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인구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사회 과목 공부를 하는데 그날의 주제가 '인구'였다. 백과사전 전집(부끄럽다)에서 '맬서스의 덫'에 대해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유명한 말 있잖아.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것도 문제겠구나. 인구 문제를 어쩌면 좋지. 꽤 큰 지적 충격이었는지 요즘도 저출산 기사를 볼 때마다 그때 생각을 하며 픽 웃는다. '사람이 많아서 문제인 줄 알았는데 세상 참 알 수 없네.'
그러다 지난해 중국 기사를 쓰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중국, 하면 떠오르는 게 '인해전술' 아닌가. 사람이 그렇게 많으면서 인구가 줄고 있어 걱정이라고? 이해가 되질 않아 펼쳐 든 책이 영국 인구학자 폴 몰런드가 쓴 <인구의 힘>이다.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는데 정리하면 이렇다.
1. 인구가 곧 힘이다.
영국이 '대영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걸쳐 인구가 급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영국을 시작으로 러시아, 독일 등에도 인구 성장 물결이 일었는데 종국에 20세기를 지배한 건 미국이었다. 인구가 많은 덕을 톡톡히 봤다. 유럽이 점차 쇠퇴한 것도 인구 성장률의 둔화와 관련 있다. 물론 인구가 많다고 모두 강대국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인구가 적으면 강대국이 되긴 힘들다는 얘기다.
2. 국내 문제에서도 인구는 곧 힘이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긴 이유? 저자는 경제 문제보다는 미국 내 인구 변화가 큰 이유였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오늘날 선진국의 포퓰리즘은 경제 불평등에 대한 근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인구 맥락에서만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다"(p231)는 거다. 한마디로 비백인 인구가 늘어나며 백인의 불안감이 매우 커졌다는 것. 유럽 국가들에서 포퓰리즘 정당들이 득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3. 사람이 많고 적음을 넘어 '얼마나 젊은가'도 중요하다.
'소련의 베트남 전쟁'이라 불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보자. 2차 대전 당시 독일에는 맞섰던 소련이 소국 아프간을 꺾지 못한 이유? 역시 인구에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인구 성장이 둔화하며 "신병 징집이 어려워져서" 이기지 못했단 거다. 유럽의 쇠퇴와 평화는 고령화와 관련이 있다. 반대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상황이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은 젊은 인구의 성장과 연관이 있다. (이 해석에 대해선 완전히 동의하긴 어렵다.)
4.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느냐고? 그냥 냅둬라.
산업 기술 발전, 위생과 영양 상태 개선 등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인구는 여성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현대화가 이뤄지며 둔화하기 시작한다. 그게 패턴이다. 그런데 이게 단기간에 보이는 게 아니다 보니 조급한 국가 지도자들이 인구 문제에 손을 대곤 했다. 대표적인 게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이다. 저자는 그게 무지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비판한다. 어차피 중국의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었으니 괜한 사회적 비용만 낭비했을 뿐이다. 루마니아처럼 출산을 강제한 곳도 있었는데 결과는 알다시피 비극적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 "강압은 무자비할 뿐 아니라 치명적이기까지 하며 불필요하다."(p374) 인구 문제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단 얘기다.
5. 앞으로도 인구가 곧 힘일까? 응!
저자가 본 근미래는 이렇다. 전 세계적으로 백인은 줄어들고 아프리카 인구는 늘어날 거다. 아프리카 인구가 늘어나는데 여전히 가난하면? 유럽으로 가려고 할 테니 유럽의 근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앞으로 인구 양상은 과학 기술의 발전,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변화하겠지. 예를 들어 복제인간이 허용된다면 인구 문제는 어떻게 될까? 다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인구는 앞으로도 "역사의 경로를 결정할 것"(p400)이란 점이다.
한마디로 '결국, 문제는 인구다'라는 얘기다. (저자는 서문에 "이 책은 인구가 운명의 일부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썼지만 말이다.)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인구 문제와 지정학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