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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어둠 Nov 09. 2019

더운 지방에서 휴가는 시원하게! 예르커드 Yercaud

남인도 타밀나두주 예르커드

이전 포스트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인도 타밀나두 주 첸나이에 1년을 혼자 거주했다.


해외에 오래 산다는 것은, 아마 첫 두달은 설렘과 새로움에 가득차 여행을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기간이 세달, 네달...그리고 8달,9달이 되다보면 새롭고 신기했던 집 앞의 길거리는 흔한 풍경이 되어버리고 말이 안통해도 즐거웠던 일상은 점점 내 요구를 100% 충족하지 못한 답답함으로 변해버린다. 


이 때가 바로 인도에 산지 거진 6개월이 다되었을 때, 반 년동안 충분히 인도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알아가고 익숙해지고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하는데 내 앞에 또다른 반 년이 남았다는 막연함과 권태감이 공존할 때였다.


또 이때는 안그래도 더운 첸나이가 45도까지 육박하는 시즌이라 밖에 나가면 내가 오븐에 구워지는 빵인지 찜통에서 삶아지는 만두인지 모르게 된다. 더워도 너무 덥다.

그나마 이 더운 여름에 잘 익은 망고를 냉장고에 두고 차게 해서 먹는 재미로 살고 있었다.


한참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말고 주말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내 머릿속에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지명이 있었다. 예르커드(Yercaud)! 나는 이 이름을 인도에 온지 얼마 안됐을 때 콘서트장에서 만났던 인도사람이 예르커드는 시원해서 피서로 가는 곳이다. 라고 말해줬던 기억이 났다. 나는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짐을 후다닥 챙겨버리고 무작정 코얌베두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사실 모든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버스를 찾는데만 거의 한시간을 소비했고(예르커드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예르커드는 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 산 아래 마을인 살렘Salem으로 먼저 가서 거기서 버스를 다시 타야한다. 그 사실을 몰라 해맸다.) 가까쓰로 탄 버스가 나만 버스비를 2배로 받았다는 것을 내릴 때 쯤 알아버려서 화가 나기도 했다.


버스는 이렇게 생긴 침대버스였다.


버스는 무진장 추웠다. 무슨 에어컨을 이렇게까지 틀어...라고 생각할 만큼 체감온도가 거의 15도 급이었다.

혼자 가는 탓에 카메라 가방이 신경쓰여서 그냥 베고 잤다.

훔쳐갈려면 내 머리를 들어올려야 되는데 그러면 깨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딥슬립을 했다.


깨어나보니 살렘(Salem)에 거의 다왔을 쯤이었고 나는 언제 내리지? 하면서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는데 지도를 확인해보니 살렘을 지나 나가는 고속도로로 진입을 하는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래서 기사한테 가서 왜 안내려주냐고 하니까...


이 차는 코임바토르(Coimbator)로 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가...

물론 살렘 근처를 지나가긴 하지만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서울 안으로 가야하는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분명 표를 사면서 이 버스가 살렘으로 간다고 했는데..표도 2배로 값 받았으면서...

그렇게 한창 실랑이를 하다가 기사는 결국 나를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세워줬다. 하...

결국 히치하이커 느낌으로 로컬버스를 잡아다가 탔다. 이번엔 확실히 두번 물어봤다.

이 버스가 살렘으로 가는 버스냐... 정말 살렘으로 가냐... 맞다고 하고 나는 뒷통수 맞지 않으려고 구글지도를 키고 정말 살렘으로 가는지 지켜봤다.

다행히 고속도로를 지나던 로컬 버스는 문제없이 살렘의 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예르커드로 올라가는 버스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자리가 없어서 뒷자리에 엉덩이를 반쯤만 걸치고 탔다.

살렘은 산 아래 있는 마을이고 예르커드는 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 예르커드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헤어 핀(Hair pin)도로라고 해서 말 그대로 헤어핀처럼 구불구불한 도로를 버스로 가야 한다.

해안도시고 주변에 산이 하나도 없는 첸나이에만 있다가 산을 보니 되게 새로웠다. 하지만 까딱하고 잘못 운전하면 바로 황천길 행이 될 것 같은 도로였다.

확실히 첸나이에 있다가 예르커드로 오니 선선했다.

산 위에 있어서 그런가, 지금 현재 글을 쓰는 이시각 첸나이의 온도는 30도, 예르커드는 22도를 가리키고 있다. 심지어 이곳은 14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첸나이의 28도~45도 기온에 비해서는 아주 서늘한 날씨다. 과연 첸나이 사람들이 피서 오는 곳일만 하다.

큰 호수를 중심으로 마을이 있고 작은 길이 나있는 중간중간 집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주위는 역시 산이다.

산을 조금 오르면 폭포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숙소를 찾는 것이 조금 오래걸렸는데, 숙소가 알고보니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고 구불구불한 산길이어서 도무지 가는 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릭샤꾼에게 지도를 보여주고 찾아갔다.

숙소 뷰는 좋았다. 숙소의 반대쪽은 아예 낭떠러지였고 산맥을 쭉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발을 창문에 올려놓고 노래를 감상했다.

인터넷이 안되서 정말 노래만 들을 수 있었다. 읽을거리라도 가져올껄...


숙소에서 조금 쉬고 씻고 다시 나갔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따밀나두 주지사가 예르커드에 오는 날이라 사람들이 축제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전 주지사(자얄리타)가 죽었을 때 모두의 만류에 불구하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의 장례식 비슷한걸 중심가에서 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 이후에 새로운 주지사를 본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자얄리타의 사진도 곳곳에 붙여져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 새로운 주지사도 자얄리타와 같은 정당에 있는 듯 했다.

이렇게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을 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그들이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소통을 할 수 없었다.

대충 짐작하건대 전통 무용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사진 찍은 것을 보여주니 무척이나 좋아했다.

옆에는 이런 특이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막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유일한 외국인인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듯 했다. 이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었는데, 나의 흰 피부가 부럽다고 말을 했다.

나는 이 때 당시 자의적 반 자연적(?)반 한국에서 쓰던 파운데이션이 안맞을 정도로 살을 태운 상태였고 보통 한국인들보다 엄청나게 피부색이 어두운 편이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내 피부를 하얀 편으로 인식한 듯 했다.

인도는 컬러리즘이 굉장히 심한 나라라는 것을 가끔 까먹고는 한다. 지금 한국은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 태닝 피부를 예쁘게 생각하고 로드샵 화장품 회사에서도 점점 25호~30호 파운데이션도 출시하고 있는데 인도는 아직도 하얀 피부를 선호한다. 이 배경에 있어서 사회적인 배경이 있지만 글이 길어질 듯 해서 나중에 인도생활기를 쓸 때 언젠가 써 보겠다. 구독 ㄱ ㄱ

여튼, 영어와 타밀어 번역기를 돌려가며 간신히 대화를 했는데,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람들이 현 주지사에 대해 굉장히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 주지사인 자얄리타의 별명은 "엄마"였다. 그만큼 타밀나두 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복지 정책을 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아마 현 주지사도 그런 정책을 펼쳐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있는것이 아닌가 싶다.

마을 중심부로 가자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나는 뭔지도 모르는 행렬에 몸을 실었다.

옆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에게 안긴 아이가 있었는데 나를 계속 뚫어져라 보면서 웃음을 짓길래 사진을 찍어줬다. 너무 귀여웠다.

애기야 건강하렴!

화난 남동생을 달래주는 누나도 봤다.

사리는 역시 예쁘다. 

가격도 천차만별, 조금 비싼 돈을 쓰면 어렸을 때 꿈꿔왔던 공주옷을 입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도 세벌정도를 인도에 살면서 샀는데 하나는 가방에 안들어가서 인도인 가정부 아주머니께 드렸고 두벌은 가지고 왔으나 엄마가 카페를 하면서 사리를 가져가서 커튼처럼 쓰고있다. ㅠㅠ....

이날은 역시나 중요한 날인지 사람들이 대체로 평소보다 더 예쁘고 화려한 사리를 걸친 것 같은데 너무 예뻤다. 인도에 간다면 사리 한벌정도는 맞추는 것을 추천한다.

애기들도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

이 분이 내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자 그럼 찍어드리겠다고 하고 찍었다. 보여드리니 웃음을 지어주셨다.


그나저나... 뒤에 백그라운드로 깔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 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 동네의 유일한 외국인이자 사리를 입지 않은 성인 여성이었고 이때문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다녔다. 첸나이에서도 주목을 받고 다녔지만 여기선 더 했다.

연예인이 된 기분이 이런것일까...


(실제로 인도에서 어딜 가든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한국에 돌아와서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에 엄청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연예인 병-)


사람들 사진을 좀 찍다가 배가 고파져서 여느 때와 같게 내 최애 음식, 버터난과 초우멘을 시키고 야무지게 먹었다.

근처에 폭포가 있다고 하길래 오? 이러고 (또)충동적으로 갔다.

한 중간정도 까지는 평지였고 소풍가는 기분, 산림욕 하는 기분, 예쁜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기분좋게 걸어가고 있었으나 중간부터 폭포에 가까워 질수록 점점 가파르지기 시작하면서 등산도 이런 헬등산이 없었다...

나름 이때는 첸나이에 살면서 오전에 할일이 없어서 헬스를 했고 근육도 붙을 때라 그동안 헬스를 한 것을 드디어! 이러면서 씩씩하게 등산길에 올랐다가 내려갈때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예뻐서 산 스카잔을 첸나이에서는 입을 일이 전혀 없었다가 드디어 입을 일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갖고 있으나 추워서 더이상 못입겠다.


생각보다 폭포는 미미했고... 등산을 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며 하산했다.

하산하면서 목마르고 배도 고팠는데 등산길에서 마주친 인도인 가족들이 선뜻 도시락을 건넸고 나는 그들이 싸온 도시락을 손으로 맛있게 먹었다. 감사합니다..


다리가 너무 피곤해서 뭐 다른거 할 체력도 없다 싶어서 물과 과자 등을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저녁을 배달해줄 수 있다고 하길래 저녁은 시켜먹고 근처를 산책하고, 노래 감상하고, TV를 보고,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간만에 인터넷 세계와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밤에는 숙소 옥상에서 산 저 멀리 반짝거리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아침에는 예르커드 시내 중심지까지 걸어갔다. 릭샤를 타고 갈 수 있었지만 18도의 선선한 공기를 마시는건 너무 오랜만이라 걷고 싶었다.

다행히 내 다리는 어제의 산행에서 왠만큼 회복된 상태였다.


다시 헤어핀 도로를 타고 살렘으로 내려가 첸나이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로컬 버스를 탔는데 후회했다. 끔찍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첸나이 시내 안에서도 로컬 버스를 많이 타봤는데 그건 그래도 뭐 오래 타봤자 30분이어서 잘 타고 다녔다.

근데 이건 8시간 30분이었다.


예르커드는 그래도 시원했지, 살렘부터는 첸나이를 방불케 하는 덥고 습한 기온이 이어진다. 그 상태로 창문, 문 없는 버스로 8시간 30분을 이동해야 하는데...

나는 생리중이었다.

그 45도의 덥고 습한 날씨에 축축한 생리대를 하고 에어컨 없는 버스에 사람들이 가득찬 버스...

화장실을 가면 두고 갈까봐 가지도 못했다.


중간에 뛰어내리면 걸어가야한다 라는 생각을 되뇌이며 간신히 첸나이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불이고 뭐고 땀으로 푹 젖은 옷가지를 급하게 벗어 던지고 샤워부터 했다.

샤워가 이렇게 기분좋은 일인지 몰랐을 정도로 에어컨 밑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며 차가운 냉수를 들이키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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