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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Oct 29. 2022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비슈케크에서

서 시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 2

     1. 마나스 공항에 내리다.    

 

   11시 30분 출발하여 비슈케크로 가는 아스타나 항공의 보잉 737기에 탑승한 승객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 대다수는 아마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의 국적을 가진 현지인으로 보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처럼 여행을 온 인물들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알마티 공항 청사

  승객들의 특징 중 하나는 아이를 여럿 데리고 탄 중년 여성들이 많다는 점이다. 아이의 엄마 같지는 않고 아마 할머니쯤 되지 않을까 여겨졌다. 이곳에서도 한국처럼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 직장을 다니는 딸이나 며느리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이리라. 

  여객기가 출발하기 전부터 뒷자리의 중년 여성에 안긴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때 이 교수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사탕 몇 개를 꺼냈다. 잠시 후 사탕을 입에 물고 아이는 잠이 들었다. 이 교수가 한마디 한다. “역시 우는 아이에게는 사탕이 최고야!” 이 교수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사실 엊그제 알마티로 오는 비행기에서 칭얼대는 아이에게 나 역시 사탕을 준 적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귀여운 아기가

  만년설이 융단처럼 깔린 천산산맥을 넘자 비슈케크는 금방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비행 후 내린 비슈케크의 공항은 알마티보다도 작았다. 공항청사는 마치 한국의 소도시에 있는 버스터미널 같다. 

  여권 심사와 간단한 수속을 끝내고 출국장으로 나왔다. 공항에서 아이잣에게 도착했노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오란다. 공항청사를 나서려는 순간 “아 참 배낭 안 가져왔네!” 이 교수가 당황한 표정이다. 트렁크와 작은 가방만 챙기고 배낭을 수화물 코너에 두고서 온 것이다. 아마 그 배낭은 수화물 찾는 곳의 의자에 그냥 놓여 있을 것이다.

  입국장 수화물 센터 쪽으로 갔던 이 교수가 다시금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짐 찾으러 가야 하는데 공항 직원들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구글 번역기로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현지 직원은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한참을 좌충우돌하던 사이에 이십 대의 젊은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종전에 택시 필요하냐며 말을 건네던 인물이다. 그는 짧은 영어로 “나는 아이잣의 친구예요.”라고 한다. 우리의 사정을 전해 들은 그가 현지 직원과 러시아어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직원은 무전기로 누군가에게 뭐라고 한다. 몇 분 후 남자 직원 한 명이 이 교수의 배낭을 가지고 왔다. 

  당황한 이 교수에게 “걱정하지 마라. CCTV도 있고 하니 누가 가져가지 않는다.”라고 말해주었지만 사실 나도 적잖이 긴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몇 년 전 호찌민시에서 그것도 여행 첫날에 휴대전화를 도난당하는 봉변을 겪었었다. 그렇기에 여행 중 무언가 잃어버리면 어떤 심정인지는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무사히 수습되었으니 액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공항 현지 직원과 설왕설래하는 동안 내가 아이잣과 통화를 했었다. 이렇고 이런 일이 있는데 당신이 와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곧장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왔다. 밝은 분홍색 블라우스에 흰색의 천으로 히잡을 한 그녀의 얼굴은 유럽이나 위구르 보다는 오히려 동양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녀의 할아버지는 터키(투르키에)계이고 어머니는 키르기스인이라고 들은 것 같다.    

 

    2. 비슈케크에서 첫째 날 –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과 시내 관광을 

    

  공항에서 만난 ‘콜리’란 이름의 청년은 아이잣이 보낸 택시 기사였다. 한국인이라 해도 어색할 것 같지 않은 그는 스물여섯이란다. 그가 몰고 온 차는 삼십 년쯤 되어 보이는 벤츠였다. 실내는 넓었지만,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다. 

  비슈케크에서의 첫날, 약간의 구름이 떠 있는 전형적인 여름 날씨다. 햇볕은 따가운데 그늘은 시원하게 느껴진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선선하게 느껴진다. 기온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습도가 낮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평균 해발이 2,700미터라고 한다. 천산산맥(알라따우)에 연해 있는 산악 국가이며 중앙아시아의 주요 수원지인 시르 다르야강과 아무 다르야강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전 국토의 3분의 1이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산에 접해있으며 설산의 눈 녹은 물은 1,923개의 거울처럼 맑고 깨끗한 산정호수와 널따란 초원을 펼쳐 놓고 있다. 우리가 여행할 세 나라(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중에서 유목문화의 전통을 여전히 지켜가는 유서가 깊은 민족이 사는 나라임은 주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설산들과 넓은 평원 그리고 방목된 말과 소, 양 떼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을 보자 생경하고 신선한 느낌이 든다. 

  점심때를 넘긴 우리는 ‘나왓’이란 키르기스스탄 전통 음식점으로 향했다. 작은 정원까지 있는 음식점은 비교적 깨끗했다. 시장했던 우리는 수프와 빵, 샐러드, 밥과 샤슬릭(꼬치구이), 양고기 요리까지 맥주를 곁들여 싹 해치웠다. 처음 맛보는 음식이지만 향도 강하지 않고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넷이서 고기와 맥주까지 주문했지만, 식대는 전부 3천 솜, 우리 돈 5만 원 정도다. 1인당, 1만 2천 원이면 한국 관광지의 백반이나 된장찌개 가격 정도인데… 

식당의 야외 좌석

  식사 후에는 차로 작은 언덕 위에 올라 잠시 비슈케크 시가를 조망했다. 평원에 세워진 도시의 첫인상은 평범하면서도 친근하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의 대전시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비슈케크는 한때 알마티에서 출발한 대상들이 지칠 무렵 닿는 오아시스였다. 그러나 도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대체로 3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의 국가명에서 키르기스라는 명칭은 40이란 뜻의 ‘크르’와 부족 명 ‘오구즈’가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라고 들었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40을 연상시키게 한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며 그만큼 키르기스스탄은 다민족 국가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시가

  우리와 피부색과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은 대략 인구의 70%에 달하는 키르기스인, 우즈벡인이 다수를 이루고 슬라브인, 고려인까지… 다인종 국가라는 것은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사항일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유목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나라, 돌아보면 비슈케크에서 역사박물관에 들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마 그곳에 갔었다면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늦은 오후, 비슈케크는 한국과 시차가 3시간이다. 우리는 오후 5시 무렵 알라토 광장에 도착했다. 넓은 광장이지만 비교적 한적한 느낌이다. 나는 키르기스스탄의 전설적인 영웅인 마나스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나스 동상

  나의 관심은 그의 업적이 아니라 50만 행이나 된다는 마나스 서사시에 있었다. 이 서사시는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16~19세기에 채록되기 시작했고 1920년대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마나스와 그의 아들 세메테이, 손자 세이테크에 이르는 3대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키르기스의 역사, 철학, 민속, 생활에 이르기까지 키르기스인 문화의 보고(寶庫)라고 한다. 마나스 서사시는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지만, 구전 전승하는 과정을 통하여 키르기스인들의 창조적 능력과 예술적 재능이 가미되어 있을 것이다. 짧게는 수천 행으로부터 길게는 수십만 행에 이르는 서사시를 낭송하는 사람들을 ‘마나스치’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각종 행사에서 시를 낭송한다고 한다. 마나스 서사시의 낭송은 여러 행사의 중요한 의식 중 일부라고 알려져 있다. 

  마나스 동상 건너편에는 분수대가 있고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주말이어서인지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이 있는 반면, 금발의 슬라브계 사람들도 보인다. 광장과 공원을 대략 둘러보고 더 늦어지기 전에 한 군데 더 가기로 했다. 

   우리는 비슈케크에서 40Km 정도에 위치한 알라 아르차 공원으로 향했다. 늦은 오후로 접어들자 햇볕의 따가움도 따스함으로 바뀌었다. 포플러가 줄지어 서 있는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서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입장 시간이 지난 탓에 차는 공원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은 4천 미터급 봉우리가 여섯 개가 있는 산악 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20여 군데의 빙하와 50여 개의 봉우리가 있는 곳으로 등반, 도보여행, 승마, 산악스키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고 알려진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설산과 고원인 탓에 한국에서도 여행의 명소로 소개되고 있다. 강을 둘러싼 협곡과 만년설, 산정호수 등을 둘러보려면 산장에서 묵어가면서 최소한 2박 3일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알라 아르차 공원 입구에서

  아직도 풍화되지 않은 거친 돌산과 만년설, 초원과 수목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강물이 조화롭게 이루어낸 정경은 여객기와 환승장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순간 날아가게 만든다. 이 교수와 나는 만세를 부르듯 두 손을 치켜들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산에서 불어오는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 하늘 높이 자란 가문비나무와 백양나무, 들꽃이 가득한 평원 그리고 계곡 사이를 굽이치며 세차게 흐르는 우윳빛 강물은 떠남을 아쉽게 만들었다. 햇빛이 뉘엿뉘엿할 때 돌아오면서 ‘언젠가 다시 오리라’고 마음속에 다짐한다. 그 다짐이 언제 어떻게 실현될는지는 나도 모른다. 

    

비슈케크로 돌아오는 길에서

    3 비슈케크에서의 둘째 날 – 시장에서 아침을  

        

  꿈을 꾸었다. 허름한 신발을 벗어 버리고, 구두인지 운동화인지 또 다른 신발을 신고 있었다. 어제도 자정이 넘어서 잠들었지만,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그래도 깊은 잠을 잔 것 같다. 몸도 개운하다. 다만 밤사이 겪은 왼쪽 종아리의 경련 때문에 약간의 통증과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걷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자 이 교수도 깨어있다. 오늘 일정은 조식 후 10시에 출발, 고산지역으로 올라 송쿨 호숫가의 유르트에서 숙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당면한 것은 아침 식사와 환전이다. 호텔 지배인에게 물으니 동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란다. 나는 구글 지도를 검색해 인근의 식당을 찾아내었다. 

  유명 맛집을 마다하고 그 반대쪽인 오쉬 바자르의 식당을 선택한 것은 그 방향에 환전소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식당에는 점원이 둘이 있었고 주방에서 일하는 금발의 여성도 있었다. 메뉴판을 꺼내 들었지만,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안 된다고 한다. “지금 요리가 가능한 메뉴는?”을 러시아어로 변환해서 보여주자 서빙하는 젊은 여성이 손으로 메뉴판의 문자를 가리킨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입구 앞에 있는 사진 중 그 메뉴가 무엇인지 보디랭귀지로 물었다.

  고기 완자 위에 달걀 프라이가 얹혀 있고 마카로니와 밥이 있는, 이름도 모르는 음식이 탁자 위에 얹힌다. 떡갈비처럼 다진 고기를 구운 것과 달걀, 밥과 마카로니 그리고 처음 접하는 귀리에 소스가 뿌려진 이름도 모르는 음식을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가격은 한화 2,800원 정도로 가격도 싸지만, 맛은 더욱 좋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역시 즐겁다. 

  식당 문 앞에는 과일가게가 있고 수북이 얹혀 있는 체리가 눈에 띈다.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체리 그러나 워낙 비싸서 만족할 만큼 먹어보지 못한 체리가 궁금하다. 40대 현지 여성은 1킬로에 뭐라 하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휴대 전화의 계산기를 보여주자 150을 표기해준다. 그러면 150X16이니 1킬로에 우리 돈으로 2,400원이다. 한국과 비교하니 너무나 싸다. 몇 달 전, 아파트 앞의 노점상에게 500그램을 2만 원이나 주고 산 적이 있었는데, 나는 주저하지 않고 1킬로를 샀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어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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