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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스땅스 Jan 16. 2021

점심시간을 사수하라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졌다

회사생활의 낙이라면 바로 점심시간! 동료들과 뭐 먹을지 정하는 재미도 있고, 식사하며 나누는 담소로 오후 업무를 위한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운 좋게도 회사 근처에 공원이 있어 식사 후 친한 동료들과 커피 한 잔을 들고 산책하는 여유로움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점심시간의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졌다.


우리 부서에 새로운 디렉터가 본사에서 부임했다. 한국 생활이 처음이고 직속 상사이니 은근 신경이 쓰였다. 처음 며칠은 다른 부서장들과의 점심 약속으로 맛있게 식사하라며 나갔다. 그리고 부서 업무 파악을 위해 일대일 미팅이 시작되었다. 보통 오전에 각자 바쁜 업무를 처리하고 11시쯤 자리를 하면 어느새 훌쩍 점심시간이 되었다.  부서원들이야 점심시간을 칼같이 지키니 둘이서 얘기하다 나와보면 휑하니 다 나가고 없다. 식사는 해야 하니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뭐 먹으러 갈까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


"한국 음식도 상관없고 멀리 안 가고 간단히 빨리 먹을 수 있는 거면 좋겠어요"


회사 근처 단골 분식집의 김밥이 생각나긴 했지만 처음으로 단둘이 하는 식사라 제안하기가 그랬다. 마음 같아서야 오전 내내 떠들어서 매콤한 국물이 먹고 싶었지만 그녀가 어떨지 망설여졌다.


"가까운 데서, 간단히 빨리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샌드위치 어때요? 근처에 유명한 프랑스 빵집 있는데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에요"


"좋아요. 그리 멀지 않죠? 그리고 가면서 아까 얘기하던 거 다시 설명해 줄래요?"


오잉,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그녀는 조금 전까지 사무실에서 하던 업무 얘기를 다시 꺼내는 거다. 한국에만 있는 세금이야기여서 설명하는 내내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는데 더 자세히 알고 싶었나 보다. 뭐 어쩌겠나? 하라면 해야지.




빵집에 도착해서 주문할 때를 제외하고 먹는 내내 우리는 세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설명이 끝나니 냅킨을 꺼내 그녀가 이해한 게 맞는지 적어가며 확인까지 했다. 맙소사! 샌드위치를 먹는데 이건 무슨 맛인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얼굴이 벌게지며 행여나 잘못 전달할까 봐 머리를 사정없이 써야만 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날 이후 나의 점심시간 대부분은 그녀와 업무 얘기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분식집과 김 선생 김밥집을 자주 갔고 그녀는 늘 노트와 펜을 꺼내 메모했다.


나의 소중한 점심시간이 업무 연장으로 이어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원들은 그녀의 성향을 이미 파악해서 점심시간이 되면 묻지도 않고 다들 나갔다. 함께 일하면서 한두 번은 식사 하자 말할 법도 한데 말이다. 상사라는 이유로 그녀의 스타일에 맞추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은 엄연한 나만의 시간인데 말이다. 결정적으로 화가 난 건 점심시간 20~30분 전이면 계획이라도 한 듯 어김없이 내 자리로 오는 거다. 그것도 간단한 건이 아닌 설명을 하기에 시간이 필요한 것들로 말이다.


지금 시간 되니? 어제 처리한 이 건에 대해 설명 좀 해 줄래?"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 20분 전이다. 설명을 하기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당장 호기심을 해소하고픈 것 같았다. 나의 점심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연스레 답했다.


" 미안한데, 점심 전에 마무리해야 할 게 있어서, 이따 식사 후에 2시쯤 어떨까?"


"어 그래, 무슨 일인데? "


"매장에서 문의한 게 있는데 답해 줘야 해, 그리고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고"


"오케이. 그럼 이따 2시에 내 사무실에서 봐"


썩 마음에 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약속이 있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그 후로 업무의 연장인 점심시간이 지속될 때도 많았지만 나의 점심시간 사수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일하는 것도 피곤한데 왜 이리 신경 쓸게 많았던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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