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시인 Dec 19. 2023

겨울을 타이베이에서

- 타이완 자유여행. 1

   눈발이 고속도로 위에 마치 흰 꽃잎을 뿌리듯 내리고 있었다.

  안성에서 출발한 오전 6시 공항버스는 평택 송탄 오산을 거치면서 빈자리 없이 승객을 태웠다. 오전 11시 40분 타이베이로 떠나는 항공편을 한 달 전에 예매해 놓았다. 한국은 며칠 동안 극강 한파가 몰려오고 있었다. 연일 영하 10도를 넘어 내일은 영하 15도까지 예보한 상태다.

  일주일 동안 계획한 대만 여행, 새롭게 전자여권으로 갱신한 아내는 근 3년 만의 출국이다. 항공여정표에는 여객기의 편수가 OZ로 시작되어 아시아나항공이라고 알았지만, 아시아나와 협력 운항하는 에바 항공이란다. 에어 라이너라고 불리는 보잉 787에 우리는 몸을 실었다.

  김치볶음밥의 기내식을 먹고 잠깐 조는 사이에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한다. 창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흩뿌린다. 인천공항은 눈이더니 여기는 비가 반긴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택시비도 만만하지 않다. 전철과 버스 중에서 나의 선택은 버스다. 숙소가 있는 장안동로와 제일 가까운 곳을 경유하는 691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거의 두 시가 되어 착륙한 타이베이, 공항에서 출국수속, 환전, 유심칩 구입을 끝내고 20여분 기다린 버스… 오후 4시가 넘었다. 

  비 때문에 어둑해진 창밖의 경치, 공장과 주택단지, 고가도로 등이 그리 낯설지 않다. 한국, 일본과 비슷한 자연환경과 도시의 정취 때문일까? 버스에서 내려 택시로 이동한 호텔은 길 곁의 7층 건물이고 우리의 방은 6층이다. 건물은 낡았지만 비교적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 그런데 룸 안에 건식 사우나 시설이 있다. 열선 위에 얹힌 돌들, 땀이 살짝 날 정도만 몸을 데우고 샤워 후 저녁 식사와 산책을 위해 나섰다.

  타이베이의 거의 중심부에 있는 호텔 덕인지, 조금만 걸어도 백화점과 상가가 즐비한 번화가이다. 우리는 식당과 술집이 연이어 있는 중심부의 뒤쪽 골목으로 향했다. 일식집, 주점, 식당에는 현지인들로 붐빈다. 특히 대로와 접해있는 해산물 식당과 술집은 앉을 곳이 없을 정도다. 아내와 무엇을 먹을까 고심하다가 요리사 여럿이 제일 바쁘게 일하고 있고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구글 렌즈를 동원해서 주문한 음식은 볶음밥, 소고기와 공심채(모닝 글로리) 볶음, 고기와 해산물이 있는 국수 그리고 맥주 1병이다. 시장해서인지 모두 입맛에 맞는다. 떠나기 전, 둘째 아들이 힘들다고 한 이국적 향도 별로 없다. 다만 국수는 싱거워서 칠리소스와 간장으로 다시 간해서 먹었다. 네 가지 모두 410위안 우리 돈 1만 7천 원 정도이니 가성비도 괜찮다. 다만 국수에 들어있는 고기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돼지 허파와 간인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어제는 저녁을 먹은 뒤,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한국에서 새벽부터 시작된 행군에 지친 탓일 것이다. 오늘은 오전에는 세계 4대 박물관 중의 하나라는 국립고궁박물원을 둘러보고 점심 후 타이난으로 떠나는 일정이다.

  호텔에서는 조식으로 샌드위치와 음료를 준다. 평소 아침 식사를 하지 않던 버릇 탓인지 그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교통편이 잘되어 있는 대만에서의 일정은 공공교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오늘은 쫑샨(中山) 역에서 지하철로 스린(士林)까지 가서 스린에서 버스로 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중산까지는 걸어서 20여분이 걸린다.

  박물관의 입장료는 우리 돈 1만 원 정도이다. 옛 서적이 전시되어 있는 1층부터 우리는 관람하기 시작했다. 2층의 옥으로 만든 장신구들과 회화와 서예의 특별전을 거쳐 3층의 상나라에서 춘추전국시대의 청동기 유물을 관람했다. 중간중간의 홀로그램과 영상물까지 거쳐오다 보니 다리가 아프다. 일일이 역사적 유래와 특징을 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에 개략적인 눈요기였지만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모양의 주기(酒器)들과 청동제 무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물 모양의 정교한 청동제 그릇에 술을 담거나 따라먹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인물들만의 낭만이 느껴져 인상적이었고 칼이나 창날에 새긴 정교한 무늬들도 눈길을 끌었다.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류에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무늬라니…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딤섬을 먹자고 한다. 백화점 지하에 있어서 구글 지도로도 찾지 못해서 여러 번 물어 도착한 식당은 긴 줄을 매달고 있다. 식당 인근의 인파는 모두 대기자란다. 9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종업원의 이야기에 우리는 곧장 포기했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더라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인지, 아니면 인지도 높은 음식을 먹었다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인지는 먹고 나서 가치판단을 해볼 일이지만 그만큼의 인내와 시간이 없는 나는 곧장 포기다.

 맡긴 배낭을 찾기 위해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육면을 먹기로 했다. 현지인들이 붐비는 곳에 한 자리를 배정받고 젊은 종업원에게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소고기와 인대, 내장이 있는 우육면을 꼽아준다. 잠시 후 고기가 가득한 면이 나왔다. 향은 그리 강하지 않고 소고기의 잡내도 없다. 부드러운 소고기와 연골, 인대와 내장을 두 가지 소스에 번갈아 찍어 먹었다. 소스는 주지 않아서 우리가 눈치껏 만들었고 옆 식탁에 있던 절인 야채도 듬뿍 넣어 먹었다. 아내는 한마디 한다. “고기는 괜찮은데 면이 별로야!” 두 그릇에 500위안 우리 돈 2만 원이다. 1만 원에 그릇 가득한 소고기들, 나는 그래도 먹을만 했는데…     

작가의 이전글 에필로그 – 중앙아시아 여행을 마치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