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성보박물관은 매년 한점의 괘불(탱)을 전시하고 있다. 작년 10월부터는 서울 청룡사 괘불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 일정은 오는 4월 14일까지다. 사찰에서 큰 행사를 치르지 않는 이상 보기 힘든 대형불화이므로 불교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간 여러차례 괘불 특별전을 관람하러 통도사 박물관을 찾았는데,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어 못내 아쉬웠다. 사찰 관계자가 아닌 이상 박물관 유물의 촬영을 막는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진 조치는 아닌것 같다. 대부분의 국공립 박물관과 일부 사립 박물관에서는 플래쉬를 터뜨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촬영을 허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을 엄금하는 조치는 통도사 성보박물관 뿐만 아니라 다른 사찰의 성보박물관도 마찬가지이며, 그 외에도 대부분의 사찰이 전각 내부에 모셔진 불보살상이나 불화, 단청 등을 찍는 행위를 막고 있다. 나는 불교미술로 논문을 써야했기에 자료확보 차원에서 양질의 사진이 다수 필요했다. 사찰에 답사를 가면 기회를 엿보다 몰래 사진을 찍곤 했는데, 딱 걸려서 된통 혼난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 중에는 불전(佛殿) 내부에 음향시설과 CCTV를 설치하여 사진 찍지 말라고 경고방송을 하는 절도 있었다. 이런 사찰은 주로 경상도 지역에 많은 편이다.
문제는 사찰측에서 왜 이런 조치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있고, 대부분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어 사진 촬영의 욕구가 있다. 많은 사찰에서는 이 문제로 방문객들과 크고 작은 실갱이를 벌인다. 우스개소리로 유명 사찰에서 봉사하는 신도들의 주 업무는 사진 촬영을 막는 일이라고 하니, 은근히 심각한 문제다. 짐작컨대, 사측에서는 예배의 대상인 성보(聖寶, 불교의 성물)를 허가없이 촬영하는 행위가 불경하다 여겨서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사진을 촬영하도록 놔두는 편이 사찰 입장에서 봤을때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요즘 젊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행지나 맛집 사진을 SNS에 업로드한다. 본인이 가보고 좋았던 곳을 자랑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특정 사찰의 불상이나 불화 등의 사진이 널리퍼지면, 자연스럽게 해당 사찰과 불교의 포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번째, 사진 촬영을 막는 것은 불교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불교는 아무래도 역사가 오래된 종교이다보니 젊은 세대에게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일반인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기독교의 목사와 달리 삭발하고 어둡게 물들인 가사를 입고 있는 불교의 승려는 마치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 법당의 현판은 죄다 한자이고 경전도 옛날 책처럼 황색 표지로 되어있어 낯설다. 게다가 절은 대부분 산 속에 있어 도시에서 자란 젊은 층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점도 이러한 이미지에 한 몫한다. 안 그래도 친근감이 없는데 별다른 이유없이 사진 촬영까지 막고 면박을 준다면 우리나라 절은 권위주의에 찌들어있다는 인상을 가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안 그래도 재작년 불교방송(BTN)에서 불교계의 권위자 몇 명이 신도수가 감소하는 문제를 가지고 난상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주된 걱정거리는 청년들이 불교를 외면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 하나하나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오늘날 젊은 신도의 감소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세번째, 사진 촬영을 막는다면 불상(불화)도 만들어서는 안된다. 불상을 제작하는 일 자체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불교도들은 불상을 만들었고 예배도 드려왔다. 이는 더 많은 이들에게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된 것이다. 불상이 있음으로 해서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된 부분도 있었겠지만, 일반인들에게 포교가 더 쉬워진 측면이 크다. 석가모니가 창시한 교단은 본래 수행을 통해 진리를 찾고 그를 통해 해탈을 추구하던 수행자 집단으로 볼 수 있으나, 먹고 살기 바쁜 일반인들에게 수행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종교가 필요했기에 불교는 부처님의 상을 만들어 그들의 요구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상 제작은 부처님의 이미지를 복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으로 불상을 촬영하여 유포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체로 만드는건 되고 사진은 안된다는 법이 있나?
마지막으로, 촬영된 불교문화재의 사진이 많이 돌아다닌다면 도둑 맞을 확률이 줄어든다. 사찰은 인적이 드문 산 속에 있고 별다른 보안 장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문화재 전문 털이범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만일 사찰의 문화재가 강도를 당했더라도 고화질의 사진이 확보되어 있다면 행방을 찾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게다가 해당 문화재의 사진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있다면 강도는 훔친 문화재를 쉽게 팔지 못할 것이다. 설사 도난 당한 문화재를 끝내 못찾는다해도 미리 촬영한 사진을 통해 비슷하게 복원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12월, 괘불을 보러 방문했던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변화가 감지되었다. 박물관 내에서의 사진 촬영이 허용된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만 허용되어 다소 아쉬움은 남지만 반가운 변화였다. 성보박물관의 관장은 대부분 스님들이 맡고 있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비록 스마트폰만 허용하는 반쪽짜리 조처이긴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다른 사찰로도 확산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