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나 고고학, 건축사 등 문화재 관련 연구를 위해서는 답사가 필수이다. 미술사의 경우, 도판이나 디지털 이미지가 큰 도움이 되지만 아직까지는 한계가 존재한다. 육안으로 실물을 접했을때 느낄 수 있는 색감이나 질감 등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문화재가 있는 현장을 살피다보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좋은 근거자료나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생긴다. 그러므로 미술사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
그렇지만 답사를 어렵게 만드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사회에서 자리잡은 직장인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전업 대학원생들의 경우는 금전적인 문제로 답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들어 불교 미술 전공자라면, 사찰 답사를 많이 다녀야한다. 우리나라 사찰의 상당수는 산 속 깊은 곳이나 오지에 있기 때문에 오고가는 교통비가 상당하다. 군 단위 지역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이 많아 자가용 내지 택시를 이용해야 할 경우가 많다. 체력이 좋으면 걸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럴 경우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원래 살던 곳과 답사하려는 사찰의 거리가 상당한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숙박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굶고 다닐 수는 없으니 식당에서 식사를 해야한다. 이 모든게 비용이다.
날씨는 천재지변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먼저 비가 오는 날은 땅이 질척거려 바지와 신발이 더러워지고, 카메라에 물이 들어가 고장날 수 있으므로 답사를 추천하지 않는다. 필자는 올 3월부터 영남과 호남의 유명한 명찰 몇군데를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기후 변화 탓인지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자주, 그것도 많이 왔다. 봄비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퍼붓는 날이 많아 답사를 가지 못했다. 4월 중순이 되자 날씨가 조금 괜찮아져 다시 답사를 기획했으나, 이번에는 중국발 황사가 찾아와 반겨주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답사를 못갔다.
2년전 대학원생들과 구례 천은사로 답사를 간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불전(佛殿)의 앞마당을 포크레인이 사정없이 파헤치고 있었다. 포크레인이 하는 일을 잠시 보고 있자니 하수관 교체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불전인 극락보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사진하나 찍자고 포크레인에게 치여 목숨을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줄 알았으면 답사지를 다른 곳으로 정했을텐데.
인파가 많은 것도 문제다. 사람들이 많으면 제대로 된 사진을 담기 어렵다. 한 두명의 인물은 문화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기준이 되므로 일부러 같이 찍는 경우도 있으나 남대문 시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문화재를 가리는 경우가 많아 촬영이 어려워진다. 이럴 경우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므로 평상시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수학여행 시즌의 불국사나 주말의 고궁은 답사 목적으로 가지 않는게 좋다.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면 사찰에서는 연등을 달아서 마당에 내건다. 문제는 이런 연등들이 법당을 가린다는 것이다. 오늘은 창원에 있는 성주사를 다녀왔는데, 대웅전 앞마당에 달려있는 연등 때문에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제 당분간은 사찰 답사를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