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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Jan 06. 2022

달팽이 선생님 (머리말)

달팽이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달팽이를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생각나시나요?

저는 손대면 톡 하고 껍질 속으로 숨는 작고 여린 몸이 떠오릅니다. 이슬 맺힌 풀잎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달팽이를 바라보면 귀엽기도 하고 엉뚱해 보이기도 합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라도 달팽이는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갑니다.  

   

저는 달팽이를 닮은 특수교사입니다.

올해로 학교 현장에서 조금 특별한 아이들을 만난 지 17년이 된 현직 교사지만, ‘중견 교사’나 ‘베테랑 교사’라는 수식어가 어색한 그저 평범한 교사일 뿐이지요. 세상의 속도보다 아주 느리고 적응능력도 어딘가 부족한 자연인, 그 자연인이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을 때의 모습이 바로 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달팽이를 닮았습니다.

아주 조금씩 자라는 달팽이처럼, 비록 다른 친구들보다 서툴고 느릴지라도 분명한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따라 날마다 성장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래서인지 담임을 맡아 여러 해가 지난 후 돌아보면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놀랍기만 하답니다.      


전교생이 체육관에 모이는 조회 시간마다 놀라서 울던 아이, 급식소의 소리와 냄새에 예민해 점심을 먹지 못하던 아이, 통합학급 선생님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부끄러워서 등 뒤로 숨던 아이들이 어느새 몸도 마음도 자라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쩌면 아이들이 교사인 저보다 훨씬 더 대단한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달팽이를 닮은 선생님과 아이들이 보내는 ‘하루’는 차곡차곡 쌓여 함께 성장하는 발판이 됩니다.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준비하고 즐거운 활동을 계획하는 것은 저지만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날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교실 생활 속에 어느새 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예상치 못한 엉뚱한 대답과 반응에 함박웃음을 짓게 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때로 아이들에게 속상한 일이 생기면 앞에서는 달래면서도 괜스레 슬픈 마음에 퇴근 후에도 쉬 생각을 놓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시작하게 될 이야기는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소소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저같이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교사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한참을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 현장에는 탁월한 연구 능력과 뛰어난 업무 처리로 감탄을 자아내는 선생님들이 정말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오늘 만나는 우리 아이들과의 한 시간, 그 하루에 온 마음을 쏟는 ‘하루 형 교사’의 솔직한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사실 이 글은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습니다. 제가 특수학교 초등부 4학년 담임을 맡고 있을 때, 전학을 문의하시는 상담 전화를 받게 된 것입니다. 전화하신 어머님의 아이는 4학년이었는데,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학부모님은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의 차이를 모르고 계셨습니다. 특수학교 전학을 희망하시면서도 “우리 아이는 통합 반에 언제 가나요?"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이가 4학년이 될 동안 특수학교나 학급의 교육환경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하셨다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자세히 안내해드렸습니다. 그리고 길고 긴 상담 끝에 어머님께서는 통합교육에 대한 희망으로 특수학교 전학을 포기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고 그나마 상담을 통해 안내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학부모님께서 조금 더 일찍 특수교육 교육환경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만 아셨더라도, 이사나 전학과 같은 아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대한 시행착오가 훨씬 줄었으리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 한참 동안 고민했습니다.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기까지의 절차, 진단 평가와 배치 같은 학부모님이 꼭 아셔야 할 단계에 대해 구체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요즘은 시도교육청마다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상담도 해주시고 특수교육대상자 선정과 배치에 대한 절차도 상담해주십니다. 하지만 그런 매뉴얼로는 부족한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뉴얼과 교육 현장 실제의 간극, 다시 말해 우리 아이가 등교 후 하교까지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되는지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어질 글들을 통해 특수교육이 교실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가능한 한 자세히 안내하려 합니다.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입학하며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일 년의 학사일정을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학부모님은 어떤 역할을 하셔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려 합니다.      


더불어,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의 차이는 무엇인지, 학교 선택은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입학 후 안내되는 각종 회의는 어떤 것이 있으며 우리 아이에 대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교실 경험을 사례로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⓵ 이 글을 통해 제시된 사례 및 모든 이름은 위와 같은 내용의 이해를 위해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가상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혀둡니다.
⓶ 가능한 사례에 적용된 특수교육 관련 법률과 시행령을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떠한 법률적 근거가 바탕이 되어 교실에서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⓷ 특수교육 현장은 시도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서울과 경기, 강원도와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다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현재 저는 강원도 특수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이기에 제시된 교육 장면이 지역 특색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지역의 특수교육 상황이 궁금하시면 가까운 특수교육지원센터나 특수학급, 특수학교 선생님의 구체적인 상담과 안내를 받으시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이런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⓵ 특수교육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님
 ⓶ (초등 과정) 특수교육대상학생의 학부모님
 ⓷ 특수교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학생.

요즘 저의 마음에 화두처럼 떠오르는 문장은 ‘이유 없는 인생은 없다’입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삶의 모습과 사정이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우리의 가족의 모습이 있기까지는 많은 이유와 결정적인 삶의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저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이런 생각이 들면 오히려 저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깁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학부모님들과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첫 장을 넘기고 계실 분들의 얼굴을 상상해봅니다. 모두 저마다의 이유와 궁금함으로 특수교육 관련 검색어를 눌러 이 글을 열어보실 여러분들의 얼굴을 상상하면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으로 달팽이집에 쏙 숨어버리고만 싶습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특출하지 않더라도 이 길을 지켜온 달팽이 선생님의 작은 발걸음을 시작해봅니다. 소박한 이 글이 독자 한 분의 마음에라도 닿을 수 있다면, 아직도 서툰 달팽이 선생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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