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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리 May 29. 2020

실패할 확률에 마음을 둔다

모든 것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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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얘기다. 월드컵 독일전을 지켜보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보면 꼭 지더라’ 징크스가 있어서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 이후 내가 봤던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은 패배했다.


2018년 월드컵도 그랬다. 내가 본 스웨덴전멕시코전에서 우리는 졌다. 독일전이 시작되기 전, 갈등이 시작됐다. ‘내가 보면 또 질 텐데…. ’ 고민 끝에 경기를 보기로 했다. ‘어차피 꼴등인데 져도 괜찮잖아? 내 탓 아니잖아?’ 맥주 한 캔을 땄다. 개꿀잼이었다. 경기 종료 직전 터진 두 골! 소리를 질렀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데 또 다른 기쁨이 찾아들었다.


징크스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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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만 5800분의 1처럼 낮은 확률(흑인 청소년이 NBA에 입성할 확률)에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을 가리켜 ‘기저율의 무시’라고 한다. 꿈을 꾸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에세이 『평온의 기술』에서 강준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결코 예외가 아니다’는 챕터에서다. ‘왜 돈 벌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만 들리지?’라는 제목의 글에선 이렇게 쓴다. “돈을 잃은 패자는 말이 없다. 이들의 경험이 더 보편적인 것임에도 승자들만 활개 치니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 뻔하지 않은가.”


곳곳에 널린 것은 실패인데 들리는 이야기는 대부분 성공담이다. 아니, 성공담이어야 팔린다. 실패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13만 5800명 중 뽑힐 단 한 명이 나일 것만 같다. 나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13만 5799명 속에 있을 확률이 높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보기만 하면 지는 이상한 현상’은 징크스가 아니라 평범한 일이겠구나. 세상에는 수많은 선수가 있고 국가대표들의 실력은 출중하다. 그러니 우리 선수가 1등 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 패배하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이는 게 당연하잖아.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대개,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

모든 것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여러모로 평범한 내가 ‘모든 것에 실패했단 생각이 들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리광 혹은 오만으로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살아가는 일이 그렇던가. 눈에 보이는 수치나 증명 가능한 자료로 채워지던가 말이다.


대부분의 날들에 나는 내가 창피하다. 부끄럽다. 이불킥 할 힘조차 없고 그 이후를 감당하는 건 더 싫다. 이불을 걷어차는 일은 많은 먼지를 부른다. 곤란한 일이다. 오늘의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눕는 거다. 다음날 구내식당 메뉴를 떠올리고 내일의 커피를 고민하며.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날에는 툭, 쪼그라든 문장 하나가 기어이 가슴에 박히고 만다. '아무래도 나, 모든 것에 실패한 것만 같아.'


그런 문장이 박히거나 말거나 빡빡한 내일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공들인 기사를 내보내기 전 수십 번 검토한다. 댓글은 웬만하면 다 찾아 읽는다. 부족했던 부분을 지적해주는 분들이 간혹 있어서다. 문제는 이게 매우 진 빠지는 일이란 거다. 많을 때는 수백 개를 봐야 하는데 ‘나를 나아가게 하는 비판적 시각이 담긴 댓글’을 찾으려면 대응할 가치가 없는 비난도 함께 봐야 한다. 힘이 빠진다. 아, 칭찬은 물론 힘이 됩니다 독자님들.


소중한 밥벌이니까 그렇다 치자. 다른 일에서도 나는 이 모양이다. 새로운 도전에는 지나치게 망설인다. 얼리어답터는 다음 생에도 안 될 일이다. 남들이 두드릴 대로 두드려서 맨질 맨질 빵꾸 나게 생긴 돌다리를 또 두드린다. 그것도 모자라 친구들한테도 물어본다. ‘저 돌다리 빵꾸 안 나겠지? 응? 야 잘 좀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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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나는 왜 이러고 사는 것일까. 아주 많이 지쳤던 최근의 어느 날, 이유를 알게 됐다.


실패하기 싫어서였다. 1등 따위 됐고요, 꼴등이 쪽팔렸다. 별 대단치 않은 일들을 벌리면서도 성공할 확률을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이건 잘 될까? 잘 되어야 하는데. 쪽팔리기만 하면 어떡하지?’ 작은 실수와 작은 실패로 점철된 하루하루가 사실은 인생 그 자체라는 걸 알면서도. 된통 쪽팔렸다 해도 한 번쯤 웃었다면 괜찮은 하루라는 것을 그래, 잘 알면서도.


그런데 말이다. 뭘 하든 실패할 확률이 언제나 항상 훨씬 높기 때문에, 그렇다면,


-어차피 질 것 같은데 다 꺼지라고 하고 그냥 신나게 내 맘대로 해보자. 다 비켜-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것 아닐까. 2018년 월드컵에서 독일과 경기를 펼치던 우리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

실패할 확률에 마음을 둔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인생을 가장 강렬하게 긍정하는 태도 같다.


저 문장을 소리내 읽어볼수록 짠하고 괜히 눈물이 나려고 하지만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실패할 확률에 마음을 둔다.

그런 후에는, 그냥 한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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