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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리 Apr 29. 2016

우리 엄마는 여하간, 그렇다

우리 엄마밥

 ※웹진 인문360도에 실린 글입니다 


  지칠 때는 엄마밥을 찾는다. 아무래도 그렇다. 특별한 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서운해 할지 모르겠지만 뭐, 솔직히 그렇다. 간장게장이라든가 제육볶음, 갈비찜 같은 거한 주요리가 우리집 밥상에 오른 적은 별로 없다. 먹고 싶다는 말만 하면 엄마는 기꺼이 앞치마를 두르겠지만, 그런 걸 부탁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엄마 손이 무척이나, 정말로 무척이나 크기 때문이다. 자칫 일주일 내내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엄마밥을 사랑한대도 그건 좀 곤란한 일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나는, 엄마가 제대로 1인분을 만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마, 제발 조금만 해달라구요. 남는 건 싫다니까”라고 읍소해보아도 이미 그녀가 부엌에 강림한 이상, 내 말은 싱크대 저 밑 하수구 어딘가로 처박히고 만다. 어쩌다 웬일로 식탁에 1인분이 놓일 때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거짓은 금세 들통나게 마련이다. 어딘가에 남은 음식이 포장돼 있다. 반드시 그렇다. 누군가에게 줄 선물 혹은 나중에 먹을 양식으로써 새초롬하게.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네 엄마(이일화)가 음식을 푸짐히 만들어 산처럼 쌓아놓는 걸 보며 여러 번 웃었다. ‘어디 한 번 우리집에 와보시지, 여긴 일화 자네가 감히 넘볼 수 없는 큰손계의 왕언니 박 여사가 있다네!’ 나는 입이 근질거렸다.


 거한 주요리 뿐 아니다. 나는 엄마가 외국의 향취로 물씬한 소스나 재료를 쓰는 일도 본 적이 없다.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말하자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그런 요리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엄마의 밥상은 언제나 풍요롭다. 갓 무친 나물 반찬이 오르고, 마른 반찬과 생선 그리고 맑은 국이 놓인다. 무엇보다 밥의 윤기와 고슬고슬함이 중요한데, 까다로운 식구들의 입맛에 맞춰 엄마는 늘 압력밥솥으로 밥을 짓는다. 아직 요리의 도(道)를 모르는 내게 밥하는 엄마의 뒷모습은 언제봐도 경이롭다. 도마 위에서 꺽둑꺽둑 칼질을 하다, 왼쪽으로 빙그르르 돌아 국의 간을 본다.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나물을 무치는 그 무심한 뒷모습. 그 뒷모습에 얹혀 나는 지금껏 위장을 데워왔다. 일과 사람과 나의 욕심과 타인의 욕망에 시달리다 쓰러지기 직전인 나의 하루들을 보듬어 안아준 것은 늘 꺽둑꺽둑, 단단한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고약한 딸이라 종종 특별한 주문도 한다. 떡볶이라든가 김치전, 닭백숙, 잡채 같은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문자를 보낸다. 절대로 주저하지 않는다. “엄마 바빠? 우리 떡볶이 먹으면 안 될까?” 말로는 ‘우리’라고 하지만, 엄마가 먹고 싶다고 한 적은 없으니 실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럼 언제나 뚝딱. 엄마의 스케줄은 온데간데없고 자식들을 위한 그릇만이 남는다.

우리 엄마의 소박한, 반찬. 


 그토록 많은 날들을 엄마밥으로 버텨왔는데 정작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언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는 슬쩍 물어보았다. “엄마, 엄마는 뭐 좋아해?” 특별한 게 없다던 엄마는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나물, 나물 무침.” 질문을 하나 더 했다. “그러면 엄마도, 엄마밥이 그립지 않아?”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였기에 나는 최대한 명랑하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저 짧은 문장의 중간쯤에서 눈물이 나고 말았다. 엄마도 울컥했다. “그립지, 그럼.”

 그러더니 엄마는 뜬금없이 자기 자랑을 했다. 시집 오기 전까지 요리를 배운 적이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그냥 외할머니 음식 맛을 떠올리며 요리했을 뿐인데 그게 맛있었다, 대충 그런 얘기였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 전교 1등했다는 말이네요. 엄마를 놀리려고 물어봤다. “그럼 할머니한테 한 번도 레시피를 물어본 적이 없다고?”

 “한 번 있지. 신혼 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잖니 내가. 하루는 시금치를 사오셨더라고. 맛있게 한다는 게, 내가 그걸 기름에 무친 거야. 죽탱이가 된 거 있지. 이걸 어쩌나, 냅다 슈퍼로 달려가서 시금치를 새로 산 다음에 공중전화에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 엄마가 웃으면서 그러더라고. ‘아가, 시금치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치다가 소금을 뿌려야 해.’ 그렇게 했지. 정말 맛있더라. 나물 무침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 맛있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딸.”

 그리고 한 마디.

 “외할머니도, 손이 컸어.”

 할머니가 시집간 딸에게 ‘아가’라 불렀단 사실도 웃기고, 헐레벌떡 공중전화로 달려갔을 엄마 모습도 귀여워 나는 스멀스멀 웃었다.  



 할머니의 큰손에 머물다 엄마 손으로 넘어온 야무진 음식, 나물 반찬을 삼키며 나는 자랐다. 노상 바깥에서 바깥 사람들과 온갖 화려한 음식을 먹지만, 지칠 때면 집으로 기어들어온다. 페이스북에 올리기엔 소박한 엄마밥을 먹는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짠 나물과 멸치볶음과 조용한 된장국만이 나를 구원한다. 심심하고 담백하고 평화롭다. 엄마가 좋아하는 엄마밥은 꼭 엄마를 닮았다. 우리 엄마는, 여하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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