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나무에 관하여
메타보이 김용현
담양에는 사람의 손으로 조성된,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숲이 있다.
나는 4년 전, 멀지 않은 도시에서 귀촌을 하며 새로운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조건이 있었다.
바로 1년 내내 다니기 좋은 산책로의 존재였다.
그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한 곳, 이미 유명한 관광지인 ‘관방제림’을 품고 있는 마을에 터를 잡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담양에 조금씩 적응해 가며,
나는 이 정돈된 숲길을 걷고, 조깅하고, 자전거도 타며 매일같이 오간다.
천변을 따라 흐르는 영산강 상류는 늘 고요하고,
밤이면 가로등 불빛이 나무 사이사이 스며들어 산책길을 은은하게 밝힌다.
여름이면 햇빛보다 그늘이 더 많고, 바람이 자주 드는 이곳은
흙으로 쌓아 올린 제방 위에 조성된 푸조나무 숲이다.
‘관방제림’이라는 이름의 이 숲은,
강을 따라 줄지어 선 푸조나무들의 행렬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이 나무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얼핏 프랑스 자동차 회사를 떠올렸다.
혹시 조선시대 사람이 프랑스산 나무를 심은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사실 푸조나무는 프랑스산이 아닌 대한민국 고유종이다.
처음 관방제림을 조성할 때는 소나무나 느티나무도 심었지만,
강변의 습한 토질에는 맞지 않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 대신, 수분을 좋아하고 빠르게 자라는 푸조나무가 선택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지금 관방제림에는 111그루의 푸조나무가 있다.
마치 일부러 셈을 맞춰 심은 것처럼 신비롭다.
각 나무에는 관리번호가 적힌 명패가 달려 있어
하나하나가 군청의 손길 속에서 정성스럽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관방제림은 단순한 방제림이 아닌
사람들이 즐겨 찾는 풍치림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산책 코스를 제공한다.
죽녹원과 국수거리, 메타세쿼이아 길과 함께
담양의 전형적인 힐링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요즘처럼 한여름 무더운 날에도
푸조나무의 그늘은 시원하게 펼쳐지고, 잎사귀는 바람에 반짝인다.
벚나무나 느티나무도 함께 있지만,
이 숲의 진정한 주인공은 단연 푸조나무다.
겉보기엔 소박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나무는
줄기는 거칠고, 잎은 까칠하며
1cm도 되지 않는 작은 꽃이 봄에 핀다.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꽃이 피는지도 모를 정도지만,
그 꽃에는 은은한 향이 있고, 꽃말은 이 나무처럼 ‘소중한’이다.
이름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푸르다’의 ‘푸’, ‘고요하다’의 ‘조’일 수도 있고,
잎이 조각조각 나기 때문에 ‘푸조’라고 불렸을지도 모른다.
학명 Aphananthe aspera는 ‘눈에 잘 띄지 않고 거친’이라는 뜻을 가진다.
정말로, 이 나무는 처음부터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길 원한 것 같다.
메타세쿼이아처럼 외래종도 멋지지만,
푸조나무는 우리 땅에서 태어나 수백 년을 버텨낸 고유한 존재다.
그 큰 키와 단단한 줄기, 억센 생명력은
관방제림을 대한민국 유일의 방제림이자 풍치림으로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관방제림을 따라 걷다 보면 중간중간 작은 정자와 벤치가 나타난다.
나는 그중 한적한 자리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 온 보이차를 꺼내어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늘 아래 차와 책이 함께 있고,
한가로운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오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물소리와 나뭇잎 소리가 어우러지고,
푸조나무 잎의 향이 산들산들 퍼질 때
그 한 잔의 차는 내 마음속 무거운 생각들까지
발바닥으로 흘려보내주는 것 같다.
호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숨이 깊어지며,
세상이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순간.
푸조나무 아래에서는 그런 시간이 자주 찾아온다.
푸조나무는 매해 강물이 불어날 때
가장 먼저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다.
오랫동안 지역 사람들을 보호해 왔고,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푸조나무를 깊게 바라보다 보면
사람도, 자연도 겉보다 속을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보이는 모습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말보다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나무는 말없이 가르쳐 준다.
묵묵히, 묵직하게,
아무 말 없이 제 역할을 다하는 그 나무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용하지만 늘 곁에 있어주는 존재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