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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리 Mar 29. 2022

이유식만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가장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마음

이유식만 생각하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디데이가 하루하루 가까워져 올수록 심장이 쿵쿵 뛰었다. 계란후라이도 계떡처럼 후라이치는 내가 이유식을 어떻게 만드냐고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독서실에도 갔다. 고딩들 사이에서 이유식 책을 읽는데 아무리 봐도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차라리 물리 공부를 하고 싶었다. 독서실에서 형광펜을 그어가며 이유식 공부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남편이 놀렸다. 자네 혹시... 주차장에서 자고 싶은가? 농담이 가능한 레벨의 스트레스가 아니란 것을 파악한 남편은 조용히 아기를 봤다. 주차장은 싫은 모양이었다.


이 정도 스트레스라면 시판 이유식을 사서 먹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서 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플라스틱 용기를 쓰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요리가 무섭다고 처음부터 사서 먹이기 시작하면, 나는 앞으로도 쭉 아이에게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이지 못 할 것 같았다. 가끔이라도 직접 해주는 것과 아예 못하는 것은 다르단 생각이 들었다. 뭐, 이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만.


무섭다고 피하지 말자.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일단 장비가 필요했다. '이유식용'이란 말이 붙은 건 뭐든 비쌌다. 그냥 샀다. 지금 당근마켓에 파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내 요리 실력을 잘 아는 엄마가 한마디 했다. 엄마 반찬을 얻어먹는 주제라 대꾸를 하지 못했다.


시작은 쌀죽이었다. 1회분씩 포장된 쌀가루를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됐다. 이 정도야 할 수 있을 거야. 스틱 한 개(12g)를 냄비에 넣고 조심스레 물을 부어 휘젓기 시작했다. 어어어어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5분간 저어야 한다'는 설명대로 계속 저었다. 어어어어어? 5분이 지나자 타기 직전의 쌀죽 한 숟가락만 남아있었다.


책을 뒤적이니 작게 쓰여 있었다. "1회분은 양이 적어 물이 졸아들 수 있으니 2~3회분을 조리하세요."... 교과서 본문이 아니라 사진 설명글에서 시험문제를 내던 역사 선생님이 떠올라 책을 던져버릴 뻔했다. 다행히 아이는 은전 한 닢처럼 소중히 남은 쌀죽 한 숟가락을 잘 먹어줬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두 번째 시도는 소고기였다. 삶은 소고기를 믹서기에 넣으래서 넣었는데! 왜죠? 갈리지가 않았다. 패닉에 빠져 절친 김 셰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을 좀 넣어 봐." 과연 잘 갈렸다. 한숨 돌리고 보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국이 짜면 물을 넣는 걸세. 거의 그 수준의 질문이었다.


1주일 후. 소고기죽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쌀죽도 만들어봤고 소고기도 삶아봤으니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이번엔 비율 조절에서 처참히 실패했다. 반을 버려야 했다. 전이라도 부쳐보자던 요리의 신 엄마 역시 결국 포기하고 나를 위로했다. "이렇게 하면서 배우는 거지 뭐. 괜찮아... 냄비는 당근에 팔아도 되고." 엄마, 혹시 당근에 취업한 거야?




이유식으로 고군분투하던 어느 오후였다.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시큰둥이 고양이>라는 책이었다.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한 소년이 있다. 고양이 키우는 걸 반대하던 부모님이 마침내 소원을 들어주던 날, 유기묘 보호소에서 데려온 '맥스'가 새 식구가 된다. 하지만 맥스는 하는 짓이 영... 별로다. 시큰둥하게 벽만 쳐다볼 뿐이다. 결국, 맥스를 다시 보호소에 돌려보내야 할 위기가 닥친다. 맥스와 잘 지내고 있단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다급해진 소년은 맥스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토록 싫어했던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 시큰둥이 고양이가 소년에게 다가와 품을 파고든다. 그제야 소년과 맥스는 진짜 가족이 된다.


마지막 장을 덮는데 눈물이 와르르 흘렀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연애 시절에는 항상 몽글몽글한 대답이 떠올랐다. 매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맛있는 것을 보면 같이 먹고 싶은 마음, 좋은 것을 보면 둘이 보고 싶은 마음. 뭐 그런 거죠. 아이를 낳은 직후에는 감정이 격해졌다.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 따위 중요하지 않아!' 뭐 이런 류의, 지나친 비장함이었다.


지금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맥스를 품에 안은 소년의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사랑하는 고양이를 위해 가장 싫어하는 일을 시작한 소년. 요리를 더럽게 못하면서도 부엌에 들어선 나. 그러니까, 그 누군가를 위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사랑이라고.


소고기죽 대참사 이후 나는 시판 이유식을 주문했다. 포기했느냐고? 아니다. 완전히 포기하지 않기 위해 조금 포기했다. 잘 안 되는 날에는 사온 이유식을 먹이자고 결심하니 외려 용기가 더욱 솟아났다.


아이가 잠든 시간. 미니스커트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펜 대신 국자를 들어 휘휘 죽을 젓는다. 사랑을 담아. 가장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마음을 다져 넣어.


네, 이것은 양배추찜입니다. 전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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