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나로 삼는 것.
일이 없으면 내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것.
메신저를 수시로 확인하며 나를 찾는 사람에게 재깍재깍 대답하는 것.
현재 나를 압박하는 것들이다.
요즘 일이 없어 한가하다 보니 점점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우연하게 온라인 서점에서 <내가 싫어질 때 읽는 책>이라는 제목을 발견하고 마음이 끌려서 책 소개를 들여다보았다.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라고? 그동안 나는 '자기혐오'라는 단어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살짝 걱정도 되면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확 들었다. 이제 막 출간된 책이라 리뷰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그런 심리치유 책은 아니길 바라며 책을 주문했다.
책을 읽으며 '이거 내 이야긴데...?' 하는 구절들이 처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에 '입장주의'라는 개념이 있다는데 지금의 나의 상태를 설명해주는 듯한 말이었다.
역할을 수행할 수 없으면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 입장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있을 곳'을 잃어버립니다.
...
입장을 지키면 '자신이 있을 곳'은 얻지만 '자신'은 잃어버립니다.
내가 지금 두려워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몇 장 더 넘겨보니 '일을 주지 않으면 스스로 한가해지세요'라고 답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앞에 쓴 글에서도 나는 인정을 받는 게 좋아서 취미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도 말했는데, 이 또한 책에서 말하는 '타인의 지평을 산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았다. 일본어식 개념과 번역이어서 약간 낯선 단어와 표현이지만, 내가 수년간 불교에서 배운 내용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파랑새를 찾아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우리 집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미 답은 알고 있지만, 아직 나는 일에 대한 신념에 오랫동안 물들어 있어서 계속 같은 불안에 빠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마음의 습관을 아래 방법으로 서서히 옅게 만들어보려고 한다.
- (일이 없어 한가한) 내 상태를 인정하고 괜찮다고 다독이기
- 불안한 마음과 생각들이 요동칠 땐 글로 써 내려가 보기
-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가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찾아보기
한 달 쓰기를 마칠 때쯤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