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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May 14. 2024

소금과 돼지가 절에서 하는 일

이번엔 불교 사원에 적용된 화재 방지책을 살펴보도록 하자. 


사찰도 궁궐과 마찬가지로 화재가 빈발하여 많은 손실을 입었다. 건물이 목조인데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만큼 요리와 난방 등으로 불피울 일이 많기 때문이다. 스님들과 대중들이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산불의 여파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최근 있었던 가장 극심한 피해는 2005년 양양 산불로 발생한 낙산사 화재일 것이다. 천년고찰 낙산사가 화마에 휩싸여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살아남은 것은 경내에 있던 석탑과 담장, 일부 현대식 건물 정도였다.


사진1. 화마가 휩쓸고 간 2005년 낙산사의 처참한 광경



이런 이유로 사찰 역시 화재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유서 깊은 명찰들도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어진 것들이다. 전쟁 중에 왜군이 방화를 한 경우가 많지만, 종전 후 애써 복원한 건물이 다시 타버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사찰에서는 화재를 막기 위한 주술적 행위들이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풍습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불교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만큼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크다는 방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먼저 합천 해인사에서는 매년 단오에 맞춰 소금을 묻는 행사를 지내고 있다(사진2). 신문 기사에 의하면, 1695년부터 1871년까지 7차례의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여섯번째 화재가 일어난 1817년에는 장경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이토록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니, 승려들 입장에서는 불길을 잡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진2. 대적광전과 봉황문 앞에 소금을 묻는 모습.


특히 풍수적으로 보았을때 해인사 남쪽 방향에 솟아있는 남산제일봉(1054.3m)은 서울 관악산처럼 불꽃 형세의 화산(火山)이라고 한다. 이곳의 화기(火氣)가 해인사로 날아든다고 판단한 승려들은 1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단오날을 맞이하여 산 정상과 경내 곳곳에 소금을 묻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사진3). 소금은 바닷물을 상징한다. 또한 소금의 짠 맛은 오행(五行)으로 보면 물(水)의 기운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결국 물로 불을 제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행위인 셈이다.


사진3. 해인사 스님들이 남산제일봉 정상에 소금단지를 묻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양산 통도사 역시 여러차례 화재를 겪었다. 통도사는 경내에 큰 계곡이 흐르고 연못도 많아 화재를 막는데 수월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통도사는 여지껏 3차례의 큰 화재를 겪었다. 첫째는 임란 당시 왜군의 방화이며, 둘째는 1713년에 있었던 하로전(영산전 일대) 영역의 화재, 마지막은 1756년 있었던 중로전(대광명전 일대) 영역의 화재이다. 



통도사 역시 매년 단오를 맞아 설법전에서 '용왕재'라는 행사를 치르고 있다(사진4). 용왕은 '토끼와 자라' 이야기에서 자라가 임금으로 섬기는 그 존재이다. 동화에서는 자라와 함께 토끼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는 어리석은 존재이지만, 본래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여겨졌으며 사찰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神衆)의 일원으로 신앙되어왔다.

사진4. 통도사 설법전에서 진행되는 용왕재 행사.


사진5. 신도들에게 소금을 나누어주는 모습과 새 소금단지를 전각에 올리는 모습.



용왕재 행사의 백미는 역시 소금단지를 만들어 봉안하는 행사이다. 작은 항아리에 깨끗한 소금을 담은 뒤, 화마를 물리치는 별도의 진언을 붙여 밀봉한다. 이렇게 만든 여러개의 단지는 화마를 내쫓는 의미에서 모든 전각에 올려두며, 나머지 소금은 진언이 적힌 종이에 담아 신도들에게 나누어준다(사진5). 


사진6. 통도사의 어느 전각에 올려둔 소금단지. 내가 찍은 사진이지만 무슨 건물인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화마를 내쫓는다는 진언은 무엇일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사진7).


吾家有一客 

우리집에 손님 한분이 계시는데

定是海中人 

필시 바다 속 사람이라네

口呑天漲水 

입에는 하늘로 넘칠(만큼 많은) 물을 머금고 있으니

能殺火情神 

능히 불의 정신(불기운)을 죽일 수 있다네



사진7. 소금단지에 붙이는 항화마진언.


소금단지에 뚜껑처럼 붙이는 진언은 대광명전 내부 평방에도 적혀있다. 본래 1759년 대광명전을 재건하고 단청을 하는 과정에서 적었던 것이었는데, 통도사의 모든 전각이 무사하길 기원하며 단오날 행사에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사진8). 목조 건축의 특성상 일단 불이 붙으면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는만큼,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얼핏보면 미신이나 다름없지만 매년 이런 수고를 하는 이유도 어쩌면 모든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소금을 가지고 화재 예방 의식을 치르는 전통 사찰은 여러곳이 있으나, 해인사와 통도사만 대표적으로 소개하였다.

사진8. 통도사 대광명전 내부에 적힌 항화마진언



소금이 아닌 다른 방법을 활용하는 절도 있다. 대표적으로 창원 성주사를 들 수 있는데, 경내에는 한 쌍의 귀여운 돼지 석상이 자리하고 있다. 돼지의 등에는 동전이 많이 올려져 있는데, 일반사람들 눈에는 이게 복돼지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사진9. 창원 성주사 초입에 있는 계단을 올라오면 이렇게 생긴 돼지들이 반겨준다.


이 돼지 석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신대현 선생님이 쓰신『성주사』에 의하면, 짧게는 7~80년, 길게는 100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작품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성주사가 자리한 터는 제비 둥지 형상의 명당이지만, 앞 산이 뱀의 머리처럼 생겼기에 제비가 마음 놓고 알을 낳을 수 없는 형국이라고 한다(사진10). 명당이지만 결정적인 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절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무언가 보완책이 필요했다. 그런 고심의 결과로 세워진 것이 이 돼지 석상이다. 

사진10. 대웅전에서 바라본 성주사 앞 산. 뱀 머리 형상이라는데 내 짧은 안목으로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돼지가 뱀의 천적인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돼지는 피하지방이 두꺼워서 뱀에게 물려도 독으로 고통받지 않으며 뱀을 먹이로 주면 잘먹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돼지는 잡식성이고 뱀만 집요하게 사냥할만큼 대단한 천적은 아닌듯하다. 즉, 돼지와 뱀이 고양이와 쥐같은 관계는 아니다.


다만 돼지(亥)와 뱀(蛇)은 모두 십이지 동물이어서 오행(五行)으로 연결시킬 있다. 오행에서 돼지는 물(水)에 해당하며, 뱀은 불(火)이다. 따라서 돼지가 뱀의 천적이 된다. 결국 성주사에서 돼지 석상을 세운 이유는 화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수 있다. 성주사 곳곳에는 이상하리만큼 연못이 많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사진11). 한편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다소 심기가 불편해보이는(?) 해치 한 쌍이 조각되어있다. 해치 역시 불을 먹는 상상의 동물이므로, 화기 제압 차원에서 설치했을 것이다(사진12).


사진11. 성주사 경내에 조성된 연못들.


사진12. 대웅전 입구에 조각된 해치 한 쌍.


2007년,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왔던 한 어린이가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있던 누런 색의 동물상을 발견했다. 얼굴과 몸은 대체로 누렇고 입 바깥으로는 길쭉한 송곳니가 튀어나와있다(사진13). 그 모습이 영락없는 멧돼지처럼 생겨서인지 극락전 복돼지로 불리며 불국사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이 돼지가 인기를 끌자 불국사 측에서는 아예 극락전 앞마당에 복돼지를 따로 만들어서 만질 수 있게 하였다. 


사진13. 불국사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있는 동물 형상. 멧돼지처럼 생겨서 복돼지로 유명세를 탔다.


이 돼지 모양 조각이 일종의 마케팅 효과로 작용하여 더많은 사람이 불국사를 찾게 만들었으니, 불국사 입장에서는 복돼지가 맞다(관람객 증가=입장료 수입 증가). 그러나 복돼지는 불교와 연관성이 없는 세속적인 가치이므로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이 돼지 조각에 대해서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고 있으나 뚜렷한 증거가 없어 추정에만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성주사처럼 화기 진압용으로 조성한 돼지가 아닐지 조심스레 추정해보지만, 이 역시 뚜렷한 증거가 없어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




사진출처

사진1(좌측).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88856.html

사진1(우측).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050405/8176565/1

사진2~3.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8229

사진4~5.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426

사진6. 본인 촬영

사진7.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232

사진8. 노재학, 『한국 산사의 단청세계』, 미술문화, 2019.

사진9~13. 본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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