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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0번째 브런치 글이라니

쉼 없이 왔다.

by 원성진 화가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 속에, 낮의 분주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녁엔 강의실 형광등 아래 노트북을 열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던 날들이 이어졌다.


도시의 기척이 서서히 식어가는 시간, 부지런함으로 또 한 편의 문장이 태어났고, 그 문장들은 어느새 두 달이라는 시간을 흘러왔다.


2025년 9월 26일의 첫 문장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오늘 그 문장은 딱 백 번째 자리에 섰다.


창작이란 고통도 있지만, 마음을 가볍게 잠식하는 기이한 생명체다. 마조히스트 같이 고통을 즐기는 놈일지도 모른다.


일터에서의 하루는 몸의 에너지를 가져가고, 강의실에서의 배움은 정신의 여백을 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매번 밤의 가장 조용한 틈에서 다시 태어났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의 내부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를 부끄럽지 않게 꺼내놓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 용기들이 모여 백 번의 마디를 만들었다.


이 백 개의 글은 스스로에게서 건져 올린 백 개의 풍경, 백 번의 숨, 백 번의 고요와 환희다.


어떤 글은 기행문의 발자국처럼 또박또박 남았고, 어떤 글은 기고문의 단단한 논리로 완성되었으며, 어떤 글은 수필의 부드러운 등줄기로 흘렀다.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은 그 사이에서 차츰 몸집을 키우며 나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글은 늘 그렇게 나의 생장을 멈추지 않는 나무 같았다.


그 나무 곁에는 무려 1,474명의 사람들이 와서 쉬고 있다. 구독이라는 행위는 사실 가벼운 클릭처럼 보이지만, 존재의 기척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 기척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바람이었고, 햇빛이었고, 보이지 않는 뿌리였다.


누군가는 라이킷이라는 작은 돌멩이를 건네고, 누군가는 댓글이라는 잔잔한 물결을 보태며, 나의 나무를 흔들림 없이 곧게 세워주었다. 그런 응원은 소리 없이 나의 마음속에서 흔적을 만들었다. 따뜻하고 깊은 울림의 흔적.


감사라는 말은 언제나 짧다. 그 짧음이 미안할 정도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말처럼, 감사는 언어의 길이보다는 마음의 방향으로 측정된다. 내가 두 달 동안 흔들림 없이 글을 올려온 일, 그 단단한 성실함은 결국 스스로에게 향한 책임이자 타인에게 향한 선물이었다. 글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일종의 다리이며,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건너는 이와 놓는 이 둘 다 변화한다.


오늘의 백 번째 글은 어떤 의미에서는 도착점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출발의 시각을 알려주는 신호다.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듯 보이지만, 끝에 도달할수록 더 많은 시작들이 파문처럼 번져나간다. 글쓰기는 그런 순환을 품은 행위다.


내가 걸어온 이 짧고 치열한 두 달의 시간은 앞으로의 시즌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나의 글이 그러하듯, 나의 여정도 앞으로 더욱 풍성한 울림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만들려고 한다.


글이 응원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응원 덕분에 살아난다.


여러분들의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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