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 등원
얼마 전 아이가 첫 등원을 했다.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은 됐지만 생각보다 크게 염려되지는 않았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제법 대범해졌기 때문이다. 라고 쓸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과연 그럴 리는 없고, 매우 크나큰 다른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운전.
나는 운전을 못했다. 딱 10년 전, 엄마가 쓰던 차를 몰고 출퇴근하던 딱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을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멀쩡히 주행하다 앞차를 박았다. 차주가 나와 나를 힐끗 보더니 그냥 가라고 해서 90도로 인사했다. 주차장에 멀쩡히 서 있던 겁나 비싼 차를 받았으며 아주 멀쩡하던 경적을 두 번이나 고장 냈다. 멀쩡하던 주차장 입구를 긁었다. 엄마가 아주 멀쩡하게 세워놓은 차를 엄청난 엽기 신공으로 빼서 옆차와 A4용지 한 장 간격으로 붙여버린 다음, 울면서 엄마를 불러냈다. 영화관 주차장에서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주차해 배터리가 방전, 차가 왜 시동이 걸리지 않느냐며 강남역 한복판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주차장이 어두울까 봐 걱정돼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렇게 나의 운전시대 시즌1은 막을 내렸다. 차는... 폐차했다.
써놓고 보니 내가 너무 엉망인 사람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물건을 매우, 어쩌면 지나치게 깨끗하게 쓰는 사람이다. 내가 10년 동안 쓴 귀걸이를 AS 맡겼을 때 업체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귀걸이 수선을 하면서 이렇게 깨끗하게 쓴 건 처음 봐서요. 대체 어떻게 관리하신 거죠?” 귀걸이를 낀 날 바로 반짝반짝 닦아서 폴리백에 진공상태로 넣어놓으면 됩니다.
아무튼. 직장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한 탓에 우리집에서 어린이집까지 ‘차’로 등하원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나의 문제였다. 지난달부터 남편에게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남편은 매번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혹시 다른 선생님한테 배우면 안 될까?” ... 거절할 수 없는 모욕감이 느껴졌다.
울분의 연수 기간을 거쳐 드디어 어린이집 등원일이 닥쳤다. 얼마나 떨면서 운전을 했는지 온몸이 땀에 절어버리고 말았다. 등원길부터 기진맥진이었다.
첫날은 30분 동안 엄마와 함께 있으며 어린이집을 탐색하는 게 미션이었다. 아이는 장난감 가득하고 친구들 많은 어린이집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엄마 따위 찾지 않고 한가운데로 들어가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까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핵인싸였다. 아마도 그때 에너지를 다 써서 지금 지나친 I형 인간이 된 것 같지만. 자꾸 얘기가 딴 쪽으로 새는 것은 운전 때문이다.
여하튼 아이가 무척이나 신나게 노는데, 그 모습을 뒤에서 보는데, 아잇! 이게 뭐라고! 눈물이 막 났다. 와... 쪽팔렸다.
그냥,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딸아. 너도 이제 누군가 그리워지겠구나. 누군가 그리워 외로울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있잖아. 사람은 그 그리움과 외로움을 극복해보려고 몸부림치면서 그제야 성장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막 많이 미안해하지는 않을게. 그리고 말야.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 들어차 있다면 그 정도의 외로움은 괜찮아. 너를 더 단단하게 할 거야. 엄마는 사랑을 가득 주는 일을 할게.
써놓고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내가 그 짧은 순간 느꼈던 것을 잊지 않고 싶어 기록해둔다. 강조하건대, 이것은 절대로 운전 얘기가 아니다. 내 딸의 첫 등원 얘기다. 내일도 내가 운전한다. 다 비켜라. 나 초보다.