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직에 실패했다.
실패 말고 조금 더 순화된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바로 떠오르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표현하기로 했다.
실패는 쓰렸지만 어쨌거나 경험을 했기에 실패라는 결과가 있었고 그래도 다행인것은 경험에는 늘 배움이 있다. 나는 오늘 그 배움을 개인적인 아쉬움을 담아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이런 결정은 안 하지 않았을까.로 풀어보고자 한다.
직장 생활을 8년 정도 했고 그 과정에서 단 두 번의 이직이 있었다.
첫 번째 이직과정에서 나는 이직하고 나서 만족감이 매우 높았다. 많은 고민을 했었고 그 고민 끝 결과가 나에게 큰 성취감과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좋은 이직 타이밍과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찾아온 두 번째 이직기회가 찾아왔고 그 과정에서 더 깊게 고민하지 못하고 오판했던 것들을 솔직하게 적어본다.
당시 재직 중인 회사는 여러 대내외 요인으로 인해 비상경영 선포까지 할정도로 분위기가 급격히 좋지 않아졌었고 이직처는 그에 반해 그 업계에서 안정적이고 경쟁자 없는 독보적 1위 업체로 비춰졌었다.
갑자기 찾아온 회사의 위기가 곧 나의 위기가 될까 두려웠고 더 나아가 아직 있지도 않을 미래 (구조조정, 조직개편 등..)까지 고민하며 이직이 나의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구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성장, 위치, 안정성이 곧 나와 직접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러한 착각을 했을까?
다녔던 2개의 회사 모두 100여 명의 스타트업일때 입사를 했었고 그 회사들은 모두 누구나 알만한 유니콘기업, 대기업 계열사로 편입이 되었다. 그 과정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갑자기 이 성장이 멈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나 또한 멈출 수 있다는 걸로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잘못된 알고리즘(1)
회사의 성장 = 나의 성장
회사의 위기/성장의 멈춤 = 나의 위기/성장의 멈춤?!
돌이켜보니 회사의 성장은 간접적으로 나에게 더 많은 기회만을 줬을 뿐이고, 사실 직접적으로 나를 성장하게 했던 건 같이 일했던 동료, 리더들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들에서의 치열한 고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한 마음에 그 시점 업계 1위의 안정적 회사를 바라보며 회사의 위치와 나의 위치를 동일시하는 마음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
서비스 기획, PO, PM 등 다양한 직무명으로 일컫는 나의 직무는 이 업계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설명할 땐 나도 모르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를 늘 고민하게 만든다.
이직을 제안받았을 때 이직처의 산업, 기업의 규모, 조직구조 등 더 많은 것을 깊게 고려했어야 하나 이를 무시하고 같은 직무명이니 같은 직무일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이직을 했을 때 경험했던 건 내가 그동안 해왔던 업무의 약 30%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였다. 그저 좀 잘 나가고 보기 좋아 보이는 동네로 이사를 하고싶었것뿐인데 졸지에 이민을 한 느낌이랄까
그 외에도 찬찬히 살펴보니 비즈니스 구조, 보상 체계, 직급의 유무, 조직 구조 등 다른 점이 너무 많은 회사였는데.. 나는 그저 '내가 관심 있는 분야고, 커머스를 하기도 하니 크게는 다르지 않을 거야. 회사도 잘되고 있고 분위기도 좋겠지'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고객 입장, 겉으로 봤을 때의 좋은 회사를 고르는 것이 아닌 일하기에 좋은 회사인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하기에 좋은 회사란 나랑 잘 맞는 회사다. 우리는 구직자이기 때문에 일하는 입장에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회사는 하루에 8시간, 주 5일 40시간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에 절대적으로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준다. 회사는 모두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헤리티지와 고유문화들이 있고 연혁이 오래될수록 그 특징이 뚜렷하다. 뭐 결국엔 회사고 결국 같은 직무인데 상관없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절대 이를 무시해선 안된다. 회사의 산업, 규모, 조직구조와 같은 것들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업계에서 통용되는 직무명이 같더라도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과 고민이 늘 많았던 나는 결혼 이후 줄곧 덮어놓고 미뤄놨던 숙제.. 출산, 육아에 대한 압박과 부담이 누구보다 컸다. 커리어 사형선고라고 불리는 출산, 육아를 직접 부딪혀보기도 전에 '두 가지를 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건 욕심일 거야'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렸고 어쩌면 이 기회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고 나의 삶과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좋은 탈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지금 돌아봤을 때 기본적으로 내가 회피형 인간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슬프게도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입사하고 2개월이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거지?‘라는 생각이 1일, 반나절, 1시간 단위 점점 짧은 주기로 찾아왔다. 주변에 이 힘듦을 얘기하면 나를 아는 잘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일에 대해 느끼는 애정과 몰입을 알기에 이러한 선택을 걱정했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줬다. 커리어에서 큰 변화가 있었으나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여러 이유중 가장 큰 원인은 남들도 다 아는 내 기본적인 업무에 대한 태도, 업무 성향을 외면했던 것에 있었다.
물론 다양한 이유로 커리어와 삶에 변화를 줄 수는 있으나 중요한 건 그 변화가 회피성이 아니어야 한다.
나는 일하면서 얻었던 만족과 보람도 컸지만 그와 더불어 찾아오는 더욱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 고민, 압박으로부터 멈추고 싶었고 내가 피할 수 없는 출산과 육아로 무너질 것을 염려하여 미리 겁을 먹고 도망쳤고 보기좋게 실패했다.
잘못된 알고리즘(2)
커리어에서 인정받고 잘하고 싶어 -> 육아, 출산이 있으면 그게 무너질 것 같아 -> 커리어 고민 없는 환경으로 가면 되겠네?
1. 회사의 성장은 나의 성장이 아니다.
회사의 성장과정에서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상황이 주어지므로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직접적인 성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더 직접적인 영향은 내가 맡은 직무의 영향범위와 어떤 권한과 책임으로 일을 하는가, 어떤 경험을 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더라.
2. 직무명이 같더라도 회사, 조직문화, 일하는 방식에 따라 맡은 직무가 다를 수 있다.
직무명뿐만 아니라 산업, 비즈니스 메트릭, 조직 구조, 팀 분위기 등 비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비교하고 다른 것은 무엇인지 같은 건 무엇인지 유추해봐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해당 회사를 다니는 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블라인드나 채용사이트 리뷰 등을 살펴보면 대략적으로라도 필요한 정보들은 얻을 수 있다.
3. 나의 기본 업무 성향을 무시한 채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대로 커리어 트랙을 결정하면 안 된다. 특히 회피성은 최악이다.
단순한 환경의 급격한 변화만으로는 나의 업무 성향이나 또는 삶에서의 우선순위 같은 것들을 변경하는 건 쉽지 않다.
내가 극복하고 싶거나 변화하고 싶은 나의 모습이나 성향들이 있다면, 이를 인지했으니 우선은 현재의 나에게 맞는 방식대로 부딪혀보고 살아보자. 천천히 변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계속 그려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경험은 없다고 한다. 다만,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의 기회는 제한적이기에 가능한 실패를 줄여야 한다는 최근 들은 조언의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었다.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동안 또다시 이직에 대한 고민은 찾아올 거고 그때 나는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겪은 이유들로는 또 다시 후회하고 힘들어하지 않길 바라며. 글을 적고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