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이 주는 힘
요즘 좋아하는 노래를 알람으로 설정해 두길 잘했다. 깜짝 놀라는 대신 스리슬쩍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잠에서 깨면 반쯤 뜬 눈으로 옆에 놓아둔 텀블러를 찾아 집어들고 물을 한모금 마신다. 몸을 일으키지도 않은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텀블러 옆 유산균 병을 집어들어 한 알 꺼내 다시 한번 물과 함께 삼킨다. 알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감을 느낄 때쯤 다시 한 모금을 마신다. 정신이 조금 들면 의식적으로 다시 한 모금을 마신다.
여전히 몸은 이불 속에 있으면서 옆에 놓아둔 일기장을 꺼내 아침 일기를 쓴다.
'졸려'
'더 잘까'
'일어나야하는데'
'멍하다'
'정신없어'
떠오르는 말들을 두서없이 적어내려간다. 그러다보면 하고싶은 일이나 해야할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어떤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 그것들을 또 쓴다. 앞뒤 맥락없이 그냥 쓴다. 괴발새발 글자인지 그림인지 알 수 없는 형태의 글들이 일기장 한페이지를 채워나갈 때 쯤이면 조금 정신이 든다.
일기를 쓰고 몸을 일으키면서 기지개를 켜고, 그대로 몸을 늘리는 스트레칭을 한번 하고는 이불을 정리하고 비적비적 걸어나온다. 물을 끓여 차를 우리고 사과를 씻어 아침을 준비한다. 차를 마시면서 한 페이지정도의 책을 읽고, 오늘 할 일들을 목록으로 적어본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면 그것을 맨 위에 쓰고, 일상에서 할 일들도 생각나는대로 적는다.
아침일기, 영양제 챙겨먹기, 물 1리터 이상 마시기, 산책하기, 책 읽고 밴드에 인증하기, 블로그 글쓰기 등
"아니, 이런걸 목록으로 작성해 가며 할 일이야?"
라고 말할법할 일들을 적어내려간다. 그리고 이미 끝낸 아침일기와 영양제, 책읽기에 완료표시를 한다.
기분좋게 늘어져 기지개를 켜는 단지(동거 중인 15살 고양님)가 보이면 슬금슬금 다가가 포동하고 보드라운 뱃살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부비적 거린다. 몽글몽글한 행복감이 올라올 때쯤, 그대로 몸을 조금 일으켜 플랭크 자세를 잡는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본다. 그리고 할 일 목록에서 운동에 완료표시를 한다.
남은 차를 들고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해 본다. 마음이 끌리는 음악이 있거나 가이드 영상이 있다면 틀어놓지만 내키지 않을 때는 그냥 앉아만 있는다. 머릿속에 아직도 흘려보내지 못한 생각들이 부유물처럼 떠다닌다. 그 생각들 중 하나에 마음을 주게되면 이 녀석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그냥 두었다. 한참을 빠졌다가도 '아!' 하는 순각의 알아차림에 다시 흘려보내는 것을 연습 중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그대로 두는 것. '아, 내가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기만 하는 것. 그런데 이게 참 안된다. 그럴 때는 그저 폐가 터지도록 호흡을 마시고 배가 쪼그라들도록 호흡을 내뱉는다. 그렇게 5번 정도 하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다. 머릿속도 마음 속도. 짧게는 5분, 길어봐야 15분을 넘기지 않는 이 시간을 보내고 나서 할일 목록의 명상에 완료 표시를 한다.
이제 출근하자!
오늘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 적립 완료!
과거의 나라면 '이런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고 생각했을 작고 소소한 행동들.
소소하다 못해 하찮게도 여겨질법한 작은 행동들.
그 행동들이 주는 찰나의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들이 모이니 한번에 몰아서 해 냈던 성취감 못지 않은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하기까지 마음을 먹는 일이나 행동을 시작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
1시간 운동하기 보다는 1분 플랭크하기가
1시간 명상하기 보다는 깊은 호흡 5번 내뱉기가
1권 완독하기 보다는 한 페이지 읽기가
주는 성취감이 필요한 때가 있다.
복근 만들기나 바디프로필 찍기 같은 목표도
1일 1독 혹은 1년에 1000권 읽기 같은 목표도
어떤 목표든 일정 기간동안 필요한 행동의 꾸준한 반복이 필요하다.
2리터 물병을 드는 일이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2리터 물병을 오래 들고 서 있기는 힘들다. 만약 팔 근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먼저 근력부터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근력을 키우는 가장 처음이 200ml 물컵을 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00ml도 무겁다면 100ml로, 그것도 무겁다면 10ml, 그것도 무겁다면 우선은 물컵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매일 물컵을 바라보다 보면 '한번 들어볼까?'라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그럴 때 한번 들어보면 된다. 이내 내려놓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싶어 물을 따라 볼 수도 있겠지. 다음날도 똑같이 들어볼 수 있을 거고 쳐다만 볼 수도 있다. 혹은 잊어버릴 수도 있을 거다. 괜찮다.(적어도 경험상으로는 괜찮더라.) 중요한 것은 "했다"는 것이다. 물컵을 바라보는 것이든, 들어올리는 것이든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다시 한번 했다"는 것.
그러면 그때마다 작은 성취감들이 적립된다. 그 성취감이 적립되는 순간에 집중해 보면 불안이나 두려움들이 조금은 희석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가볍고 하찮은 일을 해 보는 거다. 그 작고 하찮은 행동들이 꽤나 괜찮은 결과를 가져온다. 가볍게 시작하되 평생 확실한 내것이 될 행동들. 처음에는 하나였던 것이 여러개가 될 수도 있고, 짧은 시간이었던 것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이라 부르고 매일 나에게 소확성을 줄 수 있는 행동들을 찾아 적립을 늘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