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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Feb 08. 2024

권리 vs 배려


"고객님께서 예약하신 차량 내부 세차에 대한 문의가 있어 부득이하게 해당 차량 이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환불처리해 드릴테니 다른 차량으로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차가 없다. 굳이 "소유"의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기면 고민해 보게 된다. 내 명의로 된 차의 소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내일은 설 연휴의 시작이자, 아버지의 49제가 있는 날이다. 9시까지는 와 달라는 스님의 말씀에 이른 새벽 출발하도록 차를 예약해 뒀다. 대중교통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초행길에 모르는 노선의 버스는 길치인 내게 위험도가 있어 포기했다. 지방강의를 가더라도 기차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행기는 연착이 자주 발생한다. 버스는 길이 막힐 수 있다. 더군나다 출발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광역버스의 경우 배차간격을 어느정도 알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기차를 타고 강의를 다닌다. 


하지만 이 경우엔 기차가 없다. 새벽이고 연휴라 10~30분이라는 배차 간격 역시 신뢰가 가질 않는다. 그냥 연휴라 가족을 만나는 것이 아닌 시간 약속 있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던가. 평생에 단 한번 뿐인 날이다.(내게 아버지는 한 분 뿐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예약해 둔 차에 문제가 생겼단다. 처음에는 미리 문제를 파악해 대처해 준 것이란 생각에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세차 시간이 너무 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부가 얼마나 지저분하길래 세차를 하루 온 종일 해야 하는 건가요?"


잠시 머뭇거리던 상담원이 입을 뗐다.


"그게.. 담배냄새가 심하다고 하시네요."


아...

담배냄새...

상황을 정리해 보면 세차를 요구한 A 이전에 이 차를 이용한 B라는 사람이 문제였던 거다. 그가 차 안에서 담배만 피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동안 종종 이용했던 익숙한 차를 집과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운 B 덕분에 집근처 주차장이 아닌 택시로 5분 거리의 주차장에서 처음보는 차를 다시 예약하는 수고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다 큰 성인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무에 문제랴. 기호식품이니 그들 돈으로 구입해 그들 건강을 해치며 피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소유차량이 아닌 공유차량이 아니던가. 애초에 차를 이용하는 시점에서 "금연하겠습니다" 버튼을 눌러야 차량 문을 열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걸 누르고도 담배를 피웠다는 것이다. 다음 이용자가 심하다고 할 정도로. 


"하아... 그 사람은 왜... 그랬대요... 아 진짜..."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하아... 그러게요... "

전화기 넘어로 상담원 분의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들렸다. 

짜증이 조금은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아주 조금. 


어쩌면 아버지를 갑작스레 보내고 찾아온 심란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아직 남아 별것아닌 이 상황을 크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상실감과 우울감이 자주 찾아오고 있어 감정이 더 예민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른 차를 이용하면 될텐데... 예민하게 구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상담원의 탓은 아니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지만, 짜증스러운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왜 다들 자기만 생각하는 거지? 왜 서로 배려하지 않는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담을 종료하고는 이 글을 쓰면서 내 생각에 오류가 있음을 찾았다. 





공유차량을 다음 사용자를 위해 깨끗하게 사용하고 반납하는 것은 배려일까?

빌린 것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했으니 어떻게 이용하든 상관없는 권리일까?



우선 "다들"은 아니다. 다음 사람을 위해 세차를 해 두고, 일부러 기름을 넣어두는 이용자들도 많다. 지금은 없어진 기능이지만, 예전에는 각 차량에 전 이용자들이 남긴 댓글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댓글에는 다음 이용자를 위해 해당 차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 주차 위치를 상세히 적어두신 분들도 계셨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을 자처해서 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니 "다들"이란 표현은 비록 생각이라도 잘못된 것이었다. 


과연 지금 이 상황에 "배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표현일까?

B는 차량을 이용하기 전 약속했다. "금연하겠습니다"라는 버튼을 본인 손으로 눌렀으니까. 공유차량에서 금연하는 것은 "배려"가 아닌 "약속"이자 "의무"가 아닐까? 그는 배려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규칙을 지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다 큰 어른이 내 돈으로 산 담배를 내 돈으로 빌린 차 안에서 피는게 뭐가 잘못인데? 난 담배를 필 권리가 있어!" 라고 말이다. 


물론 성인이라면 누구든 담배를 필 권리가 있다. 하지만 피지 않을 권리도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누구든 부자가 될 권리가 있고, 원하는 곳에 갈 권리가 있으며, 먹고 싶은 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 글을 쓸 권리도 있고, 읽을 권리도 있고, 누군가를 사랑할 권리도, 사랑받을 권리도 있다. 맞다. 

하지만 반대로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찬성할 권리가 있으면, 반대할 권리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권리가 있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쓰지도 읽지도 않을 권리도 있다. 



내 권리를 인정받으려면 타인의 권리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내게 권리가 있듯이 누구에게나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종종 내 권리를 주장하다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회식자리에서 누군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타박하기도 하고, 채식주의자들이 고기 먹는 이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물론.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며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반대 입장이라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그들의 반대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B는 약속을 어겼고,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며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그 피해는 다음 이용자 A를 비롯해 그 다음 이용자인 내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는 단지 담배를 피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겠지만, 덕분에 A는 쾌적한 환경에서 운전을 할 권리를 잃게 되었고, 나는 가까운 주차장에서 익숙한 차량을 이용할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씁쓸하고 아쉽고 짜증나는 상황을 겪으며 내 권리를 주장하다 자칫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되뇌였다. 내게 어떤 권리가 있듯이 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적은 없는지, 내 권리를 주장하다가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한 적은 없는지, 주어진 의무는 지키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주장하지는 않았는가를 되짚어 보게 되었다. (당장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있었겠지 나도...) 더불어 앞으로는 서로의 권리에 대해, 배려에 대해, 표현에 대해 더욱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사람 패널티 부과되는 거죠?"


이대로는 너무 불공평했다. 심지어 조금 억울했다. 예약시간 5분전에 집에서 나가면 됐었는데, 15분은 일찍 나가야 할 상황이다. 나의 여유로운 새벽시간 10분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생활반경이 겹치니 앞으로도 B가 이용했던 차량을 내가 이용할 확률도 있었다. 그것도 싫었다. 그를 벌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으리라. 


"...당연하죠!"


잠시 후, 단호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답하는 상담원의 대답이 이어졌다. 어떤 패널티가 부과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여전히 그는 경고조치만 받은 뒤 또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이 서비스를 이용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조금은 안심이 되더라. 그 상담원이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답변이었으리라. 



아무래도 요즘은 자꾸만 시험에 드는 기분이다. 내가 만들어 놓은 평온함 중간중간 외부에서 날아든 돌멩이가 파장을 만든다. 그 파장을 얼만큼 지혜롭게 혹은 현명하게 잠재울 수 있는지를 시험당하는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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