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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un 04. 2023

계엄령의 도시 누쿠스(NUKUS)로 떠나다

- 서 시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 7

     1. 현지 항공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타슈켄트에서 오랜만에 일찍 잠이 든 탓일까, 여섯 시 반에 잠이 깨었다. 아침 식사는 호텔 식당에서 한다. 밥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빵과 육류, 과일이 풍성했기에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 교수는 접시가 넘치도록 가득 담았고 나는 민감한 장(腸)을 생각해서 계란찜과 소시지, 햄과 빵 한 조각 그리고 샐러드 약간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선배님 여행하려면 많이 드셔야  해요!” 나는 삶은 계란과 샐러드를 더 가지고 왔다. 오랜만에 과식한 아침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한 달 전 타슈켄트에서 누쿠스까지 항공노선을 예약했었다. 윤 선생님의 여행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출발 열흘 전쯤 예약한 노선의 운항 시간이 변경되었다는 통보를 전문여행사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다른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윤 선생님의 팀 역시 몇 번인가 변경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침 일찍 출발하는 일정이었고 그다음은 12시 출발 그리고 다시 4시 20분으로 변경되었다고 메일이 왔었다고 한다. 타슈켄트에서 누쿠스로 가는 항공편은 하루에 한 번뿐이다. 그런데 출발 하루 전 내가 또다시 받은 이메일의 변경된 항공 운항 시간은 오후 8시로 되어 있다.

누쿠스행 국내선

  윤 선생님은 식사 후, 23일 타슈켄트에서 알마티로 가는 국제버스 예약과 더불어 항공편에 관한 확인을 하자고 한다. 윤 선생님 그리고 타슈켄트의 지인 아믹과 타슈켄트 버스터미널에서 23일 오후 4시 출발 알마티행 국제버스를 예약하였다. 내가 알고 있기는 17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눈이 쌓인 겨울의 경우이고 하절기에는 1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17시간을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기에 마음을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지만 12시간이라면 알마티 환승 터미널에서 견딘 18시간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슈켄트의 현지여행사에서 확인한 바로는 오늘 누쿠스행 비행기는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같은 항공편을 예약하였는데 윤 선생 일행은 4시 20분 우리는 오후 8시라고 메일로 통보를 받은 바 있다. 만약 같이 확인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6시 30분 정도에 택시를 타고 공항에 왔을 것이다. 그리고 여객기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는 망연자실할 것이다. 속된 말로 “새 됐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버린 선녀를 생각하며 울다가 수탉이 된 나무꾼의 심정일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상상만 해도 불쾌한 일을 범세계적인 예약대행업체가 저지르고 있다. 윤 선생은 “외진 나라에 갈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해 준다. 오늘도 한 수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부터 우리는 누쿠스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노선을 통해 여행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해 일행들 모두가 토의한 적이 있었다. 최근 누쿠스에서 반정부 사태와 시위가 벌어져 타슈켄트의 경찰의 반이 누쿠스에 투입되었다고 하고 누쿠스가 봉쇄되어 있다는 소식도 현지에서 들을 수 있었다. 현지의 지인인 아믹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어제부터 누쿠스의 통행시간이 10시까지 가능하다고 하며, 계엄령도 이미 풀렸다고 정보를 확인해 준다. 우리는 정해졌던 계획대로 무조건 밀어붙이자는 합의를 보았다. 그러면 오늘 일정은 4시 20분 발 우즈베키스탄 국내선을 타고 누쿠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은 아랄해를 다녀온 다음 히바로 가는 것이다.     

      2. 인터넷이 끊긴 누쿠스에서 하룻밤     


   누쿠스에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확 치밀어 오른다. 이는 사우나실로 접어들 때 느끼는 열기와 비슷하다. 공항 활주로의 아스팔트의 반사열이 더해져 체감온도는 40도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가 선택한 길인 것을… 공항을 나서서 우리는 내일 아랄해에 데려다줄 택시와 오후에 히바로 갈 택시를 각각 예약해야 했다. 한국어를 너무나 유창하게 하는 택시 기사 덕분에 무난하게 일이 풀렸다. 아랄해는 왕복 1대당 75달러에 히바(Khiva)까지는 50달러를 요구한다. 윤 선생님이 흥정을 통해 가격을 낮춘다. 물론 소형차가 아닐 것, 에어컨을 틀어줄 것을 옵션으로 하고서 말이다.

  누쿠스는 우즈베키스탄의 카라칼파크스탄 자치 공화국의 수도이며 인구는 20만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6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카라칼파크 공화국은 1936년 우즈베키스탄에 병합되었지만 카라칼파크인들이 주류다. 그들은 카라칼파크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7월 초 소요는 헌법 개정 초안에 카라칼파크스탄의 자치권과 독립권을 삭제하면서 발생했다고 한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18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태로 7월 한 달간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이었다.  

  예약한 숙소는 시내 한가운데 있었다. 침대 둘이 놓인 작은 방은 하루에 22달러다. 에어컨과 샤워실이 별도인 여행자 숙소는 공간은 작지만, 그런대로 깔끔하다. 자유여행을 하다 보면 여러 숙소를 거치게 된다. 백팩커(배낭여행)들이 주로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아파트 임대, 호텔까지 가격도 1만 원 이내에서부터 수십만 원 이상의 특급 호텔까지 선택할 수 있다. 숙박비와 숙소의 등급은 거의 정비례하지만 만족도는 그렇지만은 않다. 비싸더라도 형편없는 곳이 있을 수 있고 싸더라도 편안한 잠자리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대중적인 호텔까지 숙소를 정했다. 잘 선택만 하면 겉으로는 좁고 볼품도 없어 보이지만, 종업원의 친절, 청결, 와이파이 성능, 아침 식사의 수준에서 오히려 비싼 호텔에서보다 만족도가 높은 곳도 있다.

  오후 7시, 나는 사진 정리와 일정에 대한 메모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위해 윤 선생님, 이 교수와 함께 나섰다. 숙소 종업원에게 물으니 식당은 5분 정도 걸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묵고 있는 숙소 맞은편에 소피암(Sofiam)이란 터키식 레스토랑이 있었다. 숙소의 창문에서 보면 두서넛의 요리사들이 조리하는 장면이 보였다. 

  소피암은 생각보다 내부 공간이 넓었다. 흡연실과 비흡연실로 나누어진 홀에는 이미 많은 인원이 식사와 음료를 즐기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수프와 볶음밥, 샐러드 그리고 양고기 꼬치구이(케밥)를 녹차와 함께 먹었다. 분위기도 음식의 맛과 가격도 괜찮은 식당이다. 셋이 배부르게 먹은 이 모든 음식의 값이 우리 돈 3만 원도 안 되니 말이다.

  식사 후 산책을 나섰다. 비상사태 때문인지 한동안 끊겼던 교통편 때문인지 여행객들은 우리가 유일한 것 같다. 상점에 들어섰을 때 현지인들이 그들의 카라칼파크스탄의 국기를 들어 보인다. 그들만의 민족적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시내 쪽으로 걸었다. 거리는 한산하고 대체로 어두웠다. 정방형으로 잘 구획된 땅 위에 아파트와 건물이 축조되고 있었다. 누쿠스는 역사, 문화 등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은 도시처럼 느껴졌다. 아랄해와 히바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들렀지만 평범한 소도시라고 여겨질 뿐이었다.

  다리가 피곤함을 느낄 무렵 우리는 깔끔해 보이는 카페에서 러시아산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서빙하는 젊은 종업원이 오후 10시까지가 영업시간이라고 한다. 안주 없이 맥주 한 병씩을 천천히 마시고 우리는 일어섰다. 누쿠스의 번화가로 접어들자 낮의 무더위 때문에 보이지 않던 현지인들을 볼 수 있었다. 카페, 음식점, 패스트푸드점이 늘어선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그들만의 밤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정부의 비상계엄 따위는 무시하는 듯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점멸등을 켠 경찰차에서 “……” 무언가를 공지하고 다닌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반복되는 말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아마 귀가를 명령하는 듯한 내용이라고 우리는 추측한다.               

   

    3. 죽은 바다 아랄해로 가다     


  도저히 햇볕을 받고 다닐 수 없는 폭염 속에서 도합 6시간, 65불을 지불하고 아랄해를 다녀왔다.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에어컨 없이 달리다가 연료가스를 충전하고 나서야 미지근한 바람이 나온다. 동행인 이 교수는 벌써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시간과 돈을 지불하고, 사우나탕 같은 대지를 가로질러 아랄해에 도착했다. 무이나크(Móynoq)의 이미 바다가 아닌 황무지 같은 벌판, 관목과 풀들만 듬성듬성 강렬한 햇볕을 견디고 있는 곳…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싱싱한 고기를 끌어올리던 어선들은 붉게 녹슨 채 모래 위에 몸을 얹고 있었다. 운전기사의 이야기로는 이곳은 한때 번잡했던 항구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200km는 더 가야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와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바다로 흘러들던 강물을 끌어간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죽음과 부재, 고요와 목마름만이 존재하는 그곳으로 내려서자 모래가 발밑에서 서걱거린다. 경탄과 감동과 아름다움을 보고자 했다면 오지 말아야 하는 곳이다. 말라버린 바다, 이제는 항구가 아닌 사막 앞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길은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버린 채 몇 장의 사진을 찍는다. 그때 처음 보는 휴대전화의 경고문 “온도가 너무 높아 카메라 기능이 정지될 수 있다”는 문구, 몇 장 찍지도 않았는데…

  붉게 녹슬거나 뼈대만 남은 저 어선들은 이 황무지, 모래를 지나 푸른 물결의 바다로 나가던 그날을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붉게 녹슨 폐선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힘들게 닿은 이곳이지만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래 위의 배들뿐… 우리는 그늘에서 잠시 쉬며 중앙아시아의 참외 딩야를 먹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과 40도가 넘는 공기, 거기에 사막의 반사열까지 더해 숨쉬기도 힘들다. 딩야라도 먹지 않으면 열사병에 걸릴 것 같다.

수박과 딩야 파는 길거리의 가게

  우리는 잠깐 박물관에 들렀다. 그곳에는 아랄해가 마르기 전의 동식물과 영상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한 기념물과 영상이 제공되고 있었다. 인간들의 이기심이 몰고 온 환경파괴의 현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얼마나 물이 중요한 것인가. 다시금 자각한다. 출입구의 작은 기념품 상점에서 나는 중앙아시아의 전통악기인 돔브라의 작은 모형을 구입한다. 악기를 좋아하는 큰아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연주용 돔브라도 비쌀 것 같지는 않지만, 연주용 악기를 가져다가 벙어리로 만드는 것보다 장식용으로 모형을 사 가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이 없는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다시 사우나 같은 택시에 오른다. 아무래도 더위를 먹지 않았나 걱정도 된다. 젊고 건강한 날이 지나고 이제는 저무는 시기에 접어든 나의 몸이 그나마 견디어주는 것이 고맙다. 터진 입술 말고는 아직은 큰 탈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아팠던 허리도 여행 중에는 말썽을 부린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시간도 금세 지날 것이다. 

  언제인가 노화가 가속화되면 걷는 것 자체도 부담이 될 날이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풍화되고 침식되는 나의 몸… 언젠가는 모래 위의 폐선처럼 되어 버린다면 그때는 어떻게 무엇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갈까? 그때는 추억만으로도 견딜 수 있을까? 모래 위에 누운 폐선의 이미지는 그 뒤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아랄해를 보며

                           - 길 위에서 쓰는 편지. 4          


모래 위 떠 있는 폐선을 본다.

몇 척은 죽은 고래처럼 누워있다.

칠월의 태양은 

대지 위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하고

뜨거운 바람은 끈적한 땀까지 말려버린다.

마르고 부르튼 입술을 두건으로 가리고

한때 바다이었던 땅 위를 걷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의 바다.

섬들과 삼각주는 이미 모래 무덤으로 변해버린

물기는 모두 사라진 사막의 바다.

배들의 묘지를 걷는다.

한때 빛나던 이마와 든든했던 뼈들은

검붉게 녹슬고 삭아내려

다시 푸른 파도가 다가온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그들처럼

언젠가 추억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까.     

강물이 닿지 못하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욕망이 닿지 못하는 푸른 바다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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