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어둠 Nov 19. 2019

삶과 죽음, 그 어딘가의 축복. "바라나시"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 바라나시. 갠지스 강.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 세가지를 말하라고 하면 대부분 카레! 타지마할! 갠지스강! 이 세가지가 제일 많이 나올 것이다.


인도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바라나시를 여행 일정에 끼워 넣는다.

나도 마찬가지로 인도에 기왕 온 김에 바라나시는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자는 인도를 1년내내 더운 곳으로 생각하겠지만, 인도는 유럽만큼이나 넓은 곳이고 절대로 인도는 이렇다 라고 일반화를 할 수가 없는 곳이다. 

날씨도 마찬가지다.

1월의 바라나시는 남인도에 거주하는 내가 가져온 얇은 옷가지로 버티기엔 무지 추웠다. 


(사진 에세이에 가까운 여행기라 이번 여행기는 설명이 짧습니다. 사진을 감상해주세요.)

첸나이에서 델리로,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휴가가 짧았기에 비행기를 이용해 도착했다.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라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가져온 옷을 어떻게든 껴 입어 다시 밖에 나가 갠지스 강을 둘러보기로 했다.

기억하기로는 뿌자(Pooja)의식이 밤에 이루어진다 했다.

하지만 도무지 어떻게 가는지, 어떤 가트(Ghat, 갠지스 강을 따라서 계단이나 건물들이 있는데 각기 명칭이 다르다)에서 이루어지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어서 무작정 갠지스 강에 가서 (아마도)덤탱이를 쓴 비싼 값으로 보트를 타고 뿌자를 보고싶다 했다.

하지만 갠지스 강에서 바라본 뿌자는 이미 나보다 먼저 온 보트의 행렬로 너무나 멀리서밖에 볼 수 없었다.

뿌자 행사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 있길래 저곳으로 갈 수 없냐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보트 운전수에게 요청했으나 아마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인지 결국엔 가지 못했다.


허망하게 뿌자를 관람한 후 일찍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덕분에 일찍 일어났고 나는 갠지스강의 아침을 보고싶어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 당시 나는 이상하게 세로 사진에 매력을 느껴 세로 사진이 대부분이다.


밖으로 나가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트에 몰려있었다. 역시 날씨가 추워 가트 근처까지는 두꺼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가트 안쪽, 강 바로 앞에서는 그 옷을 탈의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가트는 소문으로 그렇게 신비롭다는 갠지스 강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수선했으며 지저분했다.

냄새도 나는듯 했지만 날씨가 추웠기에 아주 지독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자세히, 그들과 동화되어 강가(Ganga 힌디어로 갠지스는 강가이다)를 거닐다 보니 왜 이곳이 모두가 찾는 유명한 여행지가 되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깨우침과 영감을 얻고 가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축복을 하며, 빨래와 목욕과 세안, 이닦기 등 생활에서 필요한 행위도 하고, 죽으면 화장이 되어 이곳에 뿌려지기도 한다.


바라나시의 보트꾼들. 흥정을 잘 해야 한다.


여인들은 새로 산 사리(Saree)를 갠지스 강물에 담궈 새 옷을 정화하고 축복한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강물에 정화를 한다니 아이러니 하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더럽고 깨끗한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 더러운 물이 가장 깨끗한 성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남자 어른들의 손에 담금질(?)을 당하고 있다.

역시 축복 의식이 아닐까 싶다.

두 여인이 몸을 갠지스 강에 담그며 기도를 하고 있다.

기도를 하는 방향은 해가 뜨는 곳이었다. 

인도 신화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공부하진 않아서 잘 모르겠다.

당연히, 머리도 감는다. 샴푸 물은 그대로 강물에 버려진다.


바라나시의 아침은 쌀쌀함이라는 표현을 넘어서 춥다에 더 가까웠다.

강물도 당연히 무지 차가웠다.

사우나에 가서도 절대로 찬물에 몸을 담구지 않는 나에게는 보기만 해도 추움이 느껴졌다.


전날 밤에 만났던 보트꾼을 다시 만났다.

안타려고 하니 전날 밤보다 엄청나게 싼 가격을 제시했다.

속는셈, 딱히 당일 플랜도 없어서 타기로 했다.


빨래를 하는 모습.

시체를 태우는 가트라 장작이 쌓여져 있고 강가에 재와 꽃이 흩뿌려져 있다.

이곳에 죽어서 태워지고 뿌려지는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들었다.

축복받는 사후를 경험하는 비용을 아마 모든 인도인들이 부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옴, 그리고 만.

옴 문양은 인도에 거주한 기념으로 귀 뒤에 타투로 새겼다.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차례로 셀프 담금(?)을 하고 있다.


어떤 가트는 이렇게 붐비기도 했다.


이를 닦는 사람.

이를 닦는 모습을 보고 보트꾼에게 이도 닦냐고 물어보자 보트꾼은 태연하게 노를 잠시 놓고 강물을 떠다 내 눈앞에서 마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것은 홀리 워터라고 깨끗한 물이라고 했다.


보트에서 내려 다른 가트로 가는 길에 본 소.

다른 가트. 이곳은 조금 한산했다.

가트를 무작정 걷다가 본 강아지.


삶과 가장 가까히 맞닿는 곳이자 죽음의 축복이 함께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라나시였다.

작가의 이전글 더운 지방에서 휴가는 시원하게! 예르커드 Yercau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