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는 모두가 시인이야.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by 꿈결

민음사 북클럽을 통해 이 책을 만났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민음사티비 세문전(세계문학전집월드컵)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을 것이다. 북클럽 선택 도서는 일부러 사전 정보 없이 제목만 보고 끌리는대로 선택하곤 한다. 왜인지 이 책이 끌려 선택하게 되었고 집에 도착한지 1년이 넘은 지금 시점에 읽게 되었다. (이 시기에 칠레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은 것이 공교롭다.)


인생의 큰 계획 없이 단순하고 명랑했던 마리오가 우연한 기회로 이슬라네그라 포구의 우편 배달부가 되어 겪는 이야기이다. 특별한 것은 이슬라네그라 포구 대부분의 사람은 어부이고 글을 읽을 줄 모르기에 칠레의 유명시인 파블로 네루다 한 명을 위한 우편부라는 것이다. 그렇게 네루다만의 우편 배달부가 된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메타포를 배우며 그냥 지나쳤던 주변을 세세하게 뜯어보게 되고, 자기 표현을 잘 하게 되는 힘을 얻는다. 그 힘으로 주점에서 첫 눈에 반한 소녀 베아트리스와의 사랑도 이루어낸다. 네루다를 향한 존경과 사랑으로 그를 추종하다 못해 아들의 이름까지 네루다 본명을 따서 짓는다. 사회 정치의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나름대로 살던 마리오는 네루다와 만나며 그의 시를 읽게 되었고, 자신의 시를 쓰고 낭송하는 시인이 되었다. 그 힘은 본인과 주변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경쾌하고 산뜻하게 시작하는 이 소설의 마지막은 어둡고 무겁게 습한 물안개 속에 잠긴듯 끝이 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 물안개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을 발견하게 해 준 이야기다.


나는 ”시“라는 문학 장르가 ”정치“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칠레의 첫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회주의 아옌데 대통령,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일어난 군사 쿠데타 등의 사전 정보 없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시인인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추천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칠레의 모든 사람이 시인이라는 네루다의 말이 정치적으로 느껴진다.


조금은 심드렁하다고 느껴졌던 마리오의 인생에서 네루다와의 접점은 말 그대로 불꽃 스파크가 뛰는 일이었다.

아래는 네루다와 메타포에 관한 대화를 하고 마리오의 상태를 묘사한 대목이다.


마리오는 손을 가슴에 댔다. 혀까지 치고 올라와 이빨 사이로 폭발하려는 환장할 심장 박동을 조절하고 싶었던 것이다. -31pg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나 심장이 뛰어 본 적이 있었나.

네루다도 대단하지만 그와의 대화를 통해 메타포를 이해한 마리오의 태도. 알고자 하는 욕구에 몸의 모든 기관을 노출시키는 기꺼움이 멋있다. 무언가를 배우고 곧바로 실천하는 마리오. 나는 평소 느끼는 무력감, 특히 요즘의 정치적 혼란함 가운데 느꼈던 무력감에 쉽게 인생을 비관 했는데 주변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표현하는데 몰두하는 마리오의 모습은 수증기같은 미래가 아닌 너무나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존재하는 주변의 자연물과 사람으로 시선을 옮기게 해준다.

구체적인 것을 열정적으로 추적할 때 오는 충만한 마음은, 정치적 혼란에 마비된 사회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시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일상이 메타포를 메타포가 정치를 정치가 일상을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쿠데타가 일어난 뒤 마리오는 군인의 눈을 피해 네루다에게 온 전보를 모두 외워 네루다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만난 죽어가는 네루다와 마리오는 먹구름이 자욱히 가득 찬 네루다의 집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진다.


검은 물이 지금 이 순간 시인에게 비밀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무가 교차된 검은 물, 쿠데타 발발로 두 눈이 가려지고 손목마다 피를 흘리고 있을 시체들 아래로도 흐를 그 검은 물이 네루다의 입에서 시 한 수가 흘러나오도록 했다. 149pg


정치는 일상을 바꾼다.

어떤 정치는 일상을 지속하게 하지만, 어떤 정치는 일상의 세게 흐르는 혈관을 끊고 끝내 피바다를 만든다.


소설을 읽는 내내 시를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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