 않다. 캡틴은 자신의 포지션기 때문이다. 고로 신은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나름 존경의 의미로 캡틴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이름으로 부르라니. 당황스러웠다. 캡틴을 왜 캡틴이라 부르지 하게 하는 거니?




E 항공사의 승무원들은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에서 일하게 될 경우, 조종사들을 케어해야 한다.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야 하고, 30분마다 조종석에 전화를 걸어서 그들의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수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기내 상황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종사들과 대화할 일이 많아진다. 전에 캡틴이라 불렀다가 혼난(?) 이후로, 나는 캡틴을 캡틴이라 하지 못하고, 친근하게 조종사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느 장거리 비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비행의 기장님이었던 크리스티앙이 휴식을 취하기 캐빈으로 나왔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는 한국의 C 항공사에서 10년을 일고 했다.



수다가 무르익던 중 그가 신기한 듯이 말했다. C 항공사의 무원들과 이곳의 한국인 승무원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이유를 묻는 내게 그가 답했다. C 항공사에서 일했던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도 자기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자기에게 사적으로 농담을 걸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승무원과 수다 시간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간혹 사무장과 대화를 하게 되어도 호칭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꼭 필요한 경우에는 '캡틴'이라고 불렀지만,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들이 직장에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흔한 문화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는 윗사람을 지칭할 때 이름만을 부르지 않는다. 선생님, 사장님, 사무장님 등 그들의 직책을 부르거나 높여서 부르는 호칭이 따로 존재한다. 약 김 부장님을 광수야라고 부른다면, 미없는 농담을 한죄로  다수에게 도라이로 불리며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윗사람을 이름만으로 호칭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상 '싸가지'그 자체이며, 면전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외항사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히려 직책으로 호칭을 하는 것이 어색한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본격적인 비행을 하기 전에 조종사들의 이름을 포함한 팀원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좋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름을 외우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늘 모두를 Habiti(하비티/영어의 my love 같은 뜻)라고 부르는 한  모로코 크루에게 반격한 적이 있다. 물론 일하는 태도도 성실치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Hey, I am NOT your habiti. Call me JI.라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어이없다는 그녀의 표정을 뒤로 한채 캐빈을 순찰하러 나갔다. 반대로 누군가 브리핑에서 내 이름을 기억하고 Ji라고 불러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작은 노력이지만, 누군가를 제대로 호칭한다는 것은 사랑스럽고 다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이어지는 코로나 격리로 제 머릿속이 팬데믹입니다. 글이 잘 안 써지네요. 아무튼 늘 건강 유의하시고, 시간내어 제 보잘것 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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