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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Feb 04. 2024

미술 감상이 어려운 이유

인문학의 결정체, 미술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하였지만, 반대급부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친절과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다. 오랜 취업난에 청년들은 구직을 포기하고, 가족 같다던 직장은 전쟁터로 돌변한지 오래다.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강박이 운전 습관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교통사고 사망률은 전세계 상위권이며(다행히 1위는 면했다), 자살률은 전세계 1위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잠시나마 TV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었던 것도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다는 위기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상황이 악화되어, 출산률은 1% 아래로 내려갔고, 분노에 찬 이들이 벌이는 묻지마 칼부림 사고까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한편, 어느새부턴가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느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젊은 층들의 허세 때문이라 분석하고, 또 어떤 이는 한 국가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겪는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한적한 공간에서 미술을 감상하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일부 도슨트들도 유명세를 얻어 화제가 되었다. 봉사활동 정도로 취급되던 도슨트라는 직종이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슨트들의 수요가 늘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많은 관람객들이 작품의 해석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봐도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니 전문가의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어떤 이가 도슨트 없이 혼자서 미술을 감상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호기롭게 미술사 책을 샀다고 하자. 그래도 어지간한 열정이 아니고서야 꾸준히 읽기는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사 책은 대개 선사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방대한 분량을 다룬다. 두께도 상당하다. 본인도 한국미술사(불교미술) 전공이라 서양미술사와는 친하지 않다. 가끔씩 서양미술사 책을 완독하려 도전했지만 그리스ㆍ로마 미술은 커녕 이집트 미술까지만 읽고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서양미술에 흥미가 없는 것도 원인일 것이다). 독서에 흥미가 없는 이들은 미술은 가슴으로 느끼는거라는 주장을 하며 눈으로 감상하는 것에 만족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을 이해하려면 어느정도의 미술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다만 이 미술사적 지식이라는게 꽤나 복잡해서 문제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인상파, 입체파 등같이 특정 시대에 유행한 양식 또는 사조만 공부하면 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모든 작품은 예술가의 생각을 담고 있으며, 모든 예술가는 각자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불세출의 예술가라 할지라도, 시대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현 시대의 사람들은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공산권 국가를 제외하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 국가에 살고 있다. 다소 극단적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일지라도 다른 이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재산 등의)피해만 없다면 허용된다. 현대미술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현대미술품 중에는 과연 미술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작품이 많다. 예를들자면, 공장에서 만든 변기에 서명만 하여 출품한 뒤샹의 '샘', 그림인지 어린애가 물감으로 장난친 것인지 알 수 없는 액션페인팅, 벽에 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여놓은 '코미디언' 등이 있다. 이들이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자유를 존중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좌측 : 뒤샹의 '샘', 우측 :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



한편, 중세 유럽은 이성과 합리성이 중시되던 고대와 달리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했다. 교황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왕보다 높은 권위를 누렸으며, 이를 웅변하듯 교회의 첨탑은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아있다. 당시 회화는 대부분 종교화로, 사람들을 감화시켜 기독교에 귀의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ㆍ로마시대의 미술에 비하면 등장 인물의 묘사는 다소 사실성이 떨어지나, 이는 종교 미술의 특성성 당연한 것이다. 관념적인 신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측면보다는 상징성, 성스러움이 중시되니 말이다.


좌측 사진 : 프랑스 보베 대성당, 우측 사진 : 마에스트로 디 트레사, <눈이 큰 성모>, 1260년경, 목판에 템페라, 47x67cm, 두오모오페라박물관



그러나 무엇이든 정점을 찍으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십자군 전쟁이 연이어 실패하며 교황과 교회의 권위는 차츰 떨어졌다. 교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이 단행되었고, 반대급부로 왕권은 강화되며 중앙집권체제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미술에서도 확인된다. 흔히 르네상스라 불리우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이전까지 등한시 되었던 인간이 재발견되었다. 인간을 주제로 하는 초상화가 그려진 것은 물론이고 종교화에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가톨릭 대신 신교가 성행한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종교화 대신 풍경화 또는 풍속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종교화지만 르네상스에 접어들면 사실적인 표현이 활용되기 시작한다. 라파엘로, <성모자와 세례 요한>, 목판에 유화, 38.9 x 32.9cm, 내셔널갤러리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우리 역사상 중세로 분류되는 고려는 국초부터 불교를 숭상하였으며 덕이 높은 고승들은 왕사와 국사로 임명될만큼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불화들이 세밀하고 화려한 자태로 칭송받는 배경에는 그만큼 솜씨좋은 일류 화가들이 정성을 다해 그렸기 때문이다. 불화 제작을 후원한 이들의 상당수가 왕실 내지 귀족 계층이어서 금가루와 비단 같은 고급 재료를 아낌없이 활용할 수 있었던 까닭도 있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비단에 채색, 고려 14세기, 160.2 x 86.0cm, 일본 아시카가 소장




반면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은 근세로 분류된다. 조선이 세워지자 불교 미술 대신 사대부의 취향에 맞는 서화(書畵)로 미술의 흐름이 옮겨갔다. 회화에서는 불교적 모티프 대신 웅장한 산수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일대기 같은 소재가 사랑받았다. 그것이 성리학적 이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안견, <몽유도원도>, 비단에 수묵담채, 38.7 x 106.5cm, 1447년, 덴리대학교 부속도서관


이렇듯 예술가들은 각자가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것이 제작된 시기의 철학과 역사도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상적인 이해에 머물고 말 것이다. 일부 감상자들은 작가의 특징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작가를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작가 역시 그 시대의 자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그래서 미술사 연구는 미술 자체의 공부 외에도 역사와 철학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각 시대의 정치 이념을 말하지만, 미학(美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미술사를 인문학의 꽃이라 부른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어려워서다. 


지금까지 미술 감상을 주제로 장황하게 글을 써보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내용이 산으로 간 것 같아 부끄럽다. 필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고, 석사 수준이라 내공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글은 박사학위 소지자 정도는 되어야 쓸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미술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만큼, 작은 도움이나마 될까 싶어서 써보았다. 그러나 결론은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해야 온전한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는 것이어서, 작은 팁이나마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읽어본 이들에게 실망만 안긴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바이다.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지속적으로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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