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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Dec 25. 2021

과학자의 삶이란?(feat.밥벌이의 고단함)

<랩 걸>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과학자의 삶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라


사람들은 수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직업과 연결시키지 않고 그 사람의 일상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수학자라는 직업군이 생긴 건 한 200년 될까? 주로 대학이라는 공간에 아주 소수가 존재하고 있을 테니 우리가 생각하는 수학자는 대부분 대학교수, 나머지는 생계와 관련 없이 수학을 좋아하는 아주 소수의 오덕 혹은 천재.


그럼 이번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수학자를 떠올려 볼까?


이미테이션 게임(앨런 튜링), 뷰티풀 마인드(존 내쉬), 굿 윌 헌팅, 박사가 사랑한 수식, 용의자 X, 무한대를 본 남자(라마누잔)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학자는 대부분 은둔형 천재. (그리고 거의 남자다.) 뭔가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사는 느낌이 강하고, 사회성이 떨어지고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느낌. 남이 모르는(설명하기도 쉽지 않은) 세계를 먼저 알아버린 탓에 천재의 일상은 늘 외롭다.


은둔형 천재는 왕따하고는 좀 다른데 자가격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친구가 필요 없는 거지. 행복은 순수한 지식 추구에 있으니까. 그리고 마무리는 항상 가슴 벅차다. 천재의 진가를 알아보는 순간 사람들은 감춰진 세계를 발견할 듯 웅장해져 버려. 영화가 끝나면 다시 나와 상관없는 남의 얘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학자의 전형은 사회로부터 자가격리한 은둔형 천재. 순수학문의 마지막 보루. 로맨스도 순수해~~~


이게 왜 문제냐면 수학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학은 천재의 학문이다

그다음은 자연스러운 연상작용. 수학은 원래 어렵고, 재능이 없으면 열심히 할 필요가 없고, 취미로는 더더욱 불가능. 수학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청소년기에 이미 판정 나는 거고, 그러니 입시나 취업이 아니라면 굳이 억지로 수학을 들여다볼 이유도 없음! 결국 누구나 수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아무도 수학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이유다.

 

고정관념에 박혀 있는 수학자의 이미지란 대부분 과거 유물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학자 이야기니까 수학자 이야기는 이쯤 하자.(왜 이렇게 서두가 길어~~~) 참고로 요새 수학자는 그럼 뭐 어떤데? 알고 싶으면 이 기사를 참고.




그렇다면 21세기 과학자의 삶은?


잘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수학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듯이, 나 역시 어느 정도 과학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를 읽었다.


책에 대한 정보를 간단 요약해보자.


- 이 책의 저자는 미생물, 그 가운데 꼬마선충을 연구하는 젊은 과학도다.

- 에세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은 아예 몰라도 상관없다. 요즘 에세이가 대세라 함량 미달인 저작도 많지만 이 책은 제법 괜찮은 에세이다.   

- 저자는 가장 피지컬이 좋은 시절의 젊은 과학자, 그것도 실험실에서 밥먹듯이 날을 새는 유형의 과학자다. 실험실을 현장 삼아 살아가는 과학자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시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과학자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수학은 여전히 순수학문의 마지막 보루 같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에 반해 과학은 자연스럽게 과학기술, 더 나아가서는 과학기술 산업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당연히 수학도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돈이 되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삶은?


돈이 되지 않는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삶은 처절하다.

돈을 끌어 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과학자의 일상은 늘 내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영업자를 닮아 있고, 실험실 밖을 상상하기 힘든 일상은 늘 피로에 찌들어 있는 노동자를 닮아 있다. 밥벌이의 고단함에는 과학자도 예외가 없다. 다만 이상(좋아서 하는 일)과 현실(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의 저울질에서 무게추가 이상 쪽에 좀 더 가까이 있어, 이 책의 저자는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애처롭지만 행복하고, 곤궁하지만 환희가 있는 과학자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랩 걸>을 빼놓을 수 없다. <랩 걸>은 여성과학자라는 현실이 더해져 그 자체로 훌륭한 페미니즘 교양서이기도 하다.


<랩 걸>을 함께 읽으면 과학자의 일상이 보인다.


우리는 다양한 직군 삶에 대해, 다양한 성격의 노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주사회를 함께 운영해가는 시민으로서 공통 감각을 기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이과적 감성이라 퉁쳐버리는 것들, 이공계 전공을 살린 다양한 노동과 직업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부족하다. 그나마 시장이 넓은 과학교양서는 대부분 꽤나 업적이 알려진 과학자(교수)의 입을 빌린 책이 대부분이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랩 걸>


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대략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과학자의 일상이 보인다. 모든 삶이 그러하듯 어떤 면에서는 서로 닮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아주 다른 과학자의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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