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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Jan 14. 2024

미술사로 석사 논문 쓰기 - 1

있어 보이는 주제로 정하면 고생한다

나는 불교회화로 학위 논문을 쓰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미술사학계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차고 넘치므로 자랑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석사학위는 이 사람이 해당 전공 분야에서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연구자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자격증 같은 것이므로 자랑할만한 것이 못된다. 앞선 글에서 다루었지만 이것이 취업의 보증수표도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석사라면 적어도 졸업 논문의 주제에 한해서는 제법 공부를 열심히 했고, 관련 지식은 많겠구나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같은 석사학위 보유자라도 논문마다 수준 차는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타인의 논문을 가지고 그 수준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본인 역시 이제 갓 석사를 딴 왕초보 연구자이므로 공개적으로 누구의 논문을 평가할 위치가 못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내가 학위 논문을 쓰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그를 극복한 경험담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래서 석사 논문을 쓰려는 대학원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졸업 논문은 조선후기 장엄신 괘불탱을 주제로 썼다. 일반적인 불화 논문과 달리 장엄신 괘불(탱)을 불신관(부처의 몸에 대한 사고)의 관점에서 다루어 보았다. 괘불은 조선 불화 중에서도 가장 늦게 연구가 시작된 장르이다. 크기가 너무 거대하여 조사는 물론이고 감상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영산재나 수륙재 같이 특별한 야외법회를 진행할 경우에만 괘불을 내걸며, 평상시에는 괘불함에 넣어서 보관한다(사진 1). 괘불을 옮기고 펼치는데도 수십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타 불화에 비해 연구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으며, 문화재 조사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구축된 2000년대 이후에야 조사가 본격화되었다. 괘불의 연구도 그 이후로 활성화되었다.


(사진 1) 남양주 보광사에서 새롭게 제작한 13m 높이의 괘불(출처 : 한국경제TV)


나는 석사 1학기때 처음 이 장엄신 괘불이라는 장르로 졸업논문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공부를 해보니 읽어야 할 선행연구(앞서 발표된 연구)가 산더미 같았다. 작품 자체의 연구는 차치하고 선행연구만 정리하기도 벅찼다. 일반적인 괘불과 다르게 보살 형태의 특이한 본존이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일 것이다(사진 2). 그 논문들의 저자들을 살펴보니 하나 같이 어느 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님이거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오랜 경력의 불교미술 연구자들이었다.

 

(사진2) [일반적인 괘불과 장엄신 괘불의 비교] - 좌측 : 영천 은해사 괘불(1750년),  우측 : 양산 통도사 괘불(1767년)


선행연구는 빈틈이 없어 보였다. 특이한 도상과 그것이 채택된 (신앙적) 배경, 양식적인 특징과 제작을 담당한 불화승들, 제작에 사용된 안료까지. 모든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기에 연구 경험 없는 내가 깃발을 꽂을 자리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선행연구만 간신히 정리하여 발표를 했고, 다음학기에는 다른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지도교수님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시며, 할 수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당시 교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장엄신 괘불에 미련이 남아있었던 나는 교수님을 믿고 연구를 계속 진행하였다. 연구라기보다는 교수님이 알려주신 관점을 이해하고자 그 방면의 공부를 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2학기가 되어서도 내 연구는 진척이 없었다. 다른 동기생이나 선배들의 연구는 진보하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선행연구가 없는 주제를 골랐다는 것이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으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대체로 도상보다는 양식 연구에 집중하였다. 시대상과 사상(신앙)의 깊은 이해가 필요한 도상에 비해, 양식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 집중하므로 논지를 펴기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아무튼 나만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으니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쉬운 주제를 정했다면 연구의 진척도 빠르고 수월하게 졸업할 텐데 어려운 주제를 선정한 탓에 출구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양새였다. 도끼로 내 발등을 찍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를 원망하랴.

빨리 졸업할 수 있는 주제를 골라야지. 당신 미련 곰탱이 아니야?



3학기가 되어서도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관련된 불화 논문은 어지간히 보았고, 지도교수님이 알려주신 힌트도 이래저래 많이 공부했으나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논문과 연결 짓기 어려웠다. 연구가 자꾸 정체되니 급기야는 장엄신 괘불이 지겨워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연인들이 처음에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애정이 식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나 할까. 웬만큼 알고 나니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었고, 이때부터 진지하게 다른 주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른 장르의 불교미술 논문을 이것저것 읽어보기 시작했다.


주로 읽었던 논문은 불상 연구였다. 석굴암과 같은 고대 불상 논문은 신앙(사상)과 양식 연구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으나, 역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고려나 조선 불상을 연구하자니 양식 위주의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어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한 가지 주목한 작품이 구례 화엄사 대웅전의 삼신불상이었다. 내가 화엄사의 삼신불상을 주목했던 이유는 양식이나 도상이 아니었다. 대웅전(大雄殿)으로 걸려있는 건물의 편액 때문이었다(사진 3).


(사진3) 화엄사 대웅전의 삼신불상과 대웅전 편액, 둘은 신앙적으로 모순된다.


'대웅'은 위대한 영웅(Mahavira)이라는 뜻으로,『법화경』에 등장하는 석가모니불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대웅전이라는 이름은 법화 신앙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대웅전에는 응당 석가모니불상을 모셔야한다. 그런데 삼신불을 모시고 있으니 이런 모순이 있을 수 있나? 삼신불은 『화엄경』과 관련이 깊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석가모니불은 정각을 이룬 뒤 삼매에 들어 비로자나불(노사나불)과 하나 되며, 이 상태에서 광명(光明)으로 설법한다. 따라서 삼신불을 모신 법당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는 편액을 내거는 것이 맞다(사진 4).


(사진4) 통도사 대광명전과 편액.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상과 삼신불 탱화를 봉안했다.(좌측과 중앙 사진은 본인 촬영, 우측 사진은 문화유산포털)


글이 생각보다 길어지므로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편에 작성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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