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나는 애를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께서 삼 남매를 낳고 쉽지 않게 키우신걸 보고 자랐기에 '나는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무의식이 자리 잡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나 때문에 속을 썩을 때마다 '너 같은 딸 낳아봐야 알지'라고 말하실 때 속으로 나는 '그런 꼴 안 보려고 애 안 낳으려고 합니다'라고 대꾸했다.
그리고 여자로 태어나 겪은 어려움들을 내 자식에게도 그런 공포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두운 하굣길에 어디서 누가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상상은 집 문을 열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점점 무서워지는 세상과, 넘쳐나는 쓰레기와 이상기후가 점점 심해지는 지구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멜랑콜리아>라는 영화에서 우울증을 갖고 있는 여주인공이 혜성 충돌을 앞두고 오히려 마음이 좋아지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 이후 어쩌다 특정 종교를 전파하는 대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세상이 종말 할 때 몇 명만 구원받고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이 종교를 믿으면 너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좋은데?' '다 같이 죽으면 좋을 거 같은데요?'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남편도 2세에 대한 계획이 없고, 점점 나빠지는 지구 환경에서 아이를 낳는 건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이 나와 비슷했다. 결혼하면서 가장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의 가치관이 같아 다행이었다. 부모님께도 결혼 전에 '난 애 안 낳을 거야'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냥 농담으로 생각하셨나 보다. 본가에 갔을 때 '너흰 애 안 가지니'라는 물음에 '안 가질 건데요'라고 대답해서 엄마는 황당해했다.
남편과 나는 나이 차이도 많고, 아이를 낳아 20살까지 키우려면 현실적으로 유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엄청난 난관이 예상된다. 우리는 우리의 상태를 알기에 깔끔하게 2세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sns에서 귀여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 너무 예쁘고 그로 인한 행복이 크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들의 sns를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 그렇지만 사진에 드러나지 않는 이면에 수많은 힘듬이 있을 거란 걸 안다. 나는 용기가 없어 그런 삶에 도전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란 걸 안다. 우리 둘 다 그런 성향이라 길고양이들도 절대 집안에 들일 엄두를 못 낸다. '내' 고양이가 되는 순간 따라올 수많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람일은 모르기 때문에 지금 가진 생각과 가치관이 언제 바뀌거나 깨질지는 모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