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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Oct 29. 2022

아리랑 고개를 넘어 비단길로 떠나다

서 시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 1

      1. 구름 위를 날다

     

  보잉 767 기종인 KC910은 중국 상공을 날고 있었다. 승무원에게 허락받고 화장실 옆의 좌석에서 비상문 쪽의 창가로 좌석을 옮긴 후 밖을 보았다. 작은 유리 밖의 세상은 눈이 부시다. 푸른 하늘과 햇빛 속에서 빛나고 있는 하얀 구름밭… 가끔 구름이 걷히면 비행기 날개 아래로 황톳빛 대지가 보이기도 했다. 조금 지나자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분할 수 없는 희뿌연 장막 아래에 사막만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인천공항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까지는 6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인 비슈케크가 목적지이다. 한국에서는 직항노선이 없어서 경유해서 가야 한다. 그렇기에 알마티는 단순히 스쳐 지나갈 장소에 불과하다. 

  내가 중앙아시아로 떠나게 된 것은 순전히 이 교수 덕분이다. 5월 초이었던가 “선배님 중앙아시아 갈래요?” “선배님 가면 나도 가고…”동료들과 방학이 되면 해외로 한 번 나가자고 약속했건만, 실천으로 옮기자고 할 때는 이런 핑계, 저런 사정으로 다 달아난다. 평소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일상의 틀이 그만큼 단단하다는 것이다. 결국 혼자라도 베트남을 종단하는 기차여행을 하겠다고 결심한 무렵에 이 교수가 중앙아시아에 가자고 한다. 미지의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늘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늘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앞지른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래 같이 가자”라고 답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비단길 앞에 험한 아리랑 고개(?)가 놓여 있음을 알지 못했다.     

   

      2. 5월에 항공권을 예매 그러나 

    

  코로나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5월이 되자, 점차 해외여행의 바람이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출국과 입국 때의 PCR 음성 검사서 제출 등 여러 제한 조치가 잔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은 봄날 눈 녹듯 서서히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의 여행 금지 상황에 대해 분풀이를 하듯, 나 같은 여행 중독자들의 이른바 복수(復讐) 관광의 추세까지 가세하자 항공권 가격이 나날이 치솟고 있었다. 

  나는 이 교수에게 동의를 얻어 5월 중순 무렵, 부랴부랴 출발 세 편의 항공권을 예매했다. 출국(서울 – 비슈케크), 입국(알마티 – 서울), 우즈베키스탄 국내선(타슈켄트 – 누쿠스), 이 세 편의 항공권을 예매하는데 대략 1인당 170만 원 정도가 지출되었다. 내가 예매를 마친 후 항공권 가격은 계속 치솟더니 몇몇 노선은 매진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공급을 넘어서는 수요에 대한 대응으로 중앙아시아의 항공노선은 나날이 증편되기도 했다. 

이 교수와 함께 계획한 일정은 7월 9일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로 날아가 이미 일정을 진행 중인 윤 선생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송쿨 호수와 스카즈카 협곡 등을 보고 오쉬로 이동한 다음 7월 17일 차량편으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로 그리고 누쿠스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로 이동한 다음 7월 24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돌아와 7월 28일 항공기 편으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항공편의 구입 때문에 출발이 7월 8일로 귀국은 7월 28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예약한 항공편의 여정표까지 출력해놓은 상태에서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선 우즈베키스탄 국내선의 항공 일정 변경이다. 오전에서 오후로 변동된 내용이지만 이는 큰 차질이 없었고 하루 한 번만 출항하는 것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한 주쯤 지나자 이번에는 7월 28일 알마티에서 인천공항으로 운항하는 아시아나가 일정을 변경하였다. 이것도 그대로 수용하여 하루 더 알마티에서 묵기로 하고 현지 호텔도 하루 더 연장하였다. 

  그런데 출발을 이틀 앞둔 7월 6일 아침 메일함을 열고는 경악했다. 모레 이륙하기로 한 아스타나 항공편이 또다시 운항 변경을 통보한 것이다. 천재지변도 아닌데 자기들 마음대로 운항 일시를 바꾸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벌어진 사태를 다시금 수습하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인천공항에서 오전 11시 25분 출발하는 여객기의 일정은 그대로인데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공항에서 비슈케크로 운항하는 항공편이 알마티에 도착한 다음 날인 9일 오전 10시 15분 이륙이다. 그러면 알마티에 도착한 뒤 오후 4시부터 그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18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해야 하는 신세다. 하루 동안 공항 노숙자가 되는 셈이다. 

  6일 오전, 예약사에 7월 7일로 항공 일정으로 변경을 신청했다. 운항 시간도 짧고 호텔과도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저녁이 되도록 묵묵부답이다. 항공권 예매사에서는 항공사에 신청했다는 사항만 통지할 뿐이다. 6일 온종일 그리고 7일 저녁 12시까지 이어진 해프닝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 

  변경 요청을 해줄 수 없다면서 보내온 통보, 기존의 예약 좌석이 날아가 버렸단다. 항공사의 잘못인지 예매 대행사의 책임인지를 따지는 것은 급한 것이 아니다. 9일 날이라도 비슈케크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일행과 합류할 수 없고, 송쿨 호수에서 유르트 민박 건도 틀어질 것이다. 여행사에서의 전화 통보는 더욱 기막히다. 예약한 항공편이 없어져 새로 예약해야 하는데 기존의 금액과 차액이 발생하면 차액만 큼을 다시 결재해야 항공권 예약이 진행될 수 있다고 한다. 말문이 막히고 혈압이 오른다. 도저히 상식적으로도 이해 안 되는 처사에 “이번 일이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으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강경하게 여행사 담당 팀장에게 통보했지만, 걱정이 앞선다. 

  항공권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는데 며칠 뒤의 항공권이라도 다시 구입을 해야 하는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교수의 제안대로 차액이라도 부담하고 원래의 일정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 보자는 아노미 상태가 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어! 갑자기 오른 혈압은 떨어지지 않는다.  

    

    3. 천산산맥을 넘어   

   

  자유 여행은 말이 지시하는 개념처럼 늘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정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마음 가는 대로 가고 오는 것이 자유 여행이란 개념과 부합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현지에서 지내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직면하기도 하고 계획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변경되기도 한다. 

  여행이라고 해서 늘 재미있고 즐거운 것은 아니다. 피로와 짜증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고, 불안과 외로움에 젖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과 시련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갈 의지가 없다면, 자유 여행은 그만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힘듦과 어려움 속에서도 잠깐 스치는 감동, 만족, 행복감, 인연, 정취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고생도 즐거움과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KC901편은 우루무치 상공을 지나고 있다. 고도는 1만 미터, 속도 700, 밖의 기온은 영하 40도에 육박하고 있다. 투루판과 우루무치를 지나자 대지의 형세가 달라진다. 이제 아시아 중앙 고원의 3,000 Km에 걸쳐 뻗쳐 있는 천산산맥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산산맥은 중국에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네 나라에 걸쳐 있으며 파미르 고원과도 연해 있다. 인천공항에서 이 교수와 함께 환승 시간에 먹을 간식을 구입할 때 매장 직원이 여권과 비행기 표를 체크하며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 좋은 많은 곳 놔두고 왜 중앙아시아에 가세요?” 이 교수의 대답은 간단했다. “안 가봤으니까요!” 

  우루무치를 지나자 여객기 창밖으로 만년설이 덮여있는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흑과 백의 조화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출발하기 전에 겪었던 번잡함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다. ‘구름만 없다면 그 고고한 산군(山群)들을 까마득한 공중에서 감상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4. 공항 노숙자로 하룻밤을 보내다  

   

알마티 공항 활주로에서 보는 천산산맥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공항은 70년대 후반의 김포공항 같았다. 1층은 국내선, 2층은 국제선 청사로 활용하고 있다. 이스타나 항공기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환승 대기실로 이동했다. 그러나 말이 환승 대기실이지 국내선 출구로도 쓰이는 이곳은 한국의 버스터미널의 대기실보다도 못하다.

  우리는 열악한 1층을 떠나 국제선 출국장으로 쓰이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서너 군데의 스낵바와 면세점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오후 7시이지만 현지 시각으로 4시,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18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알마티 공항 1층과 2층의 시설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하여 면세점의 품목 확인, 스낵바의 메뉴 확인에 이르기까지 대충 끝내고 우리는 샌드위치와 캔 맥주로 저녁을 대신했다. 와이파이도 제대로 되지 않는 번잡한 출국장에는 한때 방호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온몸을 비닐로 감싸고 환승을 기다리는 수십 명… 그들은 중국인이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코로나19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아니면 중국 정부의 지시였을까? 

알마티 공항 청사

  오후 11시 30분이 지나 모든 여객기의 출항이 끝나자 소수의 환승객만이 남았다. 우리는 미리 사두었던 작은 병의 보드카와 스낵으로 알마티 공항에서의 밤을 자축하고 빈 의자에서 몇 줄의 시구절을 메모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것이 중앙아시아 여행의 첫날밤이었다.               

   


파미르 고원의 아침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서(序)     

                          

  나, 길 떠날 거야. 하루하루 녹슬어가는 시간의 철책을 넘어 돌팔매처럼 날아가는 새들을 따라서 어쩌면 먼 곳으로 떠나갈 거야. 황사와 미세먼지 속의 산과 산을 넘고 탐욕과 이기심으로 죽어버린 강을 건너면 어쩌면 천국 같은 곳이, 낙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몰라.     


  봄이면 살구꽃 복숭아꽃이 천지인 무릉도원을 찾아 시기와 음모가 역병처럼 번지는 도시를 떠나갈 거야. 그래 미련도 버리고… 걷고 걸어 지친 저녁 무렵에는 처음 인사를 나누는 별들과 만나고, 잠들지 못하고 지새운 새벽녘에는 눈물기 가신 낮달의 갸름한 얼굴과 마주할 거야.   

  

  가고 가서 언젠가는 구름 위에서 고개를 쳐든 설산에 닿으면 인공눈물 없이도 울 수 있을지 몰라. 풍화되고 퇴적된 너른 벌판에서 낮게 흘러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은밀하게 떠돌다 근육질의 산들을 감돌아 오래된 흙집들의 마을에 닿으면, 겨우내 눈물과 폭설에 씻긴 고요하고 맑은 혼을 꿈꿀 거야. 나, 길 떠날 거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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