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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Dec 28. 2021

완두콩 공주님(1편)

완두콩 공주님: 요지는 이렇다. 롱롱 타임 어고.
흔해빠진 공주는 아무짝에도 필요 없다며 오리지널 공주만 찾는 강박 왕자가 있었다.
비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얄궂게도 물에 젖은 생쥐꼴의 어떤 공주가 왕자를 찾아왔다.
강박 왕자는 이 공주가 오리지널인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작은 완두콩 한 알을 이용하기로 했다.
공주가 눕는 침대 밑에 완두콩 하나를 슬며시 넣어놓고 그 위로 매트리스 열 두 개, 오리털 이불 열두 겹을 깔아 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음 날 오리지널 공주는 재워준 것에 대한 감사는 고사하고 고작 완두콩 한 알에 온 몸엔 멍이 들고 한숨도 잠을 못 잤다고 불평을 쏘아댔다.
다른 공주들과 달리 호의에 감사할 줄 모르고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정으로 오히려 오리지널 타이틀을 따낸 희귀한 필모그래피의 소유자.
그게 바로 완두콩 공주님 되시겠다.


카톡 프로필 닉네임을 '완두콩 공주님'이라 설정해둔 이가 있다. 난 개인적으로 이 사람과 좀 교분이 있는 편이다.


교분이 있으면 있지, 있는 편은 또 뭔가 묻는다면 교분이 있고 싶은 날이 있는가 반면, 또 모른 척하고 싶은 날도 꽤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련다.


뭐 대충 그런 사이라 해두자. 일단.


암튼 본인을 공주님이라 입력한 것도 웃기는 일인데 그것도 완두콩 공주라니. 피식 헛웃음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인간이 영 주제 파악이 안 되는 인물은 아니구나 싶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거. 그거 참 좋은 일이다.

카톡 프로필의 완두콩 공주님은 동화의 공주와 별반 다른 게 없다. 별나기가 별나기가. 도대체 네가 뭔데 이 까탈인가, 기가 찰 정도다. 일단 이 종류의 공주님들 예민의 시작은 촉각이라 할 수 있다.


완두콩 공주님이 옷과 침구를 고르는 기준은 오직 원단, 오직 바느질이다. 공주에게 있어 티셔츠 시보리의 여부, 바느질 방향, 솔기 방향은 대충 넘어갈 수 없는 일생일대 중대 사안인 것이었다.


거기다 면과 울, 면과 폴리의 함유량 퍼센트는 공주의 정신 건강 척도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가 되고도 남는다. 아 혼방. 그것은 무엇이관대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가.

아 혼방, 혼방아.

혼방, 그것은 확실히 인간의 희로애락을 좌지우지하는 얄미운 풍깍쟁이인 것이다.


공주의 픽은 무조건 면 100%다.

단, 집에서 입는 적당히 늘어나야만 편한 홈웨어의 경우에만 폴리 10% 내외를 허락한다. 요즘 세상에 면 100%는 갓 태어난 아기들이 장염 걸렸을 때만 차는 면 기저귀인 줄로만 알았던 나로서는 그의 면 원단 집착이 매우 희한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 이래서 왕자가 오리지널 오리지널 했었구나.


공주는 만성 비염이다. 하지만 알레르기 처리가 돼 있는 이불은 절대 덮지 못한다. 그것은 면 100%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수리 공주 수발들 듯 비염에 효험이 있다는 알레르망 이불을 대령했다가는 그날 밤 소박은 따놓은 당상이 된다. 공주는 알레르기 방지 이불은 비닐을 덮고 자는 것 같은 이물감을 느끼게 한다며 한사코 먼지 풀풀 날리는 면 이불만을 고집한다. 아오. 뭘 어쩌라는 거야.


이쯤에서 '소박'이라는 단어에 당신의 눈길이 향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렇다. 지금 당신이 짐작하는 그것이 맞다. 앞서 얘기했듯 공주와 난 아는 사이다.

난 절대 모른단 얘기 안 했다. 그저 모른 척하고 싶을 때도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래, 깨끗이 인정한다. 난 무수리다. 그는 공주다.

그게 그렇게 됐다. 그러므로 카톡에 완두콩 공주님이란 자의식을 입력한 오리지널 공주는 다름 아닌 내 남편 되시겠다. 고로 나는 그와 10년째 결혼 생활 중인 무수리 되시겠다.

아오. 이 웬수야.(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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