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킬이 씁니다
언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한국의 질문들은 대부분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거치는 교과서들엔 항상 내용 숙지가 되었는지 확인하는 질문 외에도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 하는 심화 질문이 따라붙었다. 개별 의견을 묻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자습서를 확인해 보면 모범 답안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 입시 논술 시험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답안 중 대학원생 조교들이 1차 탈락을 시키고 본선에 진출한 답안이 채점하는 교수님의 책상에 올랐다. 이는 취업 시장에까지 이어진다. '엄격한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 아래서 자라...'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의 성공 사례가 여기저기 떠돈다.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닐 텐데 사람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내 행위의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도록 훈련하기 어려운 구조다.
언어는 정답을 읊기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현재 영어 회화 학원에서 영어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상담해 등록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학원과 커리큘럼을 소개하기 앞서 그들의 동기를 물으면서 시작을 하곤 하는데,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 아니라면 인간에게 그냥이라는 것은 없다. 나는 다시 한번 묻는다. "왜 그냥일까요?" 그제야 사람들은 두 가지 경우로 대답한다. 커리어에 써먹기 위해서, 여행하기 위해서. 전자의 사람들은 공인 인증 시험이나 회사 내 시험을 위한 단기적인 목적을, 후자의 사람들은 인생의 윤택을 추구하는 장기적인 목적으로 학원을 찾는다. 그럼 나는 늘 언어가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
언어는 사소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언어는 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유약한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소통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평생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존 본능이다. 결국 모든 언어가 마찬가지지만 영어 회화 역시 높은 시험 점수를 위해, 취업을 위해, 승진을 위해, 완벽한 문장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펼치거나 여행에서의 컴플레인을 전달하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언어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함이다. 나는 타인과의 연결망 안에서 비로소 살아난다. 인간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나 자라면서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할 줄 알게 되지만, 한 사람의 입 안에서 평생 굴러 다니는 언어는 꾸준히 갈고닦지 않으면 그 유용성을 잃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를 가장 기본적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기술로 여겨 훈련하지 않은 채로 방치한다. 다듬어진 적 없는 날 것의 언어들이 타인에게 오해와 상처를 남겨 종내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속을 어렵게 해도 사람들은 그 이유를 언어가 아닌 곳에서 찾는다. 답답해 죽겠다. 말 한마디면 천냥 빚도 갚을 수 있다.
때문에 언어 능력을 기르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어떻게?
내가 아닌 이와의 연결이 언어 존재의 의미이며 그 이전엔 본인에 대한 해석이 우선한다. 나를 남에게 이해시키고 싶다면, 타인에게 나를 잘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말들을 자주 사용해 다듬는 연습이 필요하다. 언어의 네 가지 영역인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영역이 언어 능력에 기여하지만 조금씩 방식과 정도가 다르다. 이 중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고 생각을 오래 해야 하는 쓰기가 언어 능력을 향상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자신한다.
언어의 궁극적인 목적인 타인과의 연결에는 필연적으로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우선한다. 나라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다양한 생각들을 꺼내 쌓아보는 활동은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 글감으로 함께 글은 쓴 안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고 싶다. 공중에서 분해되는 말들을 신중하게 물질화해 잡아 놓는 것이 글이다. 모두가 가끔 자신이 한 말들과 생각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글쓰기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싫어하는지, 어떨 때 즐겁거나 슬픈지 상기시키는 자신과의 가장 내밀하고 구체적인 소통을 요하는 활동이다.
높은 시험 점수를 위해, 취업을 위해, 승진을 위해, 완벽한 문장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펼치거나 여행에서의 컴플레인을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글쓰기를 통한 나의 정체성과 근본을 공고히 하면 부차적인 것들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언어를 잘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글쓰기임을 말하기 위해 너무 밑바닥까지 훑고 온 듯하다. 일기를 쓰시라, 에세이를 쓰시라! 오늘도 말과 글이라는 무기를 제련하시길! 깊은 성찰로 존재를 단단히 하고 복합적으로 얽힌 타자와의 연결망 안에서 아름다운 존재감을 뽐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